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26)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7. 28. 16:07

2011년 3월 20일 (레빈 - 불스 - 타이하페 - 투랑이 - 토코로아 - 로토루아)

 

새벽 6시 레빈의 숙소에서 우리는 엄청난 굉음에 그야말로 혼비백산하여 침대에서 용수철 처럼 튀어 일어났다.

일어나긴 했는데 출입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기가 두려워 엉거추춤 망설이다가 겨우 열긴 했지만 대체 무슨 영문이지는 알 수가

없다.

그 엄청난 굉음은 약 20초 가량 계속 되었는데, 마치 엄청난 폭우, 또는 쓰나미가 밀려 오는듯 하기도 하고 레일이 없는 폭주

기관차가 휩쓸고 지나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우리는 생전 처음 듣는 굉음이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고 겨우 아랫층으로 내려 왔지만 다리는 후둘거렸고 도무지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었다.

우리는 내친 김에 빨리 여기를 벗어나기로 하고 레빈을 떠났기 때문에 그 소리가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확실히 모르고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뉴질랜드에서는 드문 철도가 이 동네를 지나고 있으니 필경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일거라고 추측하긴 하나

그 추측이 맞는다면 열차는 정기적으로 그곳을 통과 할테고, 주민들은 새벽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이 된다.

우리가 아침을 지어 먹는둥 마는둥 하고 그곳을 떠날때 까지 아무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굉음의 진원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만일 그 굉음이 열차 소리라면 이 동네 주민은 필경 미련한 곰들이 아니면 귀머거리일 것이 분명하다.

그 굉음은 인간이 일상적으로 견딜만한 그런 차원의 크기가 아니었다. 크라이스트 처치의 지진에 두번이나 놀란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잠재 되어있던 공포가 그 굉음에 잠을 깬 것일까?

지금까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것을 묵묵히 견딜 인간은 없을것이라 믿는다. 그 시간에 목재를 실은 폭주 자동차가 지나간거라면

모르겠지만......

레빈의 새벽녁 굉음이 정기적인 열차의 것이라면 심장이 약한 여행자에게 이렇게 권하고 싶다.

'레빈에서는 절대 숙소를 잡지 마세요!'

 

오늘은 거의 6시간을 달려 로토루아로 오는데 소비했다.

오랜 운전으로 엉덩이가 아프다. 아내에게 운전을 권해 봤지만 도무지 운전하려 들지 않는다. 국제 운전 면허증을 같이 발급

받았지만 조수 노릇으로 만족하겠다고 우긴다. 그러려면 뭐하러 발급 받았담!

여태까지의 남북섬을 오가는 자동차 여행의 방식을 복기해 보면 우리의 방식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닌것 같다는 것을 느낀다.

총 체류기간 중 남섬에 2/3 정도를 할애하는건 좋으나 차를 오클랜드에서 빌려 북섬에서 출발하여 웰링턴에서 도선에 차를 싣고 남섬으로 내려와 남섬을 훑고 다시 북섬으로 차를 싣고 가서 오클랜드에서 차를 반납하는 것은 좋은 방식이 아닌것 같다.

그보다, 오클랜드에서 로토루아나 통가리로, 타우포 등을 인터시티 버스로 다니고, 웰링턴에서 국내선 항공기를 타고 크라이스트 처치로 가서 차를 빌리던지, 아니면 픽턴으로 국내선 항공기를 타고가서 픽턴에서 차를 빌려 남섬을 일주한 다음 역시 픽턴에서 차를 반납하고 오클랜드로 국내선 항공기로 이동하는것이 훨씬 좋은 방식인것 같다.

북섬보다는 남섬이 훨씬 볼 것이 많고 뉴질랜드 다운 풍경도 남섬이 월등하므로 어찌보면 남섬만을 충실히 여행해도 뉴질랜드의

전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한다면 여행경비도 줄일수 있고, 남섬에서의 시간도 더 할애할 수 있어 더욱 충실한 여행이 될거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두번째인 로토루아에서 한국인 주인 아줌마가 운영하는 콜링우드 게이블 모텔에 다시 여장을 풀었다.

아줌마는 우리를 반색하며 맞는다. 다소 피곤해 보이는 주인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열정적이다.

저녁식사를 지어먹고 설겆이를 하니 씽크대의 물이 빠지지 않는다. 주인장에게 공구를 빌려 씽크대의 아랫도리를 분해해서

수리하니 엄청 좋아한다. 여기는 그런 수리비가 굉장히 비싸고 예약을 하고 적어도 열흘은 기다려야 하니 그동안 영업을 할 수   없어 이중으로 손해라고 한다. 여기서 설비공이나 하면 꽤 수입이 짭짤하겠는걸..... 이민 와서 설비공이나? 

 

내일은 우리가 처음 도착한 오클랜드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우리는 인터넷으로 오클랜드 YMCA에 예약을 하고선 실내에

설치된 온천 욕조에 몸을 담궜다.

이 여정도 이제 서서히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여태껏 말썽없이 잘 달려 준 흰둥이 FFC 384, 고마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