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32)중늙은이의 히말라야 일기

운농 박중기 2013. 7. 29. 15:19

3월 21일  (포카라의새, 그리고 헨자마을)

 

포카라의 아침은 새소리로 시작된다.

 레이크 사이드의 호텔과 게스트 하우스, 레스토랑에는 나름대로의 영업 방침인지 정원에 갖가지 꽃을 많이 가꾸는데다, 특히 네팔 특유의 덩굴성 식물이 많이 자라서 3월 부터는 꽃이 만발이다.

 하긴 정원을 잘 가꾸고 꽃이 만발한 곳 일수록 손님이 많다.

 특히 이곳의 꽃은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네 꽃들처럼 수수하고 소박하며 색깔이 연하거나 중간색 톤 등은 별로 없고, 강렬한 붉은 색이나 주황색, 짙은 푸른색 등 원색에 가까운 꽃들이 많이 피어있어 몹시 화려하다.

 물론 트래킹 중의 산야에 늘린 들꽃들은 소박하고 가녀린 우리네 강산의 들꽃 같은 꽃들이 많지만 포카라 시내의 꽃들은 그런 분위기 하고는 많이 다르다.

 나로선 꽃 이름을 알 순 없지만 어떤 것은 키가 10미터 정도 되는 큰 나무 전체가 붉은 꽃으로 뒤덮인 것도 많아서, 가히 꽃의 전시장이라 할 만하다.

 또, 웬만한 집엔 바나나와 파파야 나무가 한두 그루씩 있어서 싱싱한 열매가 꽤 달린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새가 많다. 새가 많다는 건 먹이감이 많다는 것이고, 레이크 사이드 큰 도로변 뒤에는 개인 주택이 많은데, 이 집들 사이에는 크고 작은 채마밭이 있어서 벌레도 많이 있을 것 같고, 식물들의 씨앗도 많을 것 같다.

 그래서 아침이면 온갖 새가 지저귀고, 사람들은 이 시끄러운 새소리에 아침 잠을 깨곤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라지고 없는 참새같이 생긴 작은 새 부터, 우리와 모양이 약간 다른 까치, 비둘기는 물론이고 등짝이 온통 화려한 파란색을 띤 파란새, 깃털이 붉고 노란새, 트래킹 때 랑탕 계곡 옆에서 본, 펼친 날개가 족히 1미터가 넘는 독수리 까지 참으로 다양한 새가 있다.

 그래서 포카라 레이크 사이드의 아침은 새가 넘쳐난다. 참 좋은 기후와 환경을 가졌다. 포카라는......

 

 오늘 마지막 나들이를 나가기로 했다.

 내일은 하루 동안 외출을 않고 온전히 쉰 다음 모래 카트만두로 가서 그곳의 일정을 줄이고 중간 기착지인 태국의 방콕에 내려 몇일 관광후 귀국하기로 했다.

 민박집 주인장에게 연락해서 비행일정을 항공사와 조정해 두도록 부탁했다. 민박집에 e-티켓을 맡겨두고 온 터라 조정에 별 문제는 없을 터이다. 

 방콕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정보는 전혀 없지만 뭐,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여기와는 달리 관광객이 많다하니 그런 걱정은 그곳에 가서 할 일이다.

 어쨌든 오늘은 사랑콧에서 내려다 보면 바로 아래로 보이는 티베탄 난민 캠프인 헨자 마을로 가기로 하고 호텔을 나섰는데, 바그룽 버스정류장까지 가서 그곳에서 페디 행(페디는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코스의 시발점 중 하나이다) 버스를 타고 달리다 헨자 마을에서 내리면 된다.

