2011년 3월19일 (픽턴 - 선박으로 도선 -웰링턴 - 타와 - 레빈)
오늘은 그야말로 단순한 이동만을 위한 일정이 되었다.
픽턴에서 남섬을 떠나 올때 타고 왔던 인터 아일랜드에 자동차를 싣고 북섬의 웰링턴으로 들어와 타와를 거쳐 레빈까지다.
웰링턴은 정말 '뒤도 돌아 보지않고' 바로 1번 모터웨이에 올라 레빈에 곧장 도착했다.
웰링턴은 전번에 숙소잡기에 혼이 난 탓도 있지만, 하루만 잔다면 방이 없다는 인심이 싫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서울과 꼭 닮은 거리풍경과 분위기가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 레빈은 어제 숙소 가이드를 보고 미리 전화로 예약을 했다. '레드 우드 롯지', 100불이다.
눈에 띄는 모든 숙소가 한산해 보이는 동네였지만 유달리 이 숙소만 번잡하다.
거의 하루 종일 기름을 소비하고 달렸기 때문일까, 기름값을 한번 따져보았다.
기름값은 우리네와 거의비슷하다.
현재의 기름값은 휘발유가 리터당 2.15불(1,851원), 경유가 1.64불(1,412원)이다. 현재의 환율이 861원이니 만일 50리터를 주유
하면 휘발유는 92,558원, 경유는 70,602원이니 그 차이가 21,956원으로 꽤 차이가 많다.
말하자면 휘발유와 경유의 차이가 리터당 439원이니, 그 차이가 200원 정도인 우리네 보다 크다.
그래서 이럴바엔 렌트하는 차를 휘발유차로 하지말고 SUV 차로 했다면 렌트비는 SUV차가 당연히 비싸지만 기름값의 차이가
크므로 움직이는 비용은 거의 비슷하게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장거리 운전이고 낯선 곳에서의 안전을 생각하면 그것이 훨씬 좋은 선택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뒤늦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취향의 문제니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레빈은 한가한 조그만 동네에 불과하지만 이상하게도 상점은 많고, 특히 중고 자동차 매장이 다섯군데나 된다.
중고 시장에서 팔리는 자동차는 압도적으로 일본제가 많고, 약간의 (5% 정도) 한국제가 섞여있다.
일본차 중에서도 토요타가 90%다. 태국에서 숱하게 봤던 일제 토요타를 떠올리면 도대체 일본 자동차는, 토요타는 얼마나
많이 팔렸을까?
저녁8시쯤이 되자 레빈의 모든 가게는 문을 닫아버렸고, 딱 두군데, 태국음식점과 중국 음식점이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동양인의 왜소한 체격과 다소 우울한 얼굴이, 이곳의 천방지축 술 먹고 까불어대는 젊은 백인애들의 우람한 체격과 오버랩
되어 괜스레 심란한 기분이 된다.
'술 먹고 까불어 대는 젊은 백인 애'라고 했지만 사실 뉴질랜드에서 '술 먹고 까부는 젊은애'를 본 것은 딱 두번이다.
이곳 레빈과 수도 웰링턴의 뒷골목 어귀에서였다. 그것도 키위가 아니라 여행객인 것 같다.
술을 팔 수 있는 면허가 있는 상점이 동네에 한 두군데 정도밖에 없는데다 음식점에서 가벼운 맥주와 와인외에
술을 판매하는 곳이 사실상 없고, 이곳 사람들은 우리네 처럼 주당이 없는 것 같아 도무지 술로 인한 어떠한 경우의
에피소드도 우리 여행기간 동안은 없었다.
그것은 전번의 인도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이곳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인구밀도에다,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인도에서 한달동안의 기웃거림에서도 술로 인한 추태나 어떠한 에피소드 역시 없었던 것이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우리네는 정말 그야말로 '술판'인 것 같다.
도무지 술판이 보이지 않는 이곳은 어찌보면 심심하고, 어찌보면 무덤덤하니 우리네 주당들이 여행한다면 꽤나 재미
없는 곳이 될 것이 분명하다.
자정이 넘어도 거리의 환락가는 휘황하고 술꾼들이 넘쳐나며, '지금부터야 말로 황금시간대야!'를 외치는 수많은 술집들이
성업중인 떠나온 내 나라가 왠지 처연하다.
'다이나믹 코리아!'는 여전히 이 시간에도 여전히 '다이나믹' 하겠지......
마셔서 풀어야 할 것이 많은 나라와, 그러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우리가 지금껏 오가고 있다.
김규항이 얘기하던 '신 자유주의'가 문득 떠오른다.
"나는 신 자유주의가 참 무섭다고 생각하는데요. 반세기 동안의 포악한 극우독재가 사람들을 무릎 꿇게 했지만 정신이나
영혼까지 망가뜨리진 못했어요. 그러니까 정치적 민주주의가 되었다고 봐요. 그런데 이놈의 신 자유주의는 불과 10년에서
20년 사이에 사람들의 영혼을 완전히 망가뜨렸어요. 남들보다 많이 갖거나 보통사람들과 격차를 벌이는 것에 대해 기뻐하는
사고방식이 이제 더 이상 탐욕스러운 지배계급만의 사고방식은 아니잖아요. 서민대중의 사고방식이자, 농민의 사고방식이자, 노동자의 사고방식이 되어버린 겁니다. 말 그대로 멸망의 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떠나온 내 나라는 멸망의 밤을 향하고 있는걸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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