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3일 (통가리로 국립공원)
이곳의 백패커스는 대단하다.
시설의 규모가 대단한게 아니라 이들의 꼼꼼함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좁은 2.5평의 방안에 침대 두 개를 배치하고 스팀으로 타올을 말릴 수 있는 스팀바, 세면대와 창문, 독서등과 3단 선반, 서랍,
그리고 옷걸이를 빼곡히, 그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이 놀라운 배치에 이틀을 묵으면서 우리는 새삼 감탄하곤 했다.
일본인들이 이런건 잘 하는것으로 알았는데, 덩치 큰 이들의 꼼꼼함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커다란 덩치의 키위들이 이 좁은 방안에서 쬐그마한 선반과 서랍을 달고, 스팀바를 설치하는 것을 상상하면 좀 우습기도 하다.
백패커스 라는 시설이 뉴질랜드에서는 젊고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배낭족 여행객들을 위한 숙소 형태인데, 이런 여행객들을
위해 공간은 최소한으로 줄여 객실수를 늘리고, 그 좁은 공간은 숙박객이 최대한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배려한 이 놀라운
설계는 우리네가 배워야 한다. 두 평이 조금 넘는 이런 공간은 사실상 요즘의 우리네 숙박시설엔 없기도 하지만 설사 있더라도
보나마나 이불한채와 배게 두 개정도 놓아 둘 엄두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왜 이렇게 광대한 땅을 가지고서도 인간들이 거할 장소를 이토록 아끼는 걸까?
우리네는 좁아터진 땅을 갖고서도 스케일은 대단해서(!) 뚝닥뚝닥 잘 만 지어대는데......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류시화)에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미국인들이 수우족 인디언 추장들에게 워싱턴을 구경시켜 주며 미국 국회의사당과 미술관을 보여주자 늙은 추장이 하는 말이
"정말로 얼굴 흰 사람들의 철학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자부심과 위엄을 간직한 채 수세기 동안 서 있어 온 숲들을
넘어뜨리고, 어머니 대지의 가슴을 마구 파헤치며, 은빛 물줄기들을 더러운 시궁창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신의 그림들과
걸작품들을 가차없이 파괴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작은 사각의 종이위에 수많은 물감을 발라 그것을 걸작품이라 찬양한다"
하긴 우리네 토건족들은 미술품을 찬양하는 위선을 저지르진 않는다.
일부 별 세개 그룹 회장이라는 자는 미술관을 아들 이름을 따서 만들어 가문의 교양을 과시 하기도 하지만.....
아무튼 우리는 이 좁아터진 방에서 온갖 물건들을 늘어놓고도 별로 불편없이 지낼 수 있었다.
밖에는 공동부엌과 지나치게 깨끗한 화장실과 샤워실이 만족스럽고(뉴질랜드에서는 샤워실의 온수가 어딜가나 충분하다)
지하층에는 탁구대와 오락기, 찜질방, 미니 당구대가 있다.
심지어 샤워실 입구에는 옷을 벗거나 샤워를 마치고 나와 몸을 딱는 작은 공간에 따뜻한 온기를 쬐도록 장치를 해 두어 한기를 느끼지 않게 배려한 것 등은 참으로 '대단'하다.
고객에게 '어떻게 하면 만족을 줄 것인가'를 생각하며 설계를 한 것 같다.
꼼꼼함을 경멸하는 듯한 못난 우리네가 배워야 할 덕목이다.
아침에도 역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우리는 작은 배낭에 간단한 옷가지와 점심으로 먹을 것만 챙겨 나섰다.
10시쯤에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찌푸린채다.
통가리로 산은 정말 인공적인 산 같다. 마치 굴삭기로 땅을 파서 쌓아올린 산처럼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없을 것 같은 짙은 갈색의 산이 아무런 굴곡없이 마치 인공 조형물 처럼 삼각형을 이루며 서 있다. 어디에서도 저런 산은 처음 봤다.
