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6일
다소 춥고 바람이 많이 불며 비가 계속 된다는 얘길 듣고 나들이 준비를 했다가 어젠 종일
약간 더운 상태로 다녀, 아침엔 가벼운 차림으로 나섰다.
12월 중순의 타이베이 날씨는 우리네 초가을 날씨였다.
비가 아주 가늘게 뿌렸지만 우산을 들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날씨는 여행이 끝나기 하루전 까지 계속되었다. 초지일관.
타이베이의 시립미술관을 들러기로 작정하고 나섰다.
지하철 위안산(圓山) 역에서 내려 젊은 농부들이 생산한 유기농 농작물을 파는 주말시장을 거쳐
시립미술관으로 갔더니 왠걸, 장기 수리중이란다.
하루종일 비가 올 것같아 실내에서 그림이나 싫컷 보자고 왔는데 좀 난감했다.
일단 미술관 바로 옆에 붙어있는 타이베이 구스관(台北故事館)에 들렀다.
100년 전의 튜더 양식건물이라는데 역사에 관해서는 별로 들은바가 없지만 내부에는 소목(小木),
즉 창살이나 파티션 등을 만든 대패의 종류가 전시되어 있었고, 정교한 솜씨의 창살 모형들이
있다.
어릴때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봤던 물건들이라 참 정겹고 친근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관람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목재소를 하셨는데, 직원들과 이런 창살을 비롯해 소목들이 하는 작은 목공품
들을 만드셨다.
작업장에는 대팻밥이 뒹굴고 톱밥이 쌓였었다.
작은 목재 토막들을 모아 난로를 지피고 고구마를 구워먹던 작업장은 늘 젊은 사람들로 훈훈
했었다.
대팻밥을 응용해 꽃잎을 만들어 액자에 걸어 둔 센스가 돋보이는 타이베이 구스관에서 옛
우리집 목재소가 생각난다.
여행을 하면서 그곳의 먹거리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그것은 현지의 특별한
음식이 늘 비싸기도 했지만 그것을 먹으려고 찾아다니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았었는데 이곳
타이베이는 워낙 음식이 소문 나 있고, 그런 음식들이 비싸지 않은 서민들의 음식이라는 점에서
호기심이 생겼다.
보아하니 타이베이는 특별한 볼거리나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 별로 없어서 가이드에 적힌
맛집을 한번 탐방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남의 나라에서 한번도 시도한적 없는 맛집 기행(!).
가보고 싶은 곳은 중정지넨탕(中正記念堂) 옆이라고 되어있다.
타이베이 가이드북에는 이상하게도 페이지의 2/3가 맛집 소개였다.
그렇다면 이곳은 그런 분야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많다는것. 또 그런 집이 많다는것.
나도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중정지넨탕(中正記念堂)에 내려 찾아 간 만두 전문점 '황저우 샤오랑탕바오'(杭州
小籠湯包)는 과연 맛있었다.
이름 그대로 대나무 그릇에 쪄낸 만두는 육즙이 터져 뜨거웠지만 그 맛은 우리 입맛에도 전혀
거부감 없는 맛이다.
밖엔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한번도 줄을 서서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어 좀 민망하고 어색했지만 남의 나라니 그것도 감수된다.
만두를 먹어본 후, 아하! 이거 찾아 다닐만 하군. 하고 생각했다.
중정기념당은 어마어마한 넓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도무지 왜 이런 공간의 낭비를 하지? 하고 생각될 정도다.
엄청 큰 음악당 하나, 똑 같이 큰 공연장 하나, 그리고 장개석의 무지막지하게 큰 동상이 있는, 역시
허풍스럽게 큰 건물 하나, 이렇게 세개의 건물이 넓은 부지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념당 안을 둘러 보다가 괜스레 남의 나라 건물에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총통으로 불리던 사내, 장학량이라는 풍운아를 라이벌로 인식하고 평생을 투옥해 놓고, 그것도 모자라
본토를 철수하면서 데리고 나와 다시 투옥해 두고 그곳에서 죽게 만든 장본인, 다섯째인가 여섯째인가
부인으로 부호 집안의 딸이자 자신의 밑거름으로 쓸 여인을 취한 사내.
그에 대한 이미지가 썩 좋지 않은 내겐 이 기념당은 거부감이 생길밖에....
그런 사내가 아니더라도 한 인간을 위한 기념당이 이렇게 커야할까?
이 사낸 이런 광활한 부지에 누울 가치가 있을까?
이런 상념들이 자꾸만 인다.
3층에 올라 갔을땐 그 거부감이 절정에 다다랐다.
엄청나게 큰 청동 동상이 턱하니 버티고 있고 그 아래에선 경비하는 초병들이 교대식을 위해 번쩍
거리는 철모를 쓰고 도열하고 있고, 많은 관람객들이 카메라로 찍기에 여념이 없다.
1975년에 장개석이 사망하자 이듬해에 그의 추종자들이 기공식을 가져 1980년에 완공했다고 하니
3-4년 정도의 공사기간이라는 얘기다.
이 광활한 부지의 이 무지막지하게 큰 건물을 3-4년만에 완공했으니 당연히 졸속공사가 뻔한데, 벌써
밖의 계단은 가림막을 쳐 두고 페인트를 벗기는 작업이 한창이다.
모든 건물을 시멘트로 지어 외관에 페인트 칠을 한 까닭에 거뭇하게 벗겨지고 비바람에 퇴색해서
보기에 흉하다.
새로 칠하고 단장하면 또 당분간은 산뜻할테지.
유럽의 유적들과 비교해 보는건 의미가 없지만 역사에 남을 (그들에겐) 구조물에 수십년을 할애
하는 그들과 이것은..... 뭐 우리네도 다를것이 없으니.
