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8)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7. 27. 17:47

2011년 3월 12일 (페어리일 - 제랄딘 -아쉬버튼 - 크라이스트 처치)

 

아침에 일어나자  깜짝 놀랄 뉴스를 들었다.

일본에서 8.9의 대지진이 발생하여 일본 북동쪽 지방이 풍비박산이 되었다는 얘기다.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는 생각은 '아니!      일본은 우리가 경유해서 귀국해야 되는 곳이잖아!'

우리가 경유해야 하는 간사이 공항쪽과는 많이 떨어져 있지만 찜찜한 건 어쩔 수 없다.

출발할땐 첫 기착지인 크라이스트 처치가 이틀전 지진이 나서 난리가 나고, 이제는 돌아 갈 나라가 지진?.......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싶다. 

공동 휴게실에서 본 TV에서 흘러 나오는 뉴스를 다 알아 듣지 못하는게 이렇게 갑갑할 수가 없다. 

화면은 일본의 원전을 비추고 있고, 번갈아 크라이스트 처치의 파괴된 도심을 내보내고 있다.

우리는 잠시 서로를 쳐다보다 잠시 멍한 채 침대 끝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침 식사후 아내가 밖에서 서성이자 뉴질랜드 아줌마가 다가와 '당신들 나라에 불행이 닥쳐 참 걱정이 많겠다. 다 잘 될거다'고

위로 하더란다.

'아니, 난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다'고 했다지만 일본과 한국은 좁은 해협 사이가 아닌가.

 

우리는 페어리일의 홀리데이 파크를 떠나 불과 18일전 지진으로 세상의 이목을 받았던 크라이스트 처치로 출발했다.

제랄딘을 거쳐 1번 모터웨이를 타고 크라이스트 처치로 가는 길은 여태껏 뉴질랜드의 도로중에 가장 재미없는 길이다.

비가 올듯이 우중충한 날씨 탓도 있지만 주위의 풍광도 그렇고, 주변의 집 역시 우리 기분에 비례해서 어둡다. 

드디어 크라이스트 처치의 초입에 들어서자 날씨 탓인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라는 도시 이름답지 않게 혹독한

시련을 맞은 도시 분위기 탓인지 전혀 밝은 느낌이 아니다.

뉴질랜드를 다니면서 느낀것은 도시가 나타나면 참으로 '밝다' 하는 느낌을 항상 받았는데 크라이스트 처치는 지진

때문인지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기대를 많이 했던 도시였는데......

 

시내중심부가 가까워 오자 라바콘으로 막은 도로가 앞을 막는다. 군인들이 장갑차를 곳곳에 세워두었고, 폴리스 라인이

어지럽게 둘러쳐져 있다. 뉴질랜드에서 '군인' 이라니 참 생경하다.

크라이스트 처치가 뉴질랜드 제2의 도시라고는 하나 우리나라로 치면 경남 진주 만한 도시에 불과하므로 우리는 사전에

이 도시의 대충의 큰 도로와 도시의 얼개를 머릿속에 그려넣고 왔지만 도시의 어수선함에 시선을 뺏겨 그만 방향감각을 잃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도로의 가장자리에 세워진 이정표를 살피고는 도심쪽으로 틀었지만 도심의 중앙인 크라이스트 대성당

쪽으로 가는 모든 도로는 패쇄되었다.

하는수 없이 중심가를 돌다 머릿속에 그려 두었던 해글리 공원을 중심으로 빅토리아 로드와 파파누이 로드를 겨우 찿을수 있었다.

파파누이 로드로 들어가는 길은 통행이 허락된 도로조차 아스팔트가 휘고 울룩불룩하게 솟아있어서 자동차 밑바닥이 살짝 긁히는

경우도 있었다. 개울들은 허물어져 엉망이고 곳곳의 집들이 무너져 내린것이 그대로 방치된채 서 있다.

아마 우리네 라면 절대 통행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의 길들을 태연히 열어 둔 것도 우리를 황당하게 한다.

어떤 곳은 폐허가 된 건물 잔해위에 자동차를 얹어놓은 곳도 있다. 왜 저 잔해위에 자동차를 올려 둔 거지?                                우리가 도심을 진입해 파파누이 로드 까지 돌았다면 거의 도심 외곽을 2/3 정도 거쳤다는 것인데 도심 중심부를 전부 막아 놓은

것으로 봐서는 중심부의 타격이 가장 크다는 얘기다.

 

어쨋던 우리는 모텔 하나를 흥정해서 2박에 180불을 지불하고 여장을 풀었다.

모텔이 면한 도로 부터는 패쇄지역으로, 폐허가 된 건물들의 전시장 같은 잔해들이 코 앞에 보이는 곳이었다.

모텔 바로 앞집은 벽돌과 목조로 된 오래된 단층 건물이었는데 유리창이 죄다 부서지고 집 한쪽이 내려앉았다.

그런데 이 모텔은 말짱하다. 젊은 주인은 우리방까지 와서는 '이 건물은 튼튼하다. 또 흔들리는 와중에서도 끄떡없었다'고

자랑이다. 지진지역으로 들어 온 우리를 안심시키려는 의도다.

보아하니 평소에는 관광객과 여행객들로 넘쳐나던 이곳이 지진으로 타격을 받자 영업에 굉장한 타격을 받고 있는것 같다.

하긴 우리 같은 간 큰(!) 여행객이 별로 있겠는가.

파파누이 로드와 빅토리아 로드는 여행객의 숙소가 가장 많이 밀집된 곳이라는 정보를 익히 들었는데도 길거리는 그야말로

한산하기 이를데 없다.

그래서 모텔 치곤 숙박료도 저렴한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펴본 전자렌지는 박살난 채로 있고, TV는 떨어졌던것을 그대로 올려 둔 듯 켜도 아무 반응이 없다.

주인은 겸연쩍게 웃고는 렌지와 TV를 다시 가져다 주겠다고 한다. TV는 필요하다. 뉴스의 그림이라도 봐야 하니까.

 

우리는 여장을 풀고 해글리 공원으로 갔다. 이 나라에서 도심속 공원중 가장 규모가 크고 세계적으로 아름답다고 소문난 공원을

빨리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도심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규모가 대단하다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실감을 하면서 우리는 해글리 공원을 돌았다.

그렇지만 이 아름다운 공원의 주변은 인근 건물들의 파괴된 잔해와 무너져 내린 건물들이 어지럽게 우리의 시선을 자극하고,

공원 내부의 거대한 나무들이 뿌리채 뽑혀 처참한 몰골로 드러누워 있어, 아름다움 보다는 처참한 광경에 우리는 일단 숙소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정원의 도시', '영국 밖에서 가장 영국스러운 도시' 라는 별칭으로 불린다는 이 아름다운 도시가

지진이라는 재앙앞에 무릎 꿇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런 재난의 현장을 찿아든 우리의 과감함이 치기는 아니었는지......

 

우리는 일단 이곳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몇 일 쉬기로 했다.

재난의 도시에서 '쉬겠다'는게 우스운 노릇이지만 우리는 많이 지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평소에는 이 아름다운 도시를

찿을 수많은 여행객이 지금은 거의 없다는것이 오히려 우리의 구미를 당겼으니 참 묘하다.

또, 지진이라는 전대미문의 현장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니......

저녁을 지어먹고 인터넷으로 한국의 한겨례 신문과 동아일보를 검색했으나 큰 제목외에는 전부 깨진 글씨로 나오는 바람에

일본 지진의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없어 몹시 갑갑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