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3일 (크라이스트 처치, 2일째 아서스 패스)
오늘은 아서스 패스(Arthurs Pass)를 가기로 했다. 아서스 패스는 크라이스트 처치가 있는 동해안과 그레이 마우스가 있는
서해안을 잇는 230Km의 알파인 철로가 통과하는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로 손꼽히는 곳이다.
기차를 예약하지는 않아, 우리는 자동차로 아서스 패스 까지 가서 되돌아 오는 코스를 택했다.
아서스 패스 까지는 2시간, 왕복 4시간 운전이면 하루를 온전히 소비하는 일정이다.
아침 9시쯤 부터 우리는 지도를 펼치고 크라이스트 처치시내를 벗어나 73번 도로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쉐필드와 스프링 필드를 지나자 평범하던 풍경이 조금씩 바뀌면서 먼 산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나무 한그루 없는 민둥산이지만 장엄함이 우리의 시야를 압도하고, 도로는 호쾌하게 뻗어있다. 멋진 풍경이다!
자동차로 달릴 수 있는 도로에서 이 처럼 멋진 풍경은 본 적이 없다.
서던 알프스의 꼭지점인 아서스 패스에는 별다른 감흥의 풍광은 없다. 우리는 되돌아 내려오면서 눈여겨 보아두었던 '캐슬 힐'
이라는 바위 군(群)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우리 식으로 치면 만물상 처럼 나열된 커다란 바위 군을 감상했다.
오랫만의 화창한 날씨 속에서 모처럼 기분 좋은 하루다.
뉴질랜드를 떠나면 이 아서스 패스는 많이 그리울 것 같다. 뉴질랜드에서 자동차 여행을 하면서 가장 인상깊은 길을 얘기하라면
이 길은 빠지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흡족한 기분으로 크라이스트 처치의 숙소로 돌아왔다.
모텔의 젊은 주인에게 이틀 더 연장하겠다고 하니 이 친구 반색을 한다.
여진이 그치지 않는 이 도시에서 이틀을 더 머물겠다니 이 무슨 배짱인지 원......
숙박이 연장되니 숙박료를 깍아 달라고 했더니 이 친구의 계산법이 재미있다.
내가, 우리가 이미 계산한 이틀치 방값이 90불씩 해서 180불이니, 연장한 이틀은 80불씩 해서 160불로 해 달랬더니, 그러지
말고(!) 전부 4일이니 4곱하기 85불 해서 340불로 하잔다.
그러니 340불에서 이미 당신이 지불한 돈이 180불이니 160불만 내면 된다는 거다. 이 친구, 그게 그거 아냐!
하지만 이 젊은 친구는 자기나름의 원칙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고는 악수를 청하고 엄지 손가락을 세우곤 '베스트!' 한다. 뭐가 베스트야?
내 계산법이 베스트 라는건지, 지 계산법이 베스트란건지, 이 여진의 도시에서 간 크게 이틀을 더 묵으려는 우리의 간댕이가 베스튼지 아무튼 처음 목적한 바를 달성했으니 나도 베스트!다.
새벽녘 침대위 천정의 작은 샹들리에에서 '째르르....' 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이게 무슨 소리야? 왜 천정에서 유리 부딪는 소리가 계속 나는거지?' 하는 생각에 멍하니 있으니 침대마저 약간씩 움직인다.
'아하! 이게 지진이라는거군!' 하는 생각에 아연 긴장했다.
그렇지만 잠깐 그러고는 그만이다. 이게 심하면 집이 내려앉고 도로가 갈라진다는 것이다.
참 곤란한 동네에 누워 자고 있군 하는 생각으로 잠시 난감한 기분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이 도시는 지금도 계속되는 여진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잠이 깨어 뒤척거리면서 문득 제랄드 메사디에가 '신이 된 남자'에서 넋두리 처럼 쓴 글귀가 떠오른다.
"신(神)이라는 개념은 인간이 우주의 강력한 힘 앞에서 무력감을 느낌으로 인해 태어나게 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신의
개념은 하늘의 불꽃들이 야기하는 신성한 공포와 무관하지 않는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인간은 눈을 들어 위를 쳐다보면서
자신의 나약함을 인식하게 되었고, 별들의 은총과 손을 잡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왜 신은 이 아름다운 도시를 불구덩이 위에 세우도록 허락했을까?
그렇지만 이럭저럭 뒤척이다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어쨋던 인간은 이런 상황에서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 내재된 상반된 의식들, 즉 목숨이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니 내가 어떤 짓을 해 봐야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일종의 숙명론적 의식과, 또 이러다가 별 일 없이 넘어가겠지 하는 낙관론적 의식이 동시에 우리 머릿속을 차지
하는건 아닐까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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