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4일 (크라이스트 처치 3일째)
아침에 일어나 스프를 끓이고 계란으로 스크램블을 만들고, 버터로 식빵을 구워 거나하게 먹고는 다시 해글리 공원으로
향했다. 해글리의 북쪽에 있는 우리는 해글리의 동쪽면을 살피면, 지진의 피해가 가장 큰 시티센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던 것이다. 가면서 살피다 보니 우리가 이번 여행을 계획할때 처음 도착하여 숙박지로 예약했던 YMCA 회관이
나왔다. 이 건물은 헬스, 실내 록 크라이밍, 숙소 관련 등 복합 건물이었는데 이 YMCA를 뉴질랜드 첫 숙박지로 예약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근처에 해글리 공원과, 꼭 가보고 싶었던 아트센터, 박물관, 대성당 등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해글리 공원 이외엔
전부 폐쇄지역 안에 있어 보기가 어렵다.
패쇄지역 안에 건물이 있었지만 어찌된 셈인지 층마다 몇 명의 사람들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폐쇄지역이라는 표시와 폴리스 라인, 철망 등으로 구분을 해 놓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통제하거나 출입을 막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심지어 군인 둘은 의자를 가운데 놓고 앉아 카드 놀이를 하다가 우리가 다가가자 싱긋 웃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패쇄지역안을 구경하기도 하고 일부 부숴진 건물 잔해 근처를 서성이기도 했다.
경찰이 패쇄지역안에 있기는 하나 우리가 울타리 안에 있는것을 보고도 그냥 빙긋이 웃기만 할 뿐 제지하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패쇄된 곳의 일부 개방된 곳을 알려주기까지 했다.
참 희한한 광경이다. 사람들은 (많지는 않았지만) 파괴된 잔해들과 건물들 사이를 마치 구경거리를 찿듯 돌아 다니고 있고,
군인이나 경찰 역시 그런 사람들을 아무런 제지없이 방치하고 있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구경하는 것도 아니고 마치 저녁 산책 나온 사람들 처럼 띄엄띄엄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파괴 정도가 심한 대성당 인근의 중심부는 울타리로 완전히 봉쇄해 두었다.
우리네 라면?....... 대충 짐작이 가지 않는가?
안전을 염려하고(!) 약탈과 기타 등등의 이유로 접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라 안팤이 안전하지도 않으며, 도둑과 사기꾼이 끊이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YMCA에는 출발전에 인터넷으로 3일간 숙박을 예약하고 비자카드로 결재까지 했는데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확인은 한국으로 돌아가서 해야 할 것 같다.
숙소에서 인터넷으로 YMCA에 연결을 시도했지만 화면엔 지진피해를 알리는 글만 뜬다.
TV에서는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피해가 계속 방송되고 있고, 폭발한 원전외에 또 다른 원전이 폭발했다는 뉴스가 계속 나온다. 정확한 정보는 영어가 서툰 우리에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참 갑갑하다.
그렇지만 뭐, 이미 벌어진 일 아닌가.
옛날부터 지진은 있어왔고, 다만 그 시기가 하필 우리가 남의 나라에 와 있는 지금이라는게 공교로울 뿐, 뭐 다를게 있겠는가.
진도 8.9 라는 숫자를 처음 접하는것 같다. 시커먼 바닷물이 육지로 밀려들고 자동차와 배, 건물들이 마치 미니어쳐로 만든
조형물 처럼 쓸려가는 광경을 지켜보니 인간 세상의 나약함이 어이없다.
이런 처참한 광경을 그 나라 가까이 사는 우리가 이토록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보고 있다는 것이 좀 생경하다.
원전이 '인간에게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대량소비가 필요한 부분에서 그렇다는 얘기고 어차피 그것이 재앙의 씨앗을
품고 있는것은 다들 알고 있었던것 아닌가. 다만 모르는척 했을뿐이고, 괜찮겠지 하는 방심과 개발론자들의 이기심과 탐욕의
결과물인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얘기다.
일본 도심 번화가의(우리도 마찬가지지만) 휘황한 네온사인과 유흥가를 대낮 같이 밝히고 건물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낭비를
멈추려고 하지 않으면서 전력량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부른 재앙 아닌가.
지금이라도 검약한 생활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디 그럴 위인만 있는 곳인가 이 세상이......
아리랑 TV에서는 우리가 떠나온 나라의 대통령이란 자가 나와서는 "석유 생산에 참여하고, 어쩌고...." 하는데 이런 자가
지구의 공적(公敵)인 것이다.
이런 자가 판치는 토목 공화국이 그래도 지진대에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 그나마 얼마나 다행한 것인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토목 공사의 강국인 우리네가 이런 자연재해를 당한다면?....... 상상하기도 끔찍하다!
질펀한 탐욕의 1/3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라는 자를 다른나라의 TV에서 보는게 상당히 역겹고 부담스럽다.
이크! 좀 전에(오후 8시 30분) 쿵! 하면서 건물이 흔들렸다. 2층의 우리는 겁을 먹고 아랫마당으로 뛰어 내려갔다.
아래에는 네델란드 처녀 둘이서 담배를 피고 있다가 우리에게 "방금 느꼈어?" 하고 묻는다. 그럼 이눔들아! 그러니 뛰어
내려 왔잖냐!
세상은 공평한 것이다. 이런 굉장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리고 그 보다 넘치는 풍족을 가지고 잇으면서 발 밑에
꿈틀대며 용트림하는 불구덩이를 밟고 섰으니...... 우린 별볼일 없는 환경에 떼거리는 많지만 이런 위험천만한 땅은 아니니
말이다.
쿵! 하고 발밑을 때리는 지진의 공포와 충격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마치 발 밑에서 거대한 햄머로 바닥을 내려치는것 같은 느낌이다.
언제 또 벼락이 내려칠지 모르는 공포의 골짜기에서 전전긍긍하며 부들부들 떠는 불쌍한 군상들 같이 우리는 마당에 망연히
서 있었고, 네델란드 처녀애 둘이는 담배를 또 꺼내물고 주저앉아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올려다 보고있다.
발 밑 들끓는 악마들의 아우성과는 달리 밤하늘은 너무도 태연하게 청아하니 아하! 참으로 기이한 기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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