 바그룽 버스정류장에 가자고 택시 기사에게 이르고 앉았으니, 이 친구는 우리가 의례 이 지역을 잘 모를 거라고 여기곤 포카라의 메인 스트리트에서 곧장 일직선으로 올라가면 있는 곳을, 우리가 이미 낯익은 올드 바자르 쪽으로 빙 둘러 간다. 그리고는 어디에 갈 작정이냐고 묻는다. 행선지는 이미 말해 두었기 때문에 우리는 헨자마을에 갈 거라고 했더니 바그룽 버스정류장을 지나쳐 횡 하니 헨자 쪽으로 달린다. '스탑!' 우리의 요구에도 그는 천연덕스럽게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돌아본다. '우리는 처음부터 당신에게 바그룽 버스정류장으로 가자고 했다.'  '오, 쏘리...... 어쩌고' 하면서 차를 돌린다.

 네팔리 중에서 소위 '까진' 친구들이 택시 기사와 게스트 하우스나 호텔 지배인, 그리고 레스토랑 종업원이라고 하는데, 뭐 어느나라 건 비슷한 것 아닌가.

 우리는 군소리하지 않고 미터기에 나와 있는 돈을 지불하고 바그룽 버스정류장에서 헨자 마을 행 버스를 탔다.

 헨자 마을의 티베트 난민촌은, 앞서 방문했던 타실링 티베탄 난민촌보다도 규모가 훠씬 크고, 사원의 규모도 역시 크다. 물론 난민촌이라기보다 정착촌 형태다.

 그런데 이 지역은 침식 지반이 양쪽으로 이뤄져 있어서 마을 옆으로는 무척 깊은 침식지형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고, 농지는 양쪽의 침식지를 두고 솟아오른 지반위에 있는 아주 특이한 구조다. 마을 옆을 지나가는 도로 아래쪽은 또 한 층의 침식지가 크게 꺼져있어, 그 아래로는 세티 건더키 강의 잿빛 강물이 흐르고 있다. 말하자면 두개층의 침식지가 연이어 펼쳐져 있는데, 이 침하된 지반이 몇 미터 단위의 높이들이 아니고 몇 십미터 단위의 높이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아찔한 현기증이 날 정도인 곳이 많다. 이런 지형은 그 어떤 곳에서도 본 적이 없다.

 이 묘한 지형의 헨자 마을은(포카라에서 페디 까지 거의 같은 형태의 지형으로 이뤄져 있다) 우리 집 이층 벽에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리, 람중히말, 마차푸츠레가 솟아있는 파노라마 사진의 아랫부분에 있는 마을인데, 언젠가는 저 마을에 꼭 가 보리라고 사진을 보며 읊조린 곳에 마침내 우리가 와 있는 것이다.

 티베탄 캠프의 농지는 특이하게 돌출된 넓은 곳으로, 아랫마을에서 윗마을로 오르니 마치 딴 세상같은 느낌인데, 때마침 농부들이 소에 쟁기를 달아 밭에 이랑을 만들고 있었고, 그 뒤를 아낙들이 바짝 붙어 따라다니며 씨앗을 떨어뜨리고 있다.

 우리는 한동안 그 돌출된 농지위에서 주변의 멋진 풍광을 보고 있었는데, 사랑콧에서 페러 글라이더를 타고 내려온 한 무리의 서양 젊은이들이 착륙하자, 우리를 구경(?)하고 있던 동네꼬마들이 우르르 그쪽으로 몰려간다.

 우리는 한동안 농지위의 드넓은 잔디에 머물렀는데, 아! 이곳은 우리가 네팔을 떠나기 전에 꼭 봐야 할 곳이었구나, 하고 감탄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저 절벽 아래를 유유히 활공하는 큰 독수리를 망원렌즈를 부착한 성능 좋은 카메라로 클로즈업해서 찍고 싶다.

 저 자유로운 활공은 비로소 우리가 그토록 다시 오고 싶었던 까닭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저 자유를 보고 싶었던 게다. 이 나라는, 이 나라의 거대한 산과 아득한 골짜기, 순박한 사람들은 묘하게도 '자유'의 풍만한 공기를 우리의 폐부 속에 불어넣었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