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29)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7. 28. 16:19

2011년 3월 23일  (오클랜드 3일째, 출국일)

 

한달간의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는 날이다.

물론 내일 역시 비행기에서 보내야 하지만 뉴질랜드에서의 마지막 날은 오늘이다.

자정에 에어 뉴질랜드를 타고 한참 말썽중인 일본으로 날아가 오사카에서 환승, 귀국해야 한다.

 

숙소에서 10시에 체크아웃 한 후 프론트에 부탁해 배낭을 맡기고 우리는 기념품 구입을 위해 비치 로드 쪽으로 내려 갔다.

차를 반납하였으므로 우리는 작은 배낭 하나만 갖고 걸어 다니기로 했다.

뉴질랜드산 푸른입 홍합 건강식품 몇개를 사고나니 시간이 엄청 남는다. 빅토리아 파크, 메이어 파크, K 로드 등을 전전했다.

역시 도시는 우리에겐 매력없고 피곤한 곳일 따름이다.

오클랜드는 서울의 어느 귀퉁이를 걷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흡사했는데 그것이 우리를 더욱 피곤하게 했다.

중심가에 숱하게 오가는 사람들은 마치 인종 전시장 같다. 물론 우리도 그중 하나일테지.

특히 퀸이나 빅토리아, K 로드 같은 곳은 말하자면 서울의 명동거리나 강남 사거리 같은 곳이어서 온갖 젊은이들과 넥타이 부대

들이 들끓는 곳이다.

키위들 외엔 주로 일본과 중국의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대개가 여행객이거나 유학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본인의 경우는 우리 젊은이들과 별로 구별도 되지 않고 평범한 차림이었으나 중국의 젊은이들은 확연히 구별된다.

한마디로 가관이다. 뭐라고 형언하기가 곤란한 모멸(!)의 냄새가 진동하는데, 그것은 아마 그들의 행색 때문인 것 같다.

펑크족 패션을 한데다 머리는 노랗게 물들이고, 얼굴은 하나 같이 살이쪄서 뒤룩거리는데다 이상한 모양의 수염까지 기르고

있어서 분명 동양인으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서양인 흉내를 낸 언밸런스가 두드러져, 보는이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모양새다. 괜시리 동양인인 우리가  민망해서 피하고 싶을 지경이다.

왜 그들은 자기네가 자랑하는 '대륙적인 풍모'를 당당하게 드러내지 않고 서양인을 그토록 닮고싶어 할까?

듣자하니 이들은 제 나라에선 부짓집 자제들로, 입국할때 두터운 책 속을 도려내어 고액권을 잔뜩 숨겨 들어와 물쓰듯 돈을

쓰고, 스포츠카 등 고급 외제차를 (하긴 뉴질랜드는 모두 외제차다) 몰고 다녀 키위들이 "고 홈 차이니스!'를 외칠 정도라 한다.

마치 3류 홍콩영화에 등장하는 똘마니 깡패 같은 행색들은 불연듯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의 씁쓸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한달이 소요되는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를 마치고,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코스로 들어 섰을때의 일이다.

(라운딩 코스는 '전문 여행객'들의 코스이고 베이스 캠프 코스는 '관광객'들의 코스 처럼 변질되어 있다)

우리가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거의 마칠때쯤 '촘롱'이라는 지역의 롯지(산행자들의 숙소)에서 마주쳤던 일련의 중국인 젊은이들.

오후 4시쯤 산행을 접고 숙소에 배낭을 풀고 쉴때쯤 그들 일행 서른명 정도가 들이닥쳤다.

세번째의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이었으나 한번도 중국인을 만난적은 없었는데 그날 우리는 운수 사납게도(!) 그들과 같은 숙소에

묵어야 했던 것이다.

2층의 숙소 대부분을 중국인들이 예약을 한듯 독일인 한팀, 그리고 우리 한팀외에는 전부 그들 차지였다.

이들은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는데, 서로를 큰 소리로 부르기, 담배를 꼬나물고 복도에 진을 치기, 짐을

아랫층으로 던지기, 식당에서 식사중인 외국인 옆에서 자기네 끼리 드러눕기 등 한마디로 그들은 '다른 사람은 여기 없음'이었다.

완벽하게 그들만이 있는 공간처럼 행동했다. 그들 일행이 아닌 사람과는 눈인사는 물론 전혀 의식하지 않아서 우리는 그들속에

갇혀 마치 투명인간 같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독일인 젊은이가 2층 난간에 서있던 나에게 다가와 '중국인?'하고 물었다. 한국인이라고 하자 다행인 듯한 얼굴을

하고선 '저 사람들 왜 저래?' 한다. '나도 모르겠어!'

난들 알겠는가? 저들의 안하무인을.......

안나푸르나 트래킹 족들의 공통점은, 세계 어느나라 사람을 막론하고 거의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고, 숙소에서 큰소리를 내는

사람도 없으며, 남에게 피해를 주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 비슷한 정서가 깔려있다.

그러나 갑자기 불어나기 시작한 이 신흥 종족(!)들은 완벽하게 이런 불문율을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와 90년대 우리의 여행객들이 그런 곤란한 품행으로 많은 지탄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아마 그들도 그런 단계에 와 있는

것 같다. 세월이 지나면 그들도 안정(!) 되겠지.

중국인 모두가 그런것은 아닐테지.

예의를 갖춘 점잖은 존재도 얼마든지 있을테지. 다만 이 어지러운 도심지 한가운데에선 뚱뚱한 얼굴의 노란 피부를 하고,

턱에 묘한 수염을 기르고, 펑크족 패션을 한 이런 따위의 인간이 눈에 잘 띄니까.......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이제 이 거리를 떠나 돌아간다.

YMCA의 역한 숙소 분위기와 혐오스런 젊은 중국인의 기억은 잊고, 아서스 패스 가는 길의 멋스러움과, 카이코라의 근사한

해변, 콘월파크의 장중함, 퀸즈타운의 눈부신 아름다움과, 김원장님 내외의 배려 만을 기억하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