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끝내며......
네팔이라는 나라가 내 몸에 스며들어, 이제는 무엇이든지 착착 몸에 밀착되어 허물없이 되어질 만하니 떠나야 할 시간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골목길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커다란 소들이 아무렇지도 않고, 대문 앞에 드러누워 자는 개들을 자연스레 피해 들락거리게 되었다. 그런데 떠나야 한다니, 참......
그렇지만 뭐, 다시 오면 되지 않겠는가. 여기는 그런 이상한 마력이 있다. 카트만두 민박집 주인장의 말로는 네팔을 방문하는 사람은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눠지는데, 한 부류는 한번 방문하고는 진저리를 내며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과, 무슨 중독처럼 되서는 끊임없이 이곳을 그리워하며, 몇 번이고 반복해서 방문하는 부류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후자가 된 것 같다.
아침에 호텔 여직원이 꽃을 따는 것을 본다.
그들은 만발한 꽃 속에서 가장 윤기가 흐르고 생채기가 없는 깨끗한 꽃을 골라 치마에 모은다. 그리고는 우리네 사발 같은 그릇에 깨끗한 물을 가득 담아 와서는 그 꽃들을 물위에 띄운다.
붉은 꽃은 사발의 가장자리에 나란히, 흰 꽃과 푸른 꽃은 한복판에 가지런히 배치하면, 소박하고 애잔한 것이 꽃꽂이보다 아름답다. 그들은 그것으로 신상 밑이나 테이블을 장식한다.
맑은 물 위에 떠있는 꽃잎들은 꽃꽂이보다 작고 소박하지만 묘한 모정(慕情)을 자극한다.
집에 돌아가면 계곡 옆 피는 꽃을 따서 이들의 흉내를 내 보리라.
이 나라의 무엇이 그렇게 우리를 이끌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자한 우리의 의도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네팔의 전역에서, 히말라야의 거대한 봉우리들에서 확인됐다.
카트만두의 거리에서, 길 한 모퉁이에서, 어썬 바자르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는, 잃어버렸던 전생의 옛 기억 속 단편들이 하나씩 비밀의 옷장에서 끄집어내어져 불쑥불쑥 나왔는데, '아하! 그래, 이건 옛날에 내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것이었잖아!' 라든지, '그래! 이걸 잊어버리고 있었다니!' 하며 즐거워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전생의 옛 기억들의 단편들이라...... 전생 따위를 믿지 않는 내가 웬일로? 뭐, 그것이 전생이었든,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촉감이었든, 그것들을 음미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던 것이며, 1960년대 말, 내 청년기의 한국이 그곳 네팔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포카라의 카페 콘체르토에서 난생 처음 먹어 본 '라자냐' 마저도 유년시절 감기 몸살로 열이 끓는 내게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쇠고기 잘게 갈아서 만든 죽처럼 정겨웠으니까......
이 나라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들...... 모순투성이의 정정(政情)도, 총구를 사람들의 가슴높이에 태연히 겨누고 있는 숱한 초소도, 길거리에 마구 버려진 채 있는 숱한 짐승들의 배설물도, 자욱한 먼지와 매연의 카트만두도, 시바와 비슈누, 크리슈나를 모신 사원마저도...... 포카라의 북쪽에서 쿵! 하며 솟아있는 마차푸츠레와 안나푸르나의 발밑엔...... 모두 엎드리고 만다.
그래, 누가 저 위용 앞에 엎드리지 않을 만물(萬物)이 있을 것인가!
마차푸츠레 꼭짓점에서 오늘도 하얀 구름연기가 마치 룽다와 타루초가 펄럭이듯 나부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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