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8)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7. 27. 12:31

 

2011년 3월 2일 (로토루아 - 타우포 - 투랑기 - 통가리로 국립공원)

 

모텔 주인 아줌마의 배웅을 받으며 이른 아침 우리는 로토루아를 출발, 타우포를 거쳐 통가리로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통가리로는 지도상으로는 로토루아에서 얼마되지 않는 거리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멀게 느껴진다.

아름다운 타우포 시내, 맑은 하늘과 청명한 공기, 타우포 호수가 마치 바다처럼 도심옆에서 빛나고 있었다.

뉴질랜드 도착부터 느꼈지만 이곳은 어딜가나 '밝게 빛난다' 한국의 맑은 가을날씨와는 전혀 다른 느낌인데, 공기 때문인지

아니면 풍경 때문인지, 낮게 깔린 건축물 등 인공 구조물들 탓인지 문자 그대로 밝고 환한 아름다움이 있다.                            어느 곳이나 넓고 하늘은 광대하게 열려있다.

 

오늘과 내일 먹을 양식을 사러 수퍼마켓에 들렀다.

뉴질랜드는 우리네 처럼 동네마다 작은 가게가 있긴 하다. 그렇지만 극히 적은 숫자에다 파는 물건들도 제한적이다.

대신에 도시마다 1개 내지 2개의 대형 수퍼마켓이 있는데 '파큰 세이브', '카운트 다운', '뉴 월드' 등이 그것이다.

처음에 이들 매장에 발을 들여 놓았을때 그 놀람은 몇 번의 출입에도 불구하고 여전하다.

규모도 엄청나지만 그 안에 진열된 물품의 다양함에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풍요' 그 자체다.

특히 과일 코너나 육류 진열대에 이르면 그 현란함(!)에 잠시 어리둥절하기 까지 하다. 강아지를 위한 소시지 등 육류 진열대만

하더라도 우리 대형 수퍼마켓의 한 코너에 이를만큼 크다.

주점부리 땅콩과 과자 코너는 대략 20미터는 되는 진열대에 수백가지다.

이를테면 사과가 있는 진열대엔 적어도 사과 종류만 10여 가지가 있는 등 과일의 종류만도 대충 셈해도 100여 종류도 더 되는 것

같다. 와인 코너에는 수백 종류의 와인이 가득하고 공산품 진열대엔 세계 각 국의 물건들이 엄청나게 쌓여있다.

우리가 알기론 이 나라엔 제조업이 극히 미비하고 공장시설이 거의 없기로 정평이 나 있는데, 그렇다면 이 모두가 거의

수입품이라는 얘기다.

이 사람들은 자기네 나라는 공장 굴뚝 하나 없이 남의 나라 공장에서 생산한 물건들을 들여오므로서 자기나라는 청정상태를

유지하지 않는냐는 묘한 비아냥이 절로 나오게 한다.

왠지 뉴질랜드의 수퍼마켓에서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이들의 지나친 풍요함이, 절제를 미덕으로 사는체 하는 한국의 산골

에서 온 나그네를 참으로 곤혹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풍요의 장소에 서성이며 물건을 고르는 자체가 왠지 죄를 짓고 있는것 처럼 꺼림칙하다. 참, 이 어설픈 사회주의자!

뉴질랜드인들이 미국인들 처럼 소비지향적이고 대량소비적인 사람들이 절대로 아니라는 설명을 들은적이 있지만 적어도

이들의 수퍼마켓 에서는 그런 기분은 전혀 들지 않는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체로 식료품의 가격은 상당히 싸다. 육류도 싸고, 과일, 채소류도 싸다. 그렇지만 낙농국인 이 나라의 우유 등

유제품은 이상하게 싸지 않다.

유럽의 나라들에서도 느낀거지만 사람의 손이 간 음식은 지나치게 비쌋지만 기본적 식생활의 재료는 참 저렴하다.

음식의 재료나 식당의 음식값의 차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던 인도나 네팔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굉음과 물보라가 치는 곳이 도로옆에 있길래 이정표를 보니 '후카 폭포' 란다.

차에서 내려 폭포 옆에 다가가니 욱! 하는 울림이 있을 정도로 폭포는 크기가 엄청났고 수량(水量)이 상상 초월이다.

