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7일 (함머 스프링 - 카이코라)
카이코라...... 우리는 고래의 동네, 카이코라에 가기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대충 챙겨먹고 8시쯤 출발, 10시 10분쯤
카이코라에 도착했다.
도중에 우리는 도로포장 공사 현장을 만났는데 한 쪽면의 포장을 마무리 할때까지 잠시 우리를 세워놓더니 일을 마치자
우리 앞으로 뒷면에 'Follow me'라고 적힌 산악용 오토바이같은 공사차량이 앞장을 서더니 에스코트를 한다.
꽤 긴 공사구간에서 우리는 그 오토바이를 따라 안전하게 벗어난 뒤 손을 흔들어 고마움을 표시하자 두 손을 크게 흔들어
답례를 한다.
언덕 하나를 힘겹게 넘어서자 해변이 나타났고, 툭 터진 전망이 시원하기 이를데 없다.
역시 뉴질랜드는 바닷가가 제격이다.
해변을 조망하다가 배가 떠있길래 자세히 보니 배 근처에 돌고래들이 점프를 해댄다.
아마 돌고래를 조망하는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인 것 같다. 가이드 북에서 이곳 카이코라의 '고래'에 관한 정보들을 읽긴 했지만 실제로 돌고래가 수면위로 치솟는것을 보니 가슴이 두근댄다.
좀 멀리 나가면 수십톤씩 하는 고래를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해변은 엄청난 해초들이 바위를 뒤덮고 있는데 미역도 아니고 다시마도 아닌, 무척 넓고 큰 것이 징그럽게 보일 정도로
해변의 폭 20여 미터를 새카맣게 뒤덮고 있었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해변으로 내려가 온갖 해초들의 왕성한 번식의 현장을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바라 보았다.
이게 다 다시마라면 우리네 처럼 양식장 같은것은 전혀 필요 없을 것 같다.
해안도로를 따라 동네로 들어서니 전형적인 반도 지형의 어촌마을 형태인데 먼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이루고 있다.
여기까지 왔으니 걸죽한 씨푸드라도 먹어 보겠다고 대형 지출을 각오하고 가이드 북에 있는 식당을 찿았으나 파스타 위에
홍합이나 쭈꾸미 등을 잔뜩 얹어주는 집은 없어 결국 포기하고 인근의 조그만 수산물 가게에서 푸른입 홍합(뉴질랜드의 그
유명한) 2Kg 정도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여기 백패커스는 66불.
공동식당에 있는 큰 알루미늄 솥을 가져다가 푸른입 홍합을 쪄서 점심으로 먹었는데, 그 삶는 냄새가 기가 막히다.
싱싱한 바다냄새를 잔뜩 풍기는 홍합이 끓자 여기저기서 힐큼거리며 입맛을 다신다.
우리네 홍합보다 훨씬 식감이 좋다. 쫄깃한 것이 입에 넣으면 푸짐하고 크다.
하지만 기대했던 국물은 짜서 먹기가 곤란하다. 물에 생홍합을 잠시 담궜다가 삶았으면 괜찮았겠지만 배가 고파 눈이 돌 지경
인데 그럴 여유가 없다. 1만원 정도로 둘이서 배불리 먹었다.
몇몇이 우리 곁으로 와서 한개씩 맛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엄지 손가락을 세우고 'Good!' 을 연발한다.
어떤 처녀는 당장 자기도 사야겠다는투로 어디서 샀느냐고 묻기까지 한다.
우리는 백포도주와 함께 뉴질랜드에서 잊지 못할 푸짐하고 멋진 점심을 느긋하게 즐겼다.
포도주는 종이상자에 든 것으로 작은 수도꼭지 같은것이 달려있고 수퍼에 가면 흔히 판매되고 있어, 우리처럼 이동이 잦은 여행자에게는 깨어질 염려가 없어 안성맞춤인 싸고 질도 꽤 괜찮은 물건이다.
식사때에 반주로도 마시고, 뉴질랜드에 흔하고 싼 소고기 스테이크를 요리할때 프라이팬에 조금 부어주면 냄새도 잡고 향기도
좋아 우리는 많이 애용했다.
식사후 우리는 동네의 끝머리에 있는 해변을 찿았다.
길쭉한 지형이 바닷가로 뻗어있는 멋진 길이었는데, 길 아래로 펼쳐진 해변은 마치 태고적 풍경같이 인공적 구조물 하나없이
깨끗하다. 곳곳의 암초위에 바다표범과 갈매기들이 수없이 앉아있다. 우리는 언덕위의 잔디 길을 걷다가 바닷가로 내려가서
해변을 걸었는데, 뉴질랜드에 와서 처음으로 충만한 행복감을 만끽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힘든 너무나 깨끗한 바다, 신선하고 청아한 하늘, 높은 언덕위에서 내려다 보는 아름다운 해변이 우리를
벅차게 했다.
