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23 (우붓 - 빠당바이)
약속한 아디(Adi)는 정각 9시에 숙소앞에 도착했다.
녀석은 말수가 아주 적지만 말을 시키면 조근조근하게 얘기해서 알아듣기가 수월하다.
영어가 어눌한 영감님을 상대하니 나름 말도 천천히 하고 단답형으로 하는 등 배려하지 않나
싶다.
얼굴에 큰 흉터가 완전히 아물지 않아 자꾸 손을 대고 있어 물어보니 화상을 입었는데 이제
거의 나은거라 했다.
그와 이런 저런 얘길 나누며 1시간쯤 달려 도착한 빠당바이는 작은 항구 마을이었다.
해변은 정리되지 않아 지저분하고, 많은 어선과 보트들이 어지러이 정박되어 있었다.
인근의 큰 섬 롬복과 롬복의 작은 섬 3개 길리로 가는 여행객들을 실어 나르는 보트들이 정박해
있다.
패스트 보트라 불리는 작은 배들이 부지런히 승객을 내려놓고, 또 싣고 떠난다.
알고보니 롬복이라는 이 인근의 큰 섬은 한국의 TV에 한동안 방영된 적이 있어, 젊은이들에겐
꽤 알려진 곳이라 했다.
무슨 식당을 차려놓고 여행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나로서는 괴상하고 웃기는 프로였는데
요즘은 그런 종류의 프로가 굉장히 인기가 있다고 한다.
도무지 요즘의 TV는 기상천외한 프로들을 만드는데, 이게 사람들에게 잘 어필하고, 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위로, 또는 대리만족을 한다고 한다.
시대의 트랜드를 잘 읽고, 사람들의 허전한 빈 공간을 잘 파고드는 재주있는(!) TV 피디들이
있는 통에, 나처럼 그런데에 둔한 중늙이에겐 그들은 '미운 존재'가 된다.
그들이 훑고 지난 곳은, 기민하게도 그들의 자취를 섭렵하려는 사람들로 채워져 조용한
여행지는 복잡한 여행지로, 싸고 소박했던 여행지는 비싸고 어지러운 여행지로 변해가는
것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안타까웠던 곳이 라오스의 방비엥과 루앙프라방 이었다.
그들이 훑고 지나기 전의 그곳과 그들이 지나간 곳의 그곳은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뭐, 남의 나라만이 아니다. 내가 즐겨가는 지리산 초입의 식당이 있는데 그 집의 음식이
입맛에 맞아 자주 다녔는데, 어느날 강호동이라는 조폭 같이 생긴 녀석과 그 패거리들이
그곳을 다녀간 것이 TV에 방영된 후 한동안 그곳을 갈 수가 없었다.
주말이면 미어터지고 평일에도 한참을 기다려야 해서 한동안 발길을 끊었었다.
그런 현상은 1년 정도 계속되다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왔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여행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요즘의 TV를 보면 딱 3가지가 주도하고
있다.
애들과 그 부모가 노는 것을 보여주기, 음식점 소개나 순례, 젊은 애들, 또는 늙은이들의 여행지
순례나 밥 해 먹기.
시대의 트랜드를 읽은, 사람들의 작은 로망을 잘 포착한 영리한 제작자들의 순발력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왠지 허무(!)하다.
소파에, 골방에 앉아 남들이 놀고, 먹고, 돌아 다니는 것을 보며 흐믓해 하는 가난한 젊은이
들을 떠올린다는건 참 서글프고 또 슬픈 얘기다.
빠당바이는 롬복으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에 불과했다.
몇개의 작은 레스토랑과 호텔이 해변가에 있고, 롬복으로 가는 여행객들을 실어 나르는 사람
들이 그로 인해 생계를 이어가는......
그래도' 블루라곤'이라는 이름과 '비아스 뜨굴' 이라는 작은 해변이 있고, 스노클링이 가능
하다고 해서 일단 호텔에 체크인하고 블루라곤 부터 걸어서 갔다.
숙소가 있는 해변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블루라곤은 아담한, 정말 작은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인데 호젓하니 그런대로 괜찮다.
편의시설이라고 할 수도 없는, 스노클링 장비를 대여해 주는 허름한 식당 하나가 전부였다.
15년전 피지에서 경험한 스노클링이 생각나 한번 해 보고 싶었는데 여기가 적당한거 같다.
다시 비아스 뜨굴로 향했다.
뭐 별로 멀진 않겠지 하며 나섰는데 땡볕 아래 거의 30분을 걸어야 해서 흠뻑 젖어 버렸다.
오토바이 뒤에 타거나 택시를 타면 되겠지만 그나마 걸어야 이들이 삶을 엿보기라도 하겠다
싶어 걸었다.
작은 언덕을 넘어 하얀 백사장이 보이는 해변이 나왔는데, 규모는 블루라곤 보다 좀 넓고
아름다왔지만 해변 바로 앞으로 여객선들이 다니고 파도가 크서 스노클링 하기엔 적당치 않아
내일은 블루라곤 쪽으로 가야겠다.
숙소로 정한 'OK Divers & spa'는 이 동네에선 가장 비싼 숙소였다.
산소통을 메고 잠수하며 즐기는 다이버들이 많이 찾고 있었고, 호텔에서는 이들에 대한
강습과 다이버 주선등을 하고 있었다. 수영장이 2개 있어 밤에는 수영하기 좋겠다.
이 숙소는 방이나 시설, 편리함 등엔 높은 점수를 줄 만 하다.
그렇지만 여행지에서 이런 다소 사치스럽거나 안락한 곳에 오면 나도 모르게 일종의 경계심이
발동한다.
'이곳은 너무 사치아냐?'거나 '나중에 이런 곳만 찾을거 아냐?' 하며.
길을 가다가도 손님이 별로 없어 하릴없이 지나가는 사람만 주시하는 한적한 식당에 들어가고
싶고, 리조트의 레스토랑 보다는 해변의 현지인이 차린 궁색해 뵈는 식당이 왠지 더 들어가고
싶은것은 나의 영원한 마이너리티적 심성 탓일까?
그러고보니 나는 항상 주류편에 서지 않는 비주류였다.
언젠가 친구는 내게 말했다.
'넌 항상 비주류 같애'
왜 나는 비주류 같이 보이고, 또 실제로 비주류적인데에 관심이 갈까?
가끔 도시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보면 뭔가 어색하고 불편한 점이 있어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들은 별로 변하지 않았는데 내가 많이 변했구나 하고 느끼곤 했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으면, 내가 보는 관점이 변하지 않으면 나는 세상이 참 재미 없을것 같다.
한결 같은 관점과 세계관, 또는 가치관, 그건 지겨울거 같다.
처음으로 한국인을 만났다.
젊은 신혼부부는 참 어여쁘다. 선한 인상의 젊은이들은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역시 발리는 신혼부부에게 어울리는 곳이다.
여행 다닌 곳 중에서 어느나라가 가장 좋았어요? 하고 묻길래 '네팔'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들은 내게 '왜 혼자오셨어요?' 따위의 물음은 하지 않았다.
기특하고 영리한 젊은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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