폭포가 떨어지는 아래의 소용돌이에는 모터 보트를 탄 관광객들이 소릴 지르고 지들끼리 뽀뽀를 해대고 난리다.                         엄청난 수량이 푸른 빛으로 빛나고 사람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점심때 쯤 타우포에 도착한 우리는 타우포 호수옆 벤치에 앉아서 빵과 버터, 요쿠르트와 바나나로 점심을 먹었다.

뉴질랜드는 호숫가나 바닷가, 공원 등등 경관이 좋은 곳에는 반드시 테이블을 갖춘 벤치가 있다. 또한 바비큐를 할 수 있는

구이판이 있다. 처음에는 이 구이판이 장식용으로 있는 줄 알았는데 지속적으로 관리가 되고 있고, 가스가 나와 직접 조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때는 조금 놀랐다.

말하자면, 수퍼에서 식료품을 사다가 공원이나 호숫가에 가기만 하면 고기를 구울수 있고 먹을것을 차릴 수 있는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우리는 뉴질랜드 전역을 다니면서 점심식사를 하는데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기 보다는 오히려 행복했다. 어디서 이런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느긋한 점심식사를 할 수 있겠는가.        타우포의 호수는 도시곁에 있지만 물이 거울같이 맑고, 바닷물 처럼 군데 군데 코발트 빛깔을 띄고 있었고, 심지어는 점심

먹는 우리 곁에 갈매기 까지 날아 들었다.(정말 갈매기 같았다)

호수를 일주하는 도로를 달리다 보니 파도까지 밀려온다. '참, 너희는 복 받은 땅에 사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하늘은 공평한 법! 지진이 있잖은가. 이곳 땅의 절반이 '불의 고리' 위에 얹혀 있다니..... 뭐 이쯤되면 공평하단 얘긴가?

 

아침에 출발할때 모텔 아줌마가 웰링턴에도 진도 4.5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했다.

이 화려한 풍광속에서 우울한 지진 소식을 떠올리는 일은 참 생경스럽다. 통가리로를 지나면 웰링턴으로 갈텐데, 어째 지진이

우리가 가는 곳에서 미리 미리 발생한다는 느낌이다.

통가리로 국립공원에 도착하니 짙은 안개와 함께 비가 내린다. 이곳의 여름철에는 좀처럼 비가 내리는 법이 없다고 했는데......

그래서 도착하고 밥 해 먹은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다.

우리는 62불을 지불하고 '스코텔 알파인 리조트'의 백패커스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과 백패커스를 같이 운영하는, 우리네

숙박업소에는 절대(!) 없는 형태의 숙소다.

말하자면 아주 싼 숙소와 아주 비싼(우리에게) 숙소가 같이 공존하는 것이다.

통가리로 국립공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북섬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 있으며 1966년에 대폭발이 있었다는

활화산이 있다. 우리는 미리 트래킹 루트를 정해 두었는데 이런 날씨로 가능할지 내일을 기다려 봐야 한다.

안내대에 가니 '내일도 비가 옵니다' 하는 메모를 크다랗게 써 붙여 놓았다. 트래킹에 대한 큰 기대를 하고 이곳을 왔는데......

내일은 내일로.....

 

아내의 거절로 혼자 지하 사우나에 가니 샤워시설과 함께 우리네로 치자면 찜질방이 있다. 이게 왠 떡!

가볍게 샤워를 하고 무심코 옷을 홀랑 벗고 찜질방 문을 열고 들어서려다 화들짝 놀라 물러났다. 아니! 남녀 혼탕이다!

(샤워시설은 따로 되어 있고, 각각의 샤워실에서 양쪽 출입문을 통해 찜질방으로 들어가는 구조로 되어있다)

커다란 타올로 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몇 젊은 녀석은 고추만 가리고 앉았다. 밖에서 잠시 망설이다 안에서 백인 녀석들이

화들짝 뒤로 물러서는 동양녀석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아 에라! 하고는 타올로 아랫도리를 가리고 들어섰다.

처녀애들은 가슴을 가리고 땀을 흘리고 앉았고 사내애들은 뜨겁게 달궈진 돌에다 연방 물을 끼얹고 장난질이다.

짐짓 태연한 척 하고 앉아서 땀을 뺏지만 어째 좀 캥긴다. 이 녀석들 얼마나 체격이 좋냐! 가슴에 털은 또 왜 그리 많냐!

한참 있다 일어나 타올로 아랫도리를 감고 몸살림 운동 체조를 하니 이 녀석들 동양의 신비롭고 경이로운(!) 내 동작을 경외의

눈길로 바라본다. 흥, 가소로운 어린 녀석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