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27)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7. 28. 16:12

2011년 3월 21일 (로토루아 - 해밀턴 - 콘월 파크 - 오클랜드)

 

오클랜드에 다다르자 우리는 콘월 파크(Cornwall Park)에 들렀다.

지도를 펼치고 어렵게 찿은 공원 입구에 주차하고 내리면서 우리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오클랜드 시내의 남쪽 도심에 자리잡은 이 공원은 들어서자 마자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넓은 잔디밭과 수령을 알 수 없는

거목들이 입구에서 사람들을 반긴다.

우리는 넓디넓은 공원을 가로질러 들어가면서 가슴속을 뚫고 들어오는 만족감과 행복감에 이내 흠뻑 젖어 버렸다.

그렇게 기대했던 크라이스트 처치 해글리 공원의 지진으로 일그러진 모습에 너무도 실망했었는데 그 실망감이 이 콘월공원에

와서 씻겨지는 기분이다. 

뉴질랜드의 수많은 공원이 다 그러하듯이 콘월공원 역시 딱 두가지만 있다. 나무와 잔디...... 그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너무나 아름답다. '공원은 이런 것이야!'를 웅변하는듯 하다.

그렇다. 공원은 이래야 하는 것이다. 도시의 소음과 공해, 사람과 사람과의 마찰, 일정한 긴장의 연속들, 이런것을 치유하는것이

공원의 역활 아닌가.

그래서 공원에는 어떤 식의 인공물도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다. 

자연과의 조화와 교감을 이루어야만 인간의 긴장상태가 느슨해 진다면 그 자연을 조성한 휴식처에는 당연히 인공물을 최소화해야

하는것이 맞는 것이다.

그것을 웅변하듯 이 공원에는 나무와 잔디 밖에는 없다. 그것이 너무나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한다.

방목된 양떼와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구역에는 작은 울타리가 쳐져 있고 이 공원의 자연과 너무나 어울리는 모습이다.

우리네 라면 어떨까? 조형물 몇개 만들고, 시계탑이나 꽃시계 만들고, 동상도 하나쯤 세우고 싶을게다. 공원관리소 건물이

일정부분 차지할테고, 매점과 원색의 화장실과, 밤이 되면 조명이 첨가될 것이고 여기 저기 간판이 매달릴테지.......

'인간이란 동물은 이곳 콘월과 같이 인공물이 거의 없는 곳에서라야 비로소 평안과 안식을 가지고 휴식할 수 있는거야!' 라고

이곳은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곳 사람들이 참 부럽다.

그렇다고 인공물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었다. 화장실은 경사진 작은 언덕에 돌로 지어 손바닥만한 간판을 보지 않으면 눈에 거의 띄지 않고 나무 벤치와 작은 그늘막이 피크닉 객을 위해 있을뿐이다.

우리는 복잡한 시내로 들어가야 한다는 부담도 잊고 공원에 흠뻑 빠져 있다가 마지 못해 차에 올랐다.

 

결국 우리는 첫날 도착한 도시 오클랜드로 돌아왔다.

한달여에 걸친 여행의 끝자락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일 하루 오클랜드에 머물다가 다음날 밤에 귀국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오클랜드는 여느 대도시와 다를게 하나도 없다. 고층 빌딩하며, 빼곡히 창을 내고 있는 공동주택들, 창에 턱을 괴고 앉아 담배    피는 처녀애들, 차의 소음과 혼탁한 공기, 빼곡히 골목을 차지하고 있는 가게들....... 서울도, 부산도, 델리도, 오클랜드도 똑 

같은 것이다.

다만 여기는 서울이나 부산, 델리와 다른것이 하나쯤은 있다.  건물마다 어지럽게 붙어있는 간판들이 없다. 그것이 이 도시의

인상을 다소 다르게, 깨끗하게 보이게 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대도시가 전혀 매력이 없다. 젊은이들에겐 또 다르겠지만.......