언젠가 우리네 독립기념관 완공후 1년쯤 지나 가 본적이 있는데 그때의 실망감이 떠오른다.
그 뒤에 한번도 그곳을 가 본적은 없다.
졸속공사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고, 그림 화면으로 도배된 전시물들을 봤을때의 그 씁쓸함은
지금도 짠하다.
우리는 왜 이따위밖에 못하며, 뭐가 급해서 이렇게 빨리 지어야 하며, 또 내용물없는 공간을
이렇게 크게 지어야 하는지 등등......
독립 기념관을 뒤로 하며 들었던 그 씁쓸함이 남의 나라 기념당을 보며 드는건 ......
실내에 들어 가서는 그 거부감은 더했다.
권력자가 정당성이 없거나 품성이 별 볼일 없는 인간일수록 그를 기념하는 건물은 커지게 마련.
엄청나게 넓은 실내에는 장개석이 받았던 수많은 훈장, 문서들, 옷가지들과 장개석이 탔었다는
커다란 자동차 2대. 수많은 사진들.
왜곡된 인식이 내 속에 있는지는 모르나 도무지 추앙 받을수 없을 것 같은 한 사내를 위해 이런
구조물이 있다는것이 괜스레 나그네의 울화를 자극한다.
'수의(壽衣)에는 호주머니가 없다'는 교훈을 되뇌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염체는 있어야 하는데......
나에게 확정편향의 기질이 뚜렷해서 그런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 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그렇게 부르던데 ......
니체가 '도덕의 계보학'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국민은 지도자의 정책이나 노선을 보고 지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메세지 보다 메신저를 먼저
본다. 노선이 아니라 리더십이 중요한 것이다.
대중은 이슈 보다는 이슈를 다루는 태도를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유불리 따지지 않고 앞서 싸우는
전사의 권력을 더 신뢰한다'
잘 생기고 영악한 장개석은 자기 수첩에 니체의 이 말을 적어두고 있었던게 아닐까?
그렇지만 중정기념당에서 전혀 소득이 없었던건 아니다.
실내의 별실에는 많은 회화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특히 산수화를 그린 중견 작가의 수묵화는 대단히 뛰어난 기량을 가진것을 단번에 알 수 있도록
눈길을 끌었다.
그는 쏟아지는 물줄기, 폭포, 흐르는 강물들을 그리는데엔 일가견이 있는듯 작품에 힘이 넘쳐서
다소 비판적이 되었던 마음을 녹이는데 한 몫을 톡톡히 했다.
그의 작품을 한시간여 관람하고 입구에 놓인 방명록을 보니 현지 대만인들이 써놓은 이름들이
보였는데, 이게 또 작품이다. 자기네 글씨라고 하지만 어찌 그리 하나같이 멋들어진 글씨인지
감탄하지 않을수가 없다.
나도 내 이름 석자를 써 봤지만 괜히 붓을 잡아 망신만 당한 듯하다.
나중에 다른 곳의 서체 전시실에서도 봤지만 이들의 한자 글씨체는 정말 훌륭해 보였다.
수묵화 외에도 유화, 수채화 등 많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어 세시간 이상 머물다 나왔다.
회화작품을 많이 보고픈 갈증을 어지간히 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곳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다안선린궁위안(大安森林公園)을 들러 주말 꽃시장과 옥시장을 둘러
보았다.
꽃시장은 꽃은 물론 꽃에 대한 모든 자재를 파는 축구장 넓이의 굉장히 큰 주말시장이었고,
옥시장은 그저 그런 잡다한 옥제품과 장신구, 그림 등을 파는 곳인데 별 볼것은 없다.
이제 이곳의 맛집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우리 입에 전혀 거부감이 없는 '간이 맞는' 음식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근처의 소문난 쌀국수와 새우튀김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간이 맞다'는 말은 함선생의 남편이 하신 말씀인데 정말 적절한, 대만의 음식을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뒤에 음식을 먹을때마다 '간이 맞다'라고 몇번이고 되뇌었다.
타이베이는 돌아 다니기 무척 편하다.
갈 만한 곳은 거의 지하철 인근에 있고, 지하철은 시스템 자체가 복잡하지 않고 우리네 방식과
같아서 전혀 불편함이나 어색함이 없다.
역 이름이 모두 읽기 좋은 한문으로 되어있어 편리하고 그 글씨 역시 중국식 간자체가 아니라서
읽는데 아무런 부담이 없다.
예를 들어 '스린'을 '사림'(士林)이라고 읽으면 되니 현지명을 알아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러시아에서 지하철 역명을 알아야 해서 생전 처음 키릴문자 읽는법을 공부했던 골치 아픈 기억이
있었는데 그럴 일은 없다.
게다가 길을 물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친절히 응해서 오히려 미안할 정도다.
가이드북에 있는 저녁 먹을 집을 찾느라 두 젊은 여성에게 물으니 한 여성이 안고 있던 아기를
옆 친구에게 던지듯 맡기고 앞장서서 안내하는거였다.
이런 정도니 뭐 길을 찾는데엔 전혀 문제가 없고, 왠만한 시스템이 우리와 같으니 불편한 것이
정말 조금도 없었다.
이곳은 외국이 아니라 잠시 도시에 다니러 온 것 같은 그런 곳이다.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낯설지 않은 타이베이 (0) | 2018.01.03 |
---|---|
(4) 낯설지 않은 타이베이 (0) | 2018.01.02 |
(2) 낯설지 않은 타이베이 (0) | 2017.12.31 |
(1) 낯설지 않은 타이베이 (0) | 2017.12.31 |
(15) 발리, 그리고 우붓 (0) | 2017.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