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6) 낯설지 않은 타이베이

운농 박중기 2018. 1. 4. 10:05

2017년 12월 19일


'온천의 고장 타이베이'라는 가이드북의 문구를 보고 여러곳 중 고른 우라이(鳥來)온천.

지하철 그린라인을 타고 신뎬(新店) 역에서 내려 역 입구의 뒷편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849번 버스를 타고 30분을 강물이 흐르는 계곡옆 길을 달리니 우라이 온천 지대가 나왔다.

한때는 흥했는데 이제는 쇠락한 것 같은 누추한 모습의 건물들이 강줄기 양쪽으로 들어서

있다.

자연 경관은 아름답지만 인공물들이 참 볼품없다.

우리네 인공 구조물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크고 무분별한 어지러운 간판들, 건물을 짓고 난 후 한번도 보수한 적이 없었던것 같은 

우중충한 건물들의 모습은 어찌 그리 우리네 쇠락한 마을의 모습과 닮았는지 신기하기

까지 했다.

계곡을 지르는 다리는 경관과 어울리지 않게 원색으로 칠해져 있고, 마을 어귀에는 빼곡히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그중 한 곳에 들어가 점심식사를 했는데, 한문 메뉴의 내용을 보고 주문한 민물고기 튀김,

볶은 채소, 죽순무침. 그리고 밥은 먹을만 했다.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간은 희한하게 맞아' 거부감 없이 먹을수 있었다.

제법 빗줄기는 굵어졌지만 많은 비는 아니어서 다니는데 지장은 별로 없었다.

명월온천(明月溫泉)이라는 이름에 끌려 들어 간 온천은 상당히 비싸다.

우리네 온천 대중탕의 두배 가격이지만 시설은 우리네만 못하다.

가족탕도 있었지만 가격은 대중탕과 동일한데 시간 제약이 있다.

많은 온천이 있지만 그중 대다수의 온천은 러브호텔 식의 운영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최신의 시설보다는 전통 있는 온천의 격이 느껴지는 실내와 깨끗한 수질, 관리상태는

괜찮았다.

욕탕은 우리네와 꼭 같다.

그러고 보면 이들의 집들은 대체로 외양은 별로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나름 깨끗하고 관리가

잘 된 느낌의 집들이 많았던것 같다.

적당한 수온과 바깥이 탁 트인 욕탕에서 너무 오래 몸을 담근 탓인지 나른해서 몸살 기운까지

돌았다.


온천에서 돌아와 숙소에 들렀다가 맥주를 사려고 나왔다가 이런 저런 것들에 시선을 뺐겨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스린(士林)역만 찾으면 되겠지 해서 길가의 교통경찰에게 물었더니 친절히 가르쳐 준다.

그때 곁에서 젊은 대학생인듯한 젊은이가 우리의 대화를 듣는듯 하더니 내가 길을 건너자

내 곁에 붙어서 따라오는것을 의식했다.

아마 내가 길을 잘못들까 염려해서인것 같았다.

마침 빵집이 있길래 사려고 들어가려하자 이 친구 내 팔을 잡더니 '스린역은 요 앞에서 오른쪽

으로 꺽어서 가야 해요' 한다.

타이베이 사람들은 정말 감동적이다.

여기 온지 이제 일주일도 안됐지만 이들의 친절과 타인에 대한 배려는 참 특별하다.

외국인에게만 그런지, 자기네 끼리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들의 세심한 배려는 놀라움

그 자체다.

이렇게 본다면 타이베이는 여행자에겐 정말 괜찮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교통편 엄청 수월하지, 음식 맛있지, 사람들 엄청 친절하지......

색다른 것이 별로 없어 다소 무덤덤한 볼거리를 상쇄하는 이런 인프라가 타이베이에 일본이나

한국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가 아닐까?

거리에는 일본인이나 한국사람들이 정말 많다.

이들이 이곳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이런 '사람들의 배려'와 맛있는 음식, 익숙한 분위기, 

이런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타이베이의 밤은 화려했다.

지하철 블루라인을 타고 스정푸(市政府)역에 내려 타이베이 101로 가는 길은 우리네 번화가와

다를게 없다.

'타이베이 101'이라는 빌딩은 타이베이에서 랜드마크 역활을 하는 곳으로 엄청 높아서 구름

속에 윗부분이 쌓여서 잘 보이지 않았다.

일본계 백화점의 건물들이 이 일대에 흩어져 있고, 구름다리로 이 건물들을 연결해 두었는데

이 징검다리 같은 구름다리를 걸으면 타이베이의 화려한 번화가 거의 모두를 볼 수 있다.

우중충한 변두리의 건물들과는 판이한 최첨단의 건물들과 크리스마스를 앞둔 장식들로 거리는

화려하게 빛났다.

산골에서 온 나그네의 눈에는 이 화려함이 불편함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놀랍게 보이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방게 처럼 구름다리 위를 흐르고 그 아래 길에는 수많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명멸하고, 상점안에는 온갖 상품들이 쌓여있다.

자본주의의 상징 같은 곳이다.

국가는 이런 풍요한 곳을 반드시 한두군데 형성하고 이 풍요함을 사람들이 숭배하게 하고, 즐기게

하며, 대리만족하게 하고,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게 하며, 그래서 사람들이 더욱 더 경쟁적이 되게

유도한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오며 조금 어지럽다.

이 자본의 풍요한 숲이 괜히 두렵다.

'숲을 두려워 하는 사람, 자신의고독과 어둠을 두려워 하는 사람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런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까?'

소로우의 이 말이 귓전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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