아마 이번 여행에서 참으로 잊지 못할 장소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좋은것은 이 황홀한 풍경속 어디에도 인공적인 구조물이나 조형물, 시설물 등을 일절 해 두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커다란 원색의 간판과 어설픈 시설물, 구조물 등에 질린 나라에서 온 나그네에게 그런 점은 너무나 신선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이곳의 백패커스의 경영자는 전번 프란츠 요셉 빙하지대의 백패커스와 동일한 족속이다. 방안에는 물건을 얹어 둘 선반이나
탁자 하나없고, 옷을 걸어 둘 옷걸이나 고리도 없어 결국 가져간 빨랫줄을 요령껏 묶어 옷들을 걸어 두어야 했다.
여행객들을 상대로 숙박업을 한다는 사람의 마인드가 이렇게 한심해서야......
이런 주인 녀석을 만난다는건 분명 오늘의 운수다. 에휴, 한심한 녀석!
감자 다섯개와 계란 네개를 삶아 저녁식사를 해결하고 마을에 마실가자며 나간 해변길은 특별했다.
노을이 찬란한 길을 건너자 해거름이 내려앉은 해변은 수많은 비늘처럼 반짝인다.
'웨일 와치(Whale Watch)'가 이 동네 대표 상품이다. 정말 '고래 관찰'이라도 해 볼 양으로 해거름의 바다를 뚫어져라 쳐다
봤지만 그런 행운은 없다. 그렇지만 이 바다는 특별하다. '그냥 바다' 였다면 모르나 여기는 고래가 그 어마어마한 덩치를
한번씩 슥 보여 준다는 바다 아닌가.
그 큰 몸집으로 이 깊은 바닷속을 유유히 유영하는 고래가 그 모습을 보이는 곳이라니 '특별'한 것이다.
사람들은 왠지 고래에게 일종의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피자와 피시앤 칩스(물고기와 감자 튀긴 것, 뉴질랜드에서 많이 파는 노상 음식) 같은 음식을 사서는 어둠이 깔리고 있는 이
웨일 와치 해변에 앉아 먹고 있는 사람들은 꼭 고래를 보겠다는건 아닐테지. 저 깊고 푸른 바다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가 있다는 상상만으로 바다쪽을 바라보며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바다는 참으로 'amazing' 한 바다가 된 것이다.
고래나 바다사자, 물개, 돌고래 등이 많은 이곳은 특히 고래 중에서도 가장 큰 향유고래(Sperm Whale)를 자주 만날 수 있다고
하니 가히 이곳을 야생 생태계의 보물창고라 부르는 것이 무리가 아닌 것 같다.
더구나 이 조그마한 마을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것은 영화 '웨일 라이더'다. 200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연소 여우 주연상에
추천된 '케이샤 캐슬휴즈'라는 마오리 처녀가 주연을 맡았고, 역시 뉴질랜드 출신의 여성 영화감독 니카 카로가 연출한
'웨일 라이더'는 고래에 관한 전설을 토대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신뢰를 잔잔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낸 영화로
이 카이코라 해변을 배경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온통 마을은 '고래' 얘기다. 간판도 '웨일', 길도 '웨일', 술집도 '웨일', 기념품 가게도 '웨일' 이다.
향유고래의 그 어마어마한 덩치가 큰 꼬리를 물밖으로 보이며 잠수하는 모습은 근사하다. 여기는 가게마다 그런 사진이 많다.
내일 아침은 출발하기 전에 '웨일 와치' 쪽으로 가서 바닷가에 잠시 주차하여 바다를 뚫어지게 볼테다.
누가 아는가? 우리가 막 바라보는 순간 고래가 그 큰 꼬리를 우리에게 흔들며 잠수할지를......
우리는 어둑해질때까지 한참을 어둠이 내리는 광활한 바다를 보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노을이 우리 머리위에서 불타고 있었다.
황인숙의 '황혼'이 머릿속을 맴돈다.
"하늘이 열리고 있지요?
오, 저 스며들어오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향기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빛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고요
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마음
조금씩 열려 퍼지는 문
빠져나갈 시간은 바로 지금이에요."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0) | 2013.07.28 |
---|---|
(24)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0) | 2013.07.27 |
(22)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0) | 2013.07.27 |
(21)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0) | 2013.07.27 |
(20)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0) | 2013.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