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24)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7. 27. 18:18

2011년 3월 18일 (카이코라 - 브렌하임 - 픽턴)

 

새벽에 일어나 우리는 '웨일 와치'를 다시 찿았다. 해변은 고요했고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새벽의 바다에 고래의 등줄기나 꼬리라도 보이려나 하고 먼 바다를 바라보았으나 그런 기적은 없다.

우리는 가슴속에 거대한 고래를 품은 카이코라의 바다를 아마 평생 잊지 못할거라는 생각을 하며 픽턴으로 출발했다.

도중에 거친 브렌하임은 뉴질랜드로 치면 중소도시였고, 픽턴 역시 그랬다.

그렇지만 픽턴은 뉴질랜드의 북섬과 연결되는 필수 경유 도시라 그런지 활기가 꽤 있고 깔끔하다.

인터 아일랜드가 출발하는 항구에서 가까운 '픽턴 롯지 백패커스'에 숙소를 정했다. 70불. 주인 할머니는 씩씩하다. 여느 숙소와    비슷하나 투숙객을 위한 공동 휴게실이 넓고 쾌적하다. 관광을 위한 자료들이 빼곡히 정돈되어 있고, 안락한 소파들이 정감

있게 배치되어 있다. 공동부엌은 깔끔하고 주인의 섬세한 손길이 곳곳에 보인다.

 

갑자기 항구쪽에서 뱃고동 소리가 계속 울려댔다.

마침 2층 공동거실로 올라온 주인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항구쪽을 걱정스레 바라보더니 잘 모르겠단다.

일본의 쓰나미에 놀랜 바닷가 주민들의 공통된 근심거리인 것 같다.

어제도 카이코라에서 난데없는 사이렌이 계속되어, 밖에 나와있던 내 곁으로 일본인 투숙객인 처녀가 황급히 나와서는

나에게 '무슨 일이죠?' 한다. 나 역시 알길이 없어 둘이서 무심한 바닷가를 걱정스레 바라봤던 것이다.

일본인 처녀는 고국의 쓰나미로 상당한 충격을 받은듯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황급히 밖으로 뛰쳐 나온 것 같다.

바닷가 사는 사람들의 근심이 크게 생겼다.

 

우리는 빵과 우유, 바나나 등을 챙기고 '퀸 샬롯 드라이브' 로 출발했다.

퀸 샬롯 드라이브는 퀸 샬롯 사운드라 불리는 좁은 협만(峽灣), 즉 좁은 해협을 끼고 뻗어 있는 자동차 도로를 칭하는데

자동차 여행자들 사이에는 널리 이름이 알려진 아름다운 길이다.

대중교통이 없어 자가 운전이 아니면 갈 수 없는 길이고 경관이 빼어나다 하여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자들이 많이들 추천하는

길이라 하여 꼭 한번 들러고 싶었는데 기회다 싶었던 것이다. 

픽턴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길을 오르면서 길은 시작되었는데 과연 경관이 빼어났다. 좁고 몹씨 굽이치는 까다로운 길이라

긴장을 늦출 수 없을 정도이고, 마주 오는 자동차가 있으면 겨우 교행을 해야 할 정도로 좁고 위험하다.

그렇지만 그만한 고생을 감수할 만한 길이다. 잔잔한 피오르드 사이의 옥색, 또는 코발트색, 청색 등등 빛나는 바다와 그림

처럼 떠있는 요트들, 숲속 해변에 드문드문 박혀있는 아름다운 주택들이 특히 아름답다.

마치 전용 해변을 갖춘것 같은 주택들은 한편의 그림이다. 우리는 '저 집이면 집 앞에서 낚시도 할 수 있겠어', '아니 집에서

수영복을 입고 바로 바다에 뛰어 들 수 있잖아!' 하며 연신 감탄을 연발했다.

