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4일 (일본, 귀국 경유지, 마지막 날)
출발이 어수선 하더니 귀국길도 어수선해져 버렸다.
오클랜드에서 열한시간을 밤새 날아 오사카에 도착한 것은 새벽.
환승을 위해 멍해진 머릿속을 다잡으려고 애를 쓰며 환승구역으로 가는데 또 문제가 생겼다.
환승구 앞에서 휴대 짐을 검사하던 공항직원이 우리가 들고 있는 와인 두병을 가리키며 고개를 가로젖는다.
통과가 안된다는게다. 왜? 우리는 오클랜드 공항의 면세점에서 와인 두병을 구입해 면세점 직원에게 탑승권을 보여주고, 환승국
에서 통과가 가능하다는 답을 분명히 듣고 영수증을 첨부해서 손에 들고 들어갔던 것이다.
뭐, 이유도 설명없이 '안돼!'다.
우리 영어가 '엉터리'면 이 친구의 영어는 '완전 불통'이다. 아예 영어 한마디도 하려 들지도 않고 무조건 일본말이다.
아무런 설명없이 이 친구의 이끌림에 따라 세관을 통과하고, 입국신고서(일본 국내로)를 작성하고 일단 입국하란다.
우리는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여 일본으로 입국하여 다시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여 일본국내에서 다시 재출국하는 형식을 거쳐야 한단다.
아니, 이 무슨..... 좌우간 우리는 다시 그들의 이끌림에 의해 환승할 비행기인 아시아나 항공사 창구로 가서는 e- 티켓을 제출
하여 탑승권을 발부받고 우리의 최종 도착지인 부산으로 문제의 와인 두병을 화물로 보내고, 다시 환승구역으로 나와야 했다.
그 바람에 기내 반입 짐을 세번 검사 받아야 했고, 세관 통과 한번, 이미그레이션 통과 두번이라는 휘황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삼만원짜리 와인 두병을 통과 시키려고 두어시간을 허비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환승구역에서 보내야 하는 네시간의 무료한 대기시간이 그것으로 반쯤 상쇄되긴 했다.
우리가 알기로 일본이라는 나라는 여러가지 면에서 상당히 치밀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우리처럼 이런 경우를 이토록 복잡하게
처리해야 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더구나 공항에 근무하는 직원이 어찌된 영문인지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않으려 하고(아니면 전혀 못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손짓으로만 우리를 이끄는 통에 부화는 더 나버렸던 것 같다.
몇번이나 치밀어 오르는 울화 때문에 그 자리에서 병째 마셔 버리거나 '옛다, 너 먹어라!' 하고 공항직원에게 던져주고 싶은걸
자제하느라 애를 쓰야 했다.
그렇지만 우습게도 우리는 점심식사로 시킨 우동과 새우튀김으로 완전히 그 고역을 잊어 버렸다.
오사카 공항의 환승구역에 있는 단 하나의 일본 음식점. 그곳의 우동과 새우튀김은 환상이었다.
뜨내기 손님들을 위한 음식치고는 굉장한 수준의 맛이다. 밥은 그냥 먹어도 부드럽고 맛있고, 튀김은 신선했고, 우동의 국물은
정말 환상이었다.
이 음식 때문에 일본의 음식에 대한 환상이 생기게 될 지경이었다.
여태껏 우리는 일본인이 만든 음식을 한번도 먹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단 한번 우리는 네팔의 포카라에서 일본 음식점에 들러 우동을 먹은 적은 있었지만 그 맛 없었던 음식은 본토 일본의 음식
이라고 하기엔 환경이나 식재료의 차이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하므로 별개라고 생각한다.
일본 공항 세관의 불쾌했던 기억이 일본의 우동과 새우튀김에서 상쇄되어 버렸다니 나도 참 한심한 인간이다.
이 여행에서 뉴질랜드는 나에게 어떤 색깔로 머릿속에 새겨질까?
한달 동안의 여정을 가만히 떠올려 보면......'코발트'색 인것 같다.
환하고 투명하며, 얼핏 여리게 보이면서도 부드러운, 그런 색깔이다.
어느곳을 가더라도 깨끗하고 맑은 풍광, 눈부시게 환한 작은 도시와 마을들, 곳곳에 요정의 바다처럼 숨어있던 호수들, 넓디
넓은 하늘과 그 광활한 노을들, 장중한 구릉들 속을 거침없이 뻗어있던 길, 여유롭고 침착한 사람들, 아름다운 공원과 사람을
전혀 무서워 하지않아 오히려 우리가 조심스럽던 수많은 새들, 광활한 초지위에 한가로운 소와 양떼들......
뉴질랜드는 확실히 축복 받은 땅이었다. 우리 체류기간중의 지진소동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천국 같은 땅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런데...... 없는것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었다.
