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27일 오클랜드-해밀턴-오토로항아-와이토모 케이브
아침 9시쯤 아펙스 렌탈 회사로 자동차를 인수하러 갔다. 회사 동료의 아들 '훈'씨가 렌탈 회사까지 자신의 자동차로 동행해 줬다.
아펙스는 뉴질랜드에서는 거의 중견급 회사로 규모가 상당했다.
뉴질랜드의 자동차 대여회사는 허츠, 마우이, 버짓 등의 국제적 대규모 회사들과 아펙스, 브릿츠 등 중간규모와 더불어
각 지방에 분포된 수백개의 회사들이 있어 회사의 규모와 대여료가 천차만별이다.
큰 회사는 대여료와 보험료가 비싸며 까다로운 조건이 많이 붙고, 군소 회사들은 그 만큼 대여료가 싸고 조건도 별것 없다.
지방의 작은 회사들은 큰 회사에 비해 차량이 많이 낡아 대여료가 1/3 정도가 되는 곳도 숱하다.
아펙스는 수백대의 차가 회사 뒷켠으로 빼곡했고, 깨끗하게 단장되어 산뜻하다.
여권을 제출하고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한 조건의 대여 서류에 서명하니 뉴질랜드 남북섬의 지도와 반납할 장소(오클랜드 외곽인
이곳이 반납처로는 맞지 않아 오클랜드 중심가로 반납처를 지정했다)의 상세한 도심 지도를 건네고, 보험의 조건, 보상 한도
등을 설명하는데 이거 원 다 알아 들을수가 있나..... 대충 알아들었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최종적으로 또 한번의 사인을
하고나니 차 키를 준다.
마당으로 나가니 이미 차가 나와있다. 흰색 2004년식 1500CC, 80,000KM 정도 뛴 일제 써니, 뒷 범퍼에 약간의 흠집이 나 있지만
뭐 그럭저럭 괜찮다. 기름은 가득 채워져있고 차량상태를 체크한 직원이 복사본 한 장을 나에게 건넨다.
"반납할때 요 상태대로 반납해야 해!" 하는 투다.
사무실 안에서 이 여정의 출발인 해밀턴 쪽으로의 진입로(유일한 고속도로)를 몇 번이고 '훈'씨에게서 설명을 들었지만
그래도 '에라 모르겠다, 어찌 되겠지!' 하는 맘이 더 크다.
일단 오클랜드라는 이 큰 도시만 벗어나면 그 다음부터는 도시라야 우리의 읍(邑) 만한 도시라고 하니 뭐 크게 염려할건
없겠지 하면서......
'훈'씨와 헤어지고 우리는 짐을 뒷 트렁크에 싣고는 넓은 마당을 몇바퀴 돌았다. 출발할때 아내와 나는 국제 운전 면허증을
발급 받아 가지고 왔지만 아내는 운전할 생각은 아예 없는 듯 하다. 하긴 아내 것은 비상용이라는 개념이었으니.....
차는 생각보다 가벼운 몸놀림이다. 자, 이제 출발!
렌탈회사를 빠져나와 첫번째 로타리를 벗어나서 직진, 두번째 로타리를 돌고 다시 직진.... 운전대는 오른쪽, 도로는 좌측통행,
로타리는 오른쪽 회전, 로타리의 왼쪽에서 진입하는 차에게는 무조건 양보...... 몇차례나 사전에 인식시킨 이 나라의 규칙을
떠올리며 긴장하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이런!...... 차를 세우고 주유소에 내려 주유중인 중년남자에게 묻고, 또 조금가다
묻고 하다가 해밀턴 행 고속도로의 입구가 보인다! 한숨을 몰아쉬고 고속도로에 올라타니 안도하는 옆자리 아내의 숨소리가
그제서야 들린다. '기발한 걱정'이 주특기인 아내로서는 이 간 큰 남편의 모험이 어떻게 다가올까?
때로는 한대씩 쥐어박고 싶을테지.
그러고보니 우리 참! 간 크다.
