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4)발리, 그리고 우붓

운농 박중기 2017. 11. 3. 13:27

2017. 10. 15 (우붓)


아침 일찍 눈을 뜨니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소나기다.

이곳에서는 스콜이라고 하던가? 엄청 쏟아진다.

포근한 침대속에서 빗소리를 듣고 보는 것은 굉장히 기분좋은 일이다.

그것은 이상한 안도감과 함께 행복한 기분이 되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들까를 잠시 생각했다.

내 생각엔 - 원시시대에 인간은 동굴이나 얼기설기 비가림 아래서 생활했을 것이다.

그냥 무방비 상태에서는 고생스럽게 비를 맞을 수 밖에 없다는것을 깨닫고 동굴속에서 나와 집을 짓기 

시작했을 것이다.

동굴속은 다른 녀석들이 들어오곤 해서 쫒아낸다고 고생해야 했고, 또 쫒겨나기도 했으며, 엉성한

오두막은 금방 비에 젖고 바람을 막지 못해 쓸모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가족들과 머무를수 있고, 다른 녀석들이 침범하지 않도록 안에서 걸어 잠글수 있는 집에 가족들과

누웠을때 아! 이제 안심이구나......

그래서 우린 맘에 드는 새 집에 이사 갔을때 그렇게 행복했구나, 그래서 이 이른 아침의 빗소리에 행복을

느꼈구나...... 얼마 되지않는 돈으로 이틀간 이 집을 빌렸고, 이 집을 떠나도 옆집에 이미 일주일이나

머물곳을 확보해 두었으니 행복한게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란 이런 원초적 행복감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갑자기 비가 그치고 여기 저기 닭들이 우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부산하다.

백운리의 집에서도 아침에 새소리가 많지만, 닭이 우는 소리는 '여기는 인가가 밀집한 마을이야!' 하고

가르쳐 주는 것이다.

대개의 인간들은 (특히 우리네는) 닭들은 대량사육의 케이지에 넣어두고, 자기네 끼리는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살고있다.

위생에 예민하며, 온,습도가 맞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큰 일이 나는줄 알며, 미세먼지 한 톨이라도

마시지 않으려고 하루종일 기계를 틀어두고 사는 인간들이 불쌍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불쌍하게 살고들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으며, 말년이 되어서는 전원생활이

로망입네 하면서 얘길하지만, 정작 살고있는 곳을 떠나면 절대 살아가지 못할것 같은 불안에 이주할

엄두도 못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설사 이주를 감행했다해도 딴엔 안락했던 도시로 뻔질나게 드나들며 그곳과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보자면 우리네 농촌이란 곳이 그야말로 로망으로 볼 것이 아닌것이, 숱하게 뿌려

대는 살충제, 제초제, 호르몬제 등등이 만연하여 지하수가 멀쩡하기 어렵고, 미세먼지란 것은 어느

지역이 예외일 수 없으므로 옛날처럼 '물 좋고 공기 좋은' 곳 만은 아니라는게 문제다.

인간은 어디서 온전한 곳에 살 수 있을까?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 발리 우붓에만도 수많은 오토바이가 길가에나 도로에 도열해 있고, 꾸따에서

우붓까지 멀지 않은 길에 인간들이 사는 동네가 거의 이어져 있고, 밀리는 차와 오토바이로 제 속도를

내기가 어려우니......

그렇지만 여기, 우붓 스리웨다리의 골목안 정원속의 숙소는 편안하고 안락하다.

아궁산 화산이 곧 터질거라고 신문에서 떠들어댔지만 여기서 물어보니 아무도 관심이 없고 픽 웃고

만다.

'한국의 핵전쟁이나 염려하슈!' 하는 것 같다.


이 아침, 8시에 주기로 한 아침식사는 아직 주지 않는다.

어제는 배가 살살 아팠으나 이젠 배가 고프다.

잠시 정원으로 내려 갔더니 날 발견하고는 '밥 줄까?'하고 묻는다. 이 조그만 처녀는 내가 일어나길

기다렸던 것같다.

곧 숙소앞 테이블에 가져다 준 오물렛, 망고 쥬스와 홍차, 그리고 파파야.

'오물렛이 이렇게 맛난 음식이었어?' 근사한 호텔 조식보다 멋지고 맛있다.

처녀에게 엄지를 세워주니 까르르 웃으며 좋아한다.

여태껏 남의 나라에서 받아 본 아침식사로는 최고다.


다른 이들과 달리 나는 많은 땀을 흘리고 티셔츠와 바지춤이 젖은데다 설사기운도 있어 약간 지친 기분

으로 다녔다.

길가엔 늘어선 레스토랑, 여행사, 제과점, 그림파는 가게, 마사지샵, 작은 가게등이 즐비하고 몸을 반쯤

드러낸 사람들과 수많은 오토바이, 이런 것들이 산골에 살다 온 내겐 참 혼란스럽다.

온갖 여자들의 현란한 옷과 몸에 눈이 갔다. 어지럽다.

마침내 되돌아오는 길에서 완전히 지쳐버렸다.

이런 것들을 보려고 여기 온 건 아냐, 정신차려!

잘못 말려들면 우붓이라는 동네를 '다시는 오기 싫은 동네'로 만들수 있고, 그것은 내 마음먹기 나름

이라는걸 안다.


 푸리 루끼산(puri lukisan) 미술관엘 갔다.

숙소에서 멀지 않아 걸어서 갔지만 역시 오늘도 엄청 더워 옷이 다 젖고 말았다.

미술관은 모두 3개의 별관으로 되어 있는데 첫번째 별관은 최근에 그린 그림이 있는데다 전시된 그림은

판매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 좀 실망스런 기분이다.

그림의 제호도 종이에 쓴채로 벽에 붙어 있어 뭔가 조악한 운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나머지

두 별관의 그림들은 달랐다.

인도네시아 회화의 개성이 뚜렷하다.

마음에 든 것은 그림의 8할 이상의 소재가 농촌풍경이나 서민들의 작업 모습, 마을 풍경 등이라는 점이었다.

특히 농업인들의 작업 풍경이 많은것이 좋았다.

러시아 뻬쩨르브르그의 미술관에서 농민의 작업 소재가 많아 좋았던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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