청순한 대지위에 모든것이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우리가 은근히 보고싶어 하던 '인간'의 진득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들의 대지위에서는 그 모든것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그럴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쉬운것은 어쩔수 없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맨 속살의 인간, 욕망이 드러낸 피부위에 흐르는 인간, 각자의 표정을 갖고서 꿈틀대는 카오스 속의
인간...... 그런 인간상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무곳도 없었다.
규격화 되고, 질서있고, 잘 정돈된 사회안에 역시 규격화 되고, 질서있고, 잘 정돈된 예의바른 모범생들이 살아가는, 참 재미
없는 인간들만이 보였을 뿐이다.
인도에서 보던 그 처절하고 절절한 삶의 현장, 땅을 치고 통탄할 인간 군상들의 적나라한 현장, 영혼을쥐고 흔들어대던 처참한
현장. 물론 뉴질랜드엔 없다.
여기는 인도가 아닌 뉴질랜드인 것이다.
극과 극의 두 나라를 여행을 끝내고서 비교해 떠올리고 있다니......
이 나라 곳곳을 다니면서 무의식 속에선 인도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나라의 부러운 구석이 나타나면 내 나라의 추악한 구석이 자꾸만 습관처럼 떠올려지듯 이 나라의 눈부시게 환한 정경들
속에 있으면 인도의 바라나시, 그 카오스의 뒷골목이 떠올려지는건 왜일까?
아마 그것은 끝없이 '평등'을 갈구하는 내 속의 어설픈, 설익은 사회주의가 자꾸만 고개를 쳐들고 나오기 때문일거라고
짐작하고 있다.
그것은 이 나라를 돌아 다니면서 자꾸만 스물스물 고개를 드는 까닭모를 '죄의식'이 반증하는 것일게다.
어쨋던 나는 뉴질랜드에선 '인간'의 냄새를 맡지 못했다.
이제 다시 인도를 가고싶다. '인간'의 냄새를 맡고 싶다. 그것이 비록 괴로운 일이라는걸 알면서도.
뉴질랜드를 떠나며 이 나라와 너무도 다른 인도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른건 어쩔 수 없는 내 업보(!)다.
인도와 네팔은 나에겐 '맑지 않은 짙은 호박색'이다.
어수선했던 출발부터 시작하여 이제 어수선했던 마지막 귀로길.
이제 이것으로 이번 여행은 끝났다.
귀국길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10년 동안의 이국(異國) 여행길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여행은 나에게 무엇일까? 불현듯 찿아오는 '떠남에 대한 강렬한 충동'은 왜 내게 유령처럼 찿아올까?'
불현듯 솟구치는 미지에 대한 강한 이끌림, 낯선 곳에 대한 까닭모를 동경, 한달여를 헤매다 대충 질겁을 하고선 좀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솟구치는 들석임.
그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개인적 기질 탓도 있겠지만, 일정부분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유목민적 유전 코드가 작용하는건 아닐까?
떠남의 시간동안 낮선 이방(異邦)에서 잡다한 해결이 필요한 일상들, 그것을 헤쳐나가는 묘한 쾌감과 흥분, 이런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자리잡고 사는 주변에 만족하지 못하는, 뭔가 끝임없이 부족함이 느껴지며 채워지지 않는 잔을 들고 있는 아쉬움이 내 등을
떠미는 것일게다.
설명할 길 없는 이런 허기짐은 야릇한 자기 부합 논리(!) 까지 생산한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인간이다.
나는 '호기심이 없는 인간'에겐 좀처럼 호감을 느낄 수 없다.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는 인간 유형은 언제나 내게 신선하게 다가온다.
나에게 호기심을 표하며 다가오는 인간이 좋고, 나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인간이 역시 좋다.
새로운 어떠한 것을 보더라도 심드렁한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어떤 새로운것을 기대하고(내게 늘 필요한) 서로 인식을
공유하고, 그것으로 인한 동질감을 가질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무엇을 보더라도, 무슨 신선한 말을 듣더라도 대체로 침착한체
하고, 한 박자 느리게 반응하는 사람을 별로 '신선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편견(!)이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대체로 교조적이고 '별무반응'인 경우가 많더라는 선입견을 마뜩찮게 체득한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떠남'은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준다.
매번 눌러앉아 있는 자리는 항상 정체된 진부한 냄새가 날거라는 억지스러움의 기저를 깔고 있고, 결국은 '나'라는 인간은
호기심, 미지에 대한 동경,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 탐구 등에서 채워지는 충족 에너지가 끊임없이 공급되어져야만 살아가는
'아직도 한참 미성숙한 인간' 이라는 것을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떠나고 싶은'것이다.
내가 살고있는 이 나라는, 이 작은 세상은 너무' 빤히'들여다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방진 결론일까?
이번 여행도 그 일련의 '빤히' 볼 수 없는 세상을 보고싶은 몸부림의 한 편린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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