자연에 대한 아무런 아름다움이나 감흥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커다란 산이 피라미드 처럼 서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자동차로 절반 정도 올라 간 곳에는 겨울에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리프트가 돌아가고 있고, 사방은 나무 한그루 없이 몇 일전에 화산이 폭발하여 사방팔방으로 용암이며 돌덩이들이 튀어 올랐다 떨어진 것 같은 모양새다.
그렇지만 멀리 보이는 끝이 없는 구릉과 평원은 보는이를 충분히 압도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 이곳 뉴질랜드에서 촬영
되었다고 들었는데, 영화에서 보았던 그 광대한 풍경 그대로다.
이 넓은 평원에 우리네 인구 2천만 정도만 풀어 놓으면 이곳도 심심치 않고, 우리도 살 만 할텐데......
너무나 넓어서 트래킹도 심심하고 오가는 사람들도 심심하고, 풍경도 심심할 지경이다.
스키용 리프트는 관광객을 정상 가까운 곳까지 실어나르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우리는 화산 용암이 굳어 첨예한 각을 이루고 있는 언덕에 올라 가파르게 내려꽂힌 골짜기를 내려다 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닌것 같다. 마치 화성에 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름모를 행성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원색의 옷을 입고 띄엄띄엄 걷고 있는 관광객들만 보이지 않는다면 꿈 속의 풍경 같기도 하다.
역시 자연 훼손을 최소화한 산장들과 찻집, 스키 대여점들이 주변의 짙은 갈색과 똑 같은 색으로 몇개가 있다.
우리는 자동차로 산을 내려 오면서 곳곳에 차를 세우고 눈아래 펼쳐진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구릉과 평원을 내려다 보며
한숨을 쉬곤했다.
저녁나절 돌아와 2인용 밥솥에 밥을 지어 수퍼에서 구입한 채소로 셀러드를 만들고, 소고기 스테이크를 만들어 공동식탁에
앉아 먹고 있으니 두 젊은이가 계속 우리를 흘큼거리더니 옆에 와서 앉는다.
우리가 한국의 해산물이라며 김을 한조각씩 주니 냠냠거리며 먹는다. 인도 친구는 한국의 김을 몇번 먹어 봤다고 한다.
한 친구는 인도, 한 친구는 뉴질랜드 인이다. 둘이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진 몰라도 인도 젊은이는 거의 히피풍 스타일이다.
우리가 먹는것을 유심히 보고 있더니 뉴질랜드인 젊은이가 한마디 한다.
"이렇게 깨끗히 차려서 먹는 한국인은 처음 봤다"
"무슨 말이야?"
"한국인들이 음식을 먹는것을 많이 봤는데 대개가 이렇게 깨끗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 니들이 그런 인간만 본 것 같은데, 대개의 한국인은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식사를 한다"
"......."
다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거의 이런 얘기였다.
아니, 이 녀석들은 대체 어떤 한국사람들만 본게야! 김치 와 고추장 풀어서 질펀하게 먹고 있는 한국인만 본 걸까?
하긴 이들의 유별난 초간단 식단과, 우리의 질펀한 식단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긴하다.
더구나 이들은 집에서는 지들끼린 질펀하게 먹으면서도 여행길에서는 유발스레 간단 메뉴만 먹는것을 알기는 한다.
그렇지만 왠지 한국사람들에게 갖고 있는 이들의 인상이 그렇게 좋은것 만은 아닌것 같아 좀 만회를 해야겠는데 몇마디
대화외엔 더 진행할 수 없는 콩글리쉬 때문에 명박님께서 그렇게도 강조하시는 국격(!)의 상승을 시도하진 못했다.
내일은 이 나라의 수도 웰링턴으로의 긴 여정이다. 5시간 정도의 운전이 될 것 같다.
그렇지만 긴 운전이 그리 싫지 않다.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어딜가도 '반지의 제왕' 속 이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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