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4)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7. 27. 12:18

 

20111년 2월 26일  오클랜드 맥켄지 로드

 

"소소한 좀도둑이 꽤 있는 편인데, 경찰은 그들을 적극적으로 단속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 까닭은 소소한 도둑질을 봉쇄할 경우   도둑은 발전해서 강도가 될 것이다. 그러기에 그냥 두는것이 범죄의 대형화와 지능화를 막는 길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는 것

같다"

안내대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한국 청년이 한 말이다. 장기간의 여행을 염두에 두고 이곳의 치안상태를 묻는 나에게 그는 이런

애매한 얘길하는 것이다.

한국과는 비교도 안되게 치안상태는 좋다며 그가 한 이런 말은 우리나라 처지에서 보자면 참으로 한가한 방담처럼 들린다.

 

TV에서는 소위 말하는 황금시간대에 한가한 로맨스 영화나 상영하고 있고, 광고는 (말하자면 우리의 CF는) 소박한 이웃 아줌마

같은 모델들이 여러가지 일상복들을 입고 나와, 이 옷은 29.99달러, 이옷은 45.99달러, 이 바지는 20달러..... 하는 그야말로 "소박

한" 생활 밀접형 광고가 주류를 이룬다.

또, 자동차 판매 광고인 줄 알았더니 "바퀴에 이것을 채우면 도난이 방지 됩니다" , "차에 이것을 놔두면 좋은 향기가 납니다" 하는

광고들이다.

우리네 같으면 그런 광고들은 잡지에 실리거나 '교차로' 같은 생활정보지에 실릴 광고들인 것이다.

저녁 7시쯤에 시작된 씨앗심기 관련 프로그램은 두 남자가 출연해서는 거의 2시간동안이나 씨앗을 들고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끊임없이 하는통에 채널을 돌려도 역시 별반 다를게 없다. 간혹 크라이스트 처치의 지진 소식이 뉴스로 방영되는것이 그나마

엑티브 한(!) 뉴스의 전부다. 이 지진이라도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이곳 TV의 한심함(우리네 시선으로!)에 치를 떨 것이다.

이 사람들의 생활이라는 것이 우리 처럼 전혀 극적이지 않고, 어찌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적어도 TV

안에서는 말이다. 하기야 '다이나믹 코리아!' 어쩌고 하는 나라에서 엊그제 들어 온 이 나그네에겐 두 말하면......

 

모텔에서 1킬로쯤 떨어진 농장에서 당근과 오이를 샀다. 딸기 아이스크림을 농장에서 직접 만들어 팔고 있었는데 2,500원

정도의 기가 막히게 신선한 아이스크림이 우리를 흡족하게 했다. 자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심심한 맛이 상큼하다.

이곳 오클랜드 외곽지역인 맹게레는 마우리 족들이 정부가 지원한 주택에서 집단으로 사는 빈촌(貧村)이란다.

그렇지만 외향으로는 우리나라의 부자들의 전원주택 같다.

요즘은 이곳에는 중국인들이 판을 치고 있다고 한다. 왠만한 값진 주택과 건물, 고급 자동차의 소유자는 대개가 중국인이라고    하는데, 중국 젊은 학생들은 돈을 물쓰듯 하고, 왠만한 돈을 분실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단다. 중국의 1% 정도의 부자

부모를 가진 녀석들이겠지.

요즘은 두터운 책을 도려내 그 속에 달러를 숨겨 오는 중국인 학생이 많아 세관에서는 중국인은 더 철저한 짐 수색을 받는다는   얘기도 있었다.

 

내일부터 여정을 시작하려면 우선 쌀을 사 두어야 할 것 같아 예의 그 학생 부부에게 물었더니 주인 양반의 동생이 가끔씩

오클랜드 시내로 나가니 그때 알려 주겠다고 하더니 곧 채비를 하라고 기별이 왔다.

아내는 방에 두고 혼자 따라 나섰는데 이 친구 시내로 가는 40여분 동안 계속 자신의 여러 무용담을 늘어놓아 얻어 타고 가는

여비로 여기고 맞장구 치며 들어 주자 차는 어느듯 오클랜드 시내 번화가 한복판이다.

서울의 번화가와 비슷해 별반 감흥은 없다. 하긴 도시를 보려고 뉴질랜드에 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친구 나를 내려 놓더니 돌아 갈때는 알아서 가라는 말을 한마디 남기더니 휙 사라져 버린다!...... 당연히(!) 쌀을 사고

이 친구의 차에 동승해서 돌아 올 거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이 친구는 느닷없다. 뉴질랜드 온 지 이틀만에 지도 한 장 없는

나를 이 낯선 땅에 내려놓고 가다니...... 분명 나에게 '뉴질랜드엔 처음이냐?'고 물었고, 나를 내려놓기 전에 아무런                  얘기가 없었는데 참 어이없다.

이 친구가 휭 하니 가버린 뒤 주머니를 뒤지니 다행히 모텔의 명함이 있다! 이 명함이 없다면 나는 그곳을 어떻게 찾아가지?

휴대폰도 두고 왔고, 슬리퍼를 신고 티셔츠 차림(참, 이곳은 여름이다)에다...... 

황망함에 기가 막혀 우두커니 번화가 한복판에 섰다가 그 근처를 배회했다. 그 친구가 이 근처에 쌀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있을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헤매니 경찰서 윗쪽에 중국상점이 하나 있다. 그곳에서 쌀을 사서 택시를 타고 갖고

있던 명함을 내밀어 모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네 상식으로 당연히 처음 여행 온 중늙은이에게 자기도 볼 일이 있어 내게 호의를 베푼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잘못인지,

"네가 원한것이 쌀을 사러 시내로 나가는것 아니었나!" 는 그 친구가 당연한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해외에서 교민들에게 늘 느꼈던 싸아한 감정은 여지없이 이곳 뉴질랜드에서도 보기좋게 나에게 강펀치를 날렸다!

뉴질랜드에서는 어지간한 부자가 아니고는 택시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그날 택시를 타고 20분 정도를 걸려 55불(5만원     정도)을 지불했다. 갈때는 40여분이 걸렸는데 그때는 그 친구가 자기 볼 일을 보느라 이리저리 들렀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예의 그 청년에게 하니 나에게 몇번이고 미안해 했다. 그가 미안해 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자. 그건 그렇고 이제 내일은 차를 인수하고 출발하는 날이다. 행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