운전이 몹씨 힘든 코스였지만 풍경에 흠뻑 빠질수 잇는 멋진 길이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휴대폰에 문자 메세지가 뜬다.

귀국 일정의 변경이 있을 수 있으니 전화연락 바란다는 항공권을 구입한 여행사 메세지다.

이크, 올것이 왔구나, 보나마나 일본의 지진 때문이겠지. 여행사에 전화하니 역시 그 문제다. 두가지를 제시 하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단다.

당초 24일에 귀국 예정인 것을 하루 당겨 23일 귀국 하던지, 24일로 하되 상해를 거쳐(경유지로 하여) 귀국 하던지......

우리는 의논해서 하루 당겨 23일 귀국 하기로 했다. 21일엔 오클랜드에 들어가서 숙소를 정하고 22일 오전 11시엔 렌트카를 반납하고, 23일 밤에 일본으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당초 계획된 오클랜드에서의 하루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대도시에서의 일정이 별로 달갑지 않았는데 오히려

잘 됐다고 서로 자위했다.

또, 상해를 경유하는 일정을 선택하면 부산에 1시간 늦게 도착하므로 시외버스 시간표에 의하면 함양 집에 도착하는 시간도

2시간 정도 늦춰져 늦은 시간이 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 그건 그렇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픽턴의 항구로 마실이나 가자.

픽턴의 최고 번화가(!) 하이 스트리트는 술을 파는 가게 한 곳 말고는 전부 문을 닫았다.

이들에게서 부러운 것은 저녁시간이면 식당외에는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식당들은 8 -9시 사이에 문을 닫기 때문에

밤 9시 이후에는 거리에 거의 사람이 없다. 전부 자기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당연히 여행객들도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네 도시들과 확연히 비교되는 풍경인데 이는 유럽에서도 그랬고, 인도나 네팔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중국외의 우리가

다닌 이국의 도시는 거의 비슷한 양상이었다.

아아, 대한민국, 그 흥청거림의 도시......

문제는 밤 9시면 모든 상점이 철시하고 사람의 통행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 여행자들로서는 밤 시간을 참으로 무료

하게(!) 보낼 수 밖에 없는데, 숙소에서 밥을 지어먹고 나면 7시에서 7시 30분쯤이 되고, 8시 부터 대체로 10시 까지  공동거실이나 휴게실에서 다음 일정을 의논하거나 다음 행선지의 숙소를 예약하는 등으로 보내게 된다.

휴게실의 TV에서는 도무지 알아 듣기 힘든 말로 몇 명이 출연해서는 토론을 한다고 쉼없이 떠들어대고, 한국의 TV처럼 어린

처녀애들이 허벅지를 드러내고 온갖 요염을 떠는 프로도 없는데다,  황금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토론에 열중인

프로이거나 요리 경연대회 같은것을 하는 등, 참으로 심심한(한국의 TV에 비하면, 심심한 정도가 아니라 나태한!) TV 이므로

전혀 시선이 갈리 없다.

그렇다고 유창한 영어로 여행객들과 수다를 떨 수도 없으므로 결국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또, 대부분의 백패커스나 홀리데이 파크, 유스 호스텔 등은 10시쯤이면 출입문을 잠궈 버리기 때문에 밤 늦게 거리를 어슬렁

거릴 수도 없다.

이런 이유들로 대략 9시 30분이나 10시쯤 잠자리에 들게 되므로 우리같은 중늙은이는 새벽에 잠을 깨게 된다.

이 또한 곤란한 노릇이다. 집이라면 밭일이나 운동이라도 하련만 그럴 처지도 안되니 일찍 깨는 새벽시간을 적절히 보낼

방법이 딱히 없는 것이다.

짐이 된다고 책을 몇 권 가져오지 않은것이 후회된다.

 

부엌에는 어제 발견하지 못했던 낯익은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사용하신 접시와 그릇 등은 꼭 씻어서 말려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우리네 여행객들이 많이 찿긴 하나 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