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20 (우붓)
블랑코 미술관 앞 구눙레바 사원에서 출발한 트래킹 코스(그들은 조깅 트랙이라고 표기했다)는
입구엔 보도블럭을 깔아 걷기 편했다.
처음 오르는 길은 평범 했지만 논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풍경은 아름답게 바뀌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벼가 알을 품기 시작해 앞으로 한 달후면 수확할 것같다.
야자수와 논이 생경하게 보일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아주 잘 어울린다.
갈림길이 나오고 빙 돌아 블랑코 미술관이 2Km라고 입간판에 표기되어 있지만 이건 실로 엉터리
같은 얘기다. 나중에 보니 2Km는 커녕 10Km도 넘어 도무지 이 사람들이 가르쳐 주는 '10분'도
믿을게 못되지만 입간판까지 이런 지경이니 아예 이런건 믿지 않는것이 좋을것 같다.
인도네시아인에게 길을 물어보며 얼마나 걸리겠냐고 물으면 걸핏하면 '원 아워'라지만 가 보면
10분 밖에 걸리지 않거나 '투엔티 미닛' 이라고 하는데 가 보면 한시간이 넘게 걸리는 식이다.
그래서 이들은 혹시 외국인이 물어보면 그냥 자기가 아는 숫자를 아무렇게나 얘기하는게 아닌가
의심했다.
그래서 이들에게 방향은 물어 보지만 소요시간은 묻지 않기로 했다.
산길을 돌아 주 도로로 내려오는 길은 평범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야 비로소 우붓사람들의 민가가
펼쳐졌다.
우붓의 민가를 여태 보지 못했다는 얘긴데 사실 그랬다.
번화가의 도로변은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모두 상점이다.
주 도로에서 들어가는 간선도로 역시 여행객들을 상대하는 음식점, 기념품 가게, 잡화점, 여행사,
사원 등이었고 도무지 간판이 붙어있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좁은 도로변의 민가들은 근사했다.
담벼락은 예외없이 작은 탑들로 장식하고, 작은 정원은 멋지게 꾸며 놓았고, 집 앞 대문 뒤에는
신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의 옛 가옥들이 얼마나 품격있는 모습들이었는지 그제서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우리의 농촌 가옥들과 비교하면 그들의 가옥은 귀족들의 가옥이었다.
20년전쯤의 우붓을 봤다면 참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근 4시간을 걸어 출발했던 블랑코 미술관에 당도했다.
산길이 꽤 있어 그늘이 있긴 했지만 이 더위에 4시간의 트래킹은 많이 힘들었다.
샌달을 신은 발은 끈이 닿았던 부분만 빼고 새까맣고, 팔은 완전히 그을려서 돌아가면 껍질이
벗겨질것 같다.
블랑코 미술관은 며칠전에 지나 왔을때 어쩐지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는데 역시나 그 예감이
맞았다.
우붓에서 활동한 스페인 화가 안토니오 블랑코의 개인 갤러리 였는데 왜 들어가고 싶지 않았냐면,
입구에 커다랗게 서 있는 괴상한 조형물이 영 선호하는 분위기가 아닌거 같아서였는데, 전시된
그림을 보니 역시 내 취향은 전혀 아니다.
이 친구가 얼마나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도대체 이 큰 부지의 개인 미술관을 조성하려면 굉장한
재력이 있어야 했을테고, 그의 그림은 고가에 팔렸다는 얘기다.
그런데 내겐 영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게다가 쓸데없는 반감까지 생기려 한다.
그림보다는 그 그림을 담고 있는 액자에 더 큰 공력과 관심을 쏟아서 그림 보다는 액자가 더 큰
작품이 부지기수고, 그림의 속지와 액자에까지 채색을 연장해서(그것이 그의 개성이겠지만) 아주
지저분하게 보일 뿐더러 우리네 옛날 영화관 간판 그리는 방식으로 보여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자기애(自己愛)가 넘친 한량 미술가에게 조롱 당하고 나온 기분마져 든다.
그를 높히 평가하는 사람이 내게 '이 무식한 놈! 블랑코의 미술세계를 모르다니!' 하면 뭐 할 말이
없다..
괜히 눈만 버린것 같아 게름칙하게 그곳을 빠져나와 버렸다.
네카, 아궁라이, 뿌리 루끼산 미술관들 중 블랑코 미술관이 가장 비싼 입장료를 받는다.
우리에 비해 인도네시아의 미술관들은 입장료가 다른 물가 대비 꽤 비싸다.
점심에 푸짐하게 폭립이라는 고기와 감자튀김을 과하게 먹었으니 빵 가게에 들러 롤빵 2개를 사서
들어왔다.
망고 남은것 3개, 맥주 1병이 있으니 저녁식사로 충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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