제대로된 영어도 못하면서(순전히 엉터리 콩글리쉬!) 남의 나라에서 차를 빌려 지도만 보고 운전을 하여 뉴질랜드 전역을
돌아다닐 엄두를 내다니!....
이건 뭐 배짱도 아니고 오기도 아니고......턱도 없는 영어로 겨우 먹는 것, 타는 것, 자는 것만 해결하는 모험을 그래도 수년간
남의 나라에서 해 본 경험이 이런 모험을 가능케 한 것 같다.
그렇지만, 몇 년전 뉴질랜드를 두어달 동안 자동차 여행을 하고 돌아와 우리에게 자동차 여행의 묘미와 함께 뉴질랜드의 도로
사정, 길 찾기, 주차 등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쉽고 멋진것이 뉴질랜드에서의 자동차 운전이다" 라고 한
친구의 말에 용기를 냈던 것이다.
일단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보니 뭐 별로 어색하진 않다. 아내로 부터 차가 자꾸 왼쪽으로 기우는것 같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그건 운전대가 우리와 반대쪽에 있는지라 시간이 지나면 교정될 것이고.....
여유를 찿은 우리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미처 못했던 차 안의 CD플레이어와 에어콘 등을 점검하고 다시 출발했다.
3시간후 우리는 와이토모 동굴에 도착했다.
가이드북에 있는 백패커스에 여장을 풀고 우리는 바로 와이토모 동굴로 직행, 무지하게 비싼 입장료(1인당 46불)를 내고
십수명의 관람객들과 함께 들어 갔는데 동굴자체는 별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조그만 배를 타고 동굴속 물길을 따라 미끄러져
들어간 동굴의 천장에는 수많은 반딧불이가 마치 은하수 처럼 떠있다. 우리네 반딧불이는 반짝거리는 빛을 내지만 이곳
반딧불이는 지속적으로 빛을 내고있기 때문에 그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반딧불이가 내는 빛은 마치 은하계를 바로 곁에서
보는듯한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참 이색적이면서도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스무명 가량이 한 배에 타고 고요한 동굴속에서
쳐다보는 천정의 무수한 푸른빛은 그렇게 신비로웠다.
배에 동승한 동굴관리소의 여성 가이드가 쉿!하는 신호를 하곤 그 고요속에서 낮은 음성으로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는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 " 으로 시작되는 '연가'라는 노래였다. 한국전쟁때에 파병되었던 뉴질랜드
병사들이 우리나라에 퍼뜨려 '연가'가 되었다는 이 노래의 원 제목은 "Po Karekare Ana"로 원주민인 마오리 출신의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가 불러 유명하다고 한다.
그 노래는 동굴속을 낮게 깔리며 묘한 여운과 함께 시큰한 눈물샘을 자극한다.
만일 저 반딧불이가 없다면? 그렇다면 와이토모 동굴은 세계적으로 알려지지도 않았을 별 볼일 없는 동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백패커스(JUNO hall)는 작은 규모다. 2층 침대가 있는 2.5평 정도의 쬐그만 방이 66불! 약 5만원이다. 우리나라에서라면 1만원
짜리 방 쯤 되겠다. 와이토모 동굴이라는 관광지가 있는 곳이라 그러한가 보다.
앞으로의 여정이 주로 이런 방에 묵어야 한다니 조금은 실망스럽다. 그렇지만 특별히 불편하지는 않다. 이 키위들의 방은
좁고 집기가 없을 뿐이지 이부자리가 지저분 하지는 않으니, 뭐 호사를 하려고 시작한 일은 아니니까.....
('키위' 는 뉴질랜드인을 칭한다)
젊은이들이 많다. 그들의 분망함이 부럽다.
우리는 공동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역시 공동 부엌에서 밥을 해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샤워실의 푸짐한 뜨거운 물이 비싼 숙박료를 그나마 잊게 한다.
공동 거실에 철 지난 무쇠 난로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내일은 로토루아 행(行). 그곳엔 이틀을 묵을 예정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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