 

미리 예약하고 온 오클랜드의 YMCA는 여태까지 뉴질랜드의 숙소중에서 가장 최악이다.

크라이스트 처치의 깨끗한 YMCA를 보고 선뜻 이틀을 예약한 우리의 실수였다.

로비는 어떤 호텔 못지 않다. 그러나 그것 뿐이다.

우리에게 배정된 4층의 방에는 낡은 침대와 탁자, 작은 냉장고, 옷장이 있었다.  그러나 4층에는 공동부엌이 없고, 아랫층인

3층에 조그만 부엌을 같이 사용해야만 했다. 그나마 3층의 작은 부엌에는 주방기구라곤 거의 없고, 프라이팬 1개와 렌자렌지,  

가스렌지 2개, 작은 씽크대 뿐으로 겨우 한 두가구가 식사를 해결할 공간밖에는 되지 않았다. 우리는 맥이 탁 풀렸다.

여기가 살벌한 인심의 도심이라는걸 잊었던 것이다. 물론 밥을 해서 먹을 식당 같은 건 없다. 식사를 준비해서 윗층에 있는

방으로 가져가서 먹어야 했다. 설겆이는 다시 아랫층으로 내려와서 해야 하고....... 최악중에 최악이다.

게다가 자기네 집에 숙박하러 온 우리에게 주차비를 내야 한단다. 8불, 세상에 이런 경우가......

부엌에서 만난 한국인 뉴질랜드 장기체류 아줌마는 "한국에서 유학지의 로망이니 하면서 앞다퉈 뉴질랜드로 유학을 보내는데

왜 이런곳이 그런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한다.

하긴, 우리는 가난한 여행자 아닌가. 가장 저렴한 숙소를 찿아 다니니 별 수 없는 것이다.

 

중심지인 퀸 스트리트가 완만한 경사지로 이루어져 있고 경사가 심해지는 양 옆으로 중국 음식점과 한국 음식점 간판들이 꽤 눈에 띈다. 우리는 오랫만에 한국 음식점에서 돼지국밥을 시켜 먹었다.

오클랜드에도 한국인들이 이민와서 살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손톱 다듬는 가게(네일 숍이라든가), 미용실, 식당, 잡화점,

세탁소, 건강 식품가게 등을 한다고 한다.

우리가 알기로는 이민요건이 몹씨 까다로워서 웬만한 우리네 중산층 이상이나 고학력자 또는 경력자가 아니면 안된다는데

그들이 여기와서 하는 일이 이른바 이 사회의 하층민들이 종사하는 일이라고 하니 우스운 노릇이다.

게다가 유학이다, 연수다 해서 고국을 떠나온 어린애들이 있고, 그들을 보호한답시고 따라온 부모(특히 엄마)들이 이곳엔

엄청 많다고 하는데 이들이 보이는 여러 윤리적 파행들로 교민사회에서 지탄을 받고 있다고 하니 현지인들이 우리네 얼굴 노란  여행객들을 어떻게 바라볼까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 진다.

물론 이런 현상이야 일부라곤 하지만 그런 소문들을 전해 듣는 우리로서야 찝찝할 수 밖에......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오클랜드 최고 번화가인 퀸 스트리트와 빅토리아 스트리트에는 마주치는 사람의 반 이상이 동양인이다.

그것도 특유의 인상으로 단박 알 수 있는 중국인이 단연코 많다.

요즘 어느 나라를 가도 눈에 띄는 많은 중국인들, 하긴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래킹에서도 숱하게 많아, 심지어

그들 때문에 숙소 잡기가 어렵던 일이 생각난다.

이 도심지에 깔린 중국인들이 왜 남북섬 일주동안에는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을까? 아마 그들은 도심에만 있나보다.

 

퀸 스트리트 인근의 탑에서는 등에 밧줄을 걸고 아래로 급강하 놀이를 하는 젊은이들이  눈부시다.

그들을 올려다 보다가 우리는 퀸즈타운의 번지점프장을 그리워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