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7)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7. 27. 14:23

 

2011년 3월 11일 (와나카 - 오마라마 - 트위즐 - 테카포 - 페어리일)

 

오늘은 마운트 쿡 국립공원(마오리어: 아오라키)으로 향하는 일정으로 잡았다.

해발 3,754m의 남섬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마운트 쿡을 중심으로 해발 3,000m가 넘는 18개의 봉우리가 위용을 자랑한다는

마오리족이 '구름을 뚫는 산' 으로 부르는 산이다. 에베레스트 산을 최초로 오른 힐러리 경이 산악 훈련 장소로 선택했을

만큼 험준하다고 가이드 북에 적혀있다.

우리는 가버너 부시 트랙, 보웬 부시 워크 등으로의 트래킹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와나카에서 길을 나서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YHA 안내 데스크의 칠판에 아침엔 비, 오후에 그침 이라고 돼있었지만 오마라마를 거쳐 트위즐 까지 갔으나 비는 그치지 않는다.

하늘은 어둡고 먼 산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와나카의 숙소에서 마운트 쿡의 숙소를 예약하지 못했으므로 되도록  마운트 쿡

빌리지에 당도해서 숙소문제부터 해결하거나 아니면 트위즐, 또는 테카포 정도에 숙박해야 하는데, 가면서 들른 트위즐은 물론

테카포에도 빈방은 없었다.두 곳 모두 인포메이션 센터의 안내 직원이 모든 숙소의 전화번호를 놓고 확인 했으나 빈 방은

없었다. 다만 테카포의 호텔에 빈방이 있으나 너무 비싸 도저히 우리 사정엔 맞지 않았다.

뉴질랜드에는 대도시나 중소도시 할 것없이 모든 도시(인구 몇 천명 정도의 마을이라도)에 인포메이션 센터(i-site)가 있다.

그곳에 가면 해당 도시나 마을의 상세지도와 숙소가 망라된 책자가 무료다. 또 각종 위락시설과 관광소개 책자나 작은 안내책자

역시 무료다. 안내직원은 그 지방의 숙소를 예약해 주고 조금의 수수료를 받는다. 어느 곳이나 대체로 친절하고 열성적이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

 

마운트 쿡 빌리지에 갔지만 역시 마찬가지...... 우리는 하는수 없이 페어리일 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작은 동네까지 오고 말았다.

이 동네에는 홀리데이 파크가 있어서 그 안의 쬐그마한 케빈을 얻어(70불) 여장을 풀었다.

홀리데이 파크란, 뉴질랜드의 곳곳에 산재해 있는 캠프밴을 위한 숙소 형태다.

넓다란 부지에 캠프밴이 주차할 공간을 큼직하게 마련해 두고 각 주차공간 마다 전기시설과 수도시설을 해 두어 밤새 주차된

캠프밴 내부의 조명과 취사시설, 밧데리 충전 등을 하도록 하고, 캠프밴안의 식수와 목욕시설 탱크에 물을 채우고, 또 캠프밴

안의 화장실 오물을 버리는 시설 등이 있는, 말하자면 켐프밴을 위한 주차시설인 것이다.

그렇지만 캠프밴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모텔을 같이 운영하는 곳도 있고, 케빈(작은 오두막)을 같이 운영하기도 하며, 공동

식당, 매점, 공동 화장실과 샤워장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대체로 뉴질랜드의 각종 숙박시설 중에서 가장 넓직하고 여유있는 공간을 지닌 형태인 것이다.

홀리데이 파크의 내부는 각종 부대시설 외에 어린이 놀이시설, 수영장, 컴퓨터 게임실, 탁구장 등을 갖추고 있는 곳도

제법 있다.

그렇지만 캠프밴 여행자 위주로 운영되는 곳도 있어, 공동부엌에 조리기구외에 그릇, 수저, 포크 등이 없는 곳도 간혹

있는데, 왜냐면 캠프밴 내부에 이미 그런것을 갖추고 있어서 그들이 공동부엌에 올때면 작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집기를

챙겨서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 페어리일의 공동부엌이 그런 형태라서 우리는 다소의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다행히 깨끗한 침대보와 역시 깔끔한 담요가 칙칙했던 우리 마음을 다소 위로해 주었다.

우리 방 옆에는 올드 카 들을 무리지어 타고 여행중인 6-70대 노인들이 묵고있어 우리를 보더니 어디서 왔냐, 어디를 돌아

다녔냐 등을 물으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방 싱글벙글이다. 어느 나라건 노인들의 공통점인 듯 자꾸만 얘기가 하고 싶은

눈치지만 그들의 하염없는 호기심에 충실히 답할 영어가 돼야지 원! 

이들의 여유있고 온화한 얼굴들이 우리를 참 따뜻하게 했다. 보아하니 몇 십년은 된 듯한 차를 무슨 재주들이 있는지 클래식

카의 모양 그대로 잘 유지하고 있다.

이들의 얼굴에 자꾸만 우리 산골동네 노인들의 얼굴이 오버랩 된다. 우울하다......

   

동네의 복덕방에는 벽면에 주택의 전경과 내부구조를 찍은 사진과 부지의 넓이, 방 개수, 목욕실과 부엌 개수, 수영장의            유무 등등을 상세히 적은 게시판이 붙어있다.

우리네 처럼 '33평형, 방 3개, 욕실 2개, 2억 5천만원' 이런식은 아니다. 우리네야 주로 아파트의 거래라 이쯤 적어두어도

뻔한 구조라 짐작이 가지만, 이들은 아파트 라는 벌통형 주택은 아예 없고, 전부 지맘대로의 개인 주택이니 사진과 더불어

자세한 정보를 적어 놓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집에서 보는 전망이 좋다느니, 정원을 어떻게 손질해 두었느니 하는 선전성 글귀도 많이 눈에 띈다.

 

파출소가 눈에 띄긴 했으나 경찰은 없다. 그러고 보니 여태까지 보름정도 지났지만 경찰관을 본 적이 한번도 없다.

 

이러고 보니 하루종일 한 일이라곤 빗속을 운전한 것과 저녁 지어먹고 이 쬐그만 동네를 산책한 것 밖에 한 일이 없다.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지기를 계속한다.

마운트 쿡의 트래킹은 이 상황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하겠고, 우리는 지진의 도시 크라이스트 처치에 내일 들어 가기로

했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 시킨지 보름 정도 지났는데, 대체 숙소는 온전히 있을지, 여진이 아직까지 있다는데 아내가 과연

불안감을 감당할지 은근히 걱정이 되긴 한다.

그렇지만 불쑥 불쑥 솟아오르는 강렬한 호기심은 어쩔 도리가 없다.

역사에서나 뉴스, 영화에서나 본 지진현장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이 망할 호기심은 참!.......나도 어쩔수 없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