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일본 나들이 (5)

운농 박중기 2017. 8. 23. 14:05

2017. 5. 18-19 (교토 - 부산)


은각사, 금각사와 대비되는 듯한 이름이 선입견을 주기도 했지만 은각사는 은빛과는 아무 상관없는 절이었다.

잘 정돈된 일본식 정원이 대단히 아름다운, 단정하고 깔끔한 손질이 엿보이는 곳이다.

어쩌면 그런 인위적인 손질이 너무 드러나서 조금은 부담스런 감도 없진 않지만 굉장히 아름답다.

다소 복잡한 수목들이 빽빽히 들어서서 조금은 어두울 정도 였지만 나무가지 하나 하나, 바닥의 이끼 하나

하나에도 섬세한 손길이 닿아 극도로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아마 전형적인 일본식 정원을 보고 싶다면 은각사로 갈 일이다.

목조 건물들도 훌륭하고,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만 금빛 찬란한 누각을 가운데 놓고 경연하듯 늘어선

수목들과, 연못가에 핀 청색 꽃의 난초가 주는 강렬한 느낌은 역시 금각사가 대중적인 임팩트로는 한 수 위다.

자세히 보면 은각사가 정원의 수준과 수목들의 모양새가 금각사보다 훌륭하다고 보이지만 과감히 정리하지

못한 공간의 여백이 부족한 점에서는 조금 아쉽다. 


은각사를 나와 별 감흥없는 '헤이안 신궁'을 대충 둘러보고 난 뒤 헷갈리는 버스 노선을 간신히 파악해 여렵사리

찾아 간 '후시미 아나리타이샤'.

절이 아닌 신사인데 온갖 잡신을 모시는 곳이라 음침하다. 엑소시스트에 나올법한 개 형상의 지킴이가 묘석들

앞에 있고, 붉은 천과 주홍빛 천들을 이리 저리 휘감아 놓아 썩 유쾌한 분위기가 아니다.

어찌보면 일본인들의 잡신 개념을 엿본 듯한 그런 곳이다.

다만, 골짜기와 능선을 따라 길게 도열해 놓은 주황색 기둥(신사앞에 흔히 있는 한자 丹자 모양)이 압권이다.

이 기둥들은 아마 여러 기업이나 개인이 기증한 것들을 다닥 다닥 세워서 도열시킨것 같은데 상당히 이색적인

풍경이라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일본을 배경으로 한 어떤 영화에서('게이샤의 추억' 이든가?) 이 기둥들 속을 걷고 있는 게이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그곳을 나와 가게들이 있는 거리로 나왔는데, 예의 그 기가 막힌 색감의 각종 장신구들이 눈에 들어 온다.

굉장히 아름답고 정교하면서도 훌륭한 색감이 그저 감탄하게 만든다.

손부채와 헝겁인형, 머리띠 구슬, 핀, 손수건과 장식보, 그릇 등등 훌륭한 색감이 참 황홀하다.

이렇듯 마음에 와 닿는 색감과 디자인을 본 적이 없다.

강렬하고 힘찬 색상도 아닌, 대단히 화려한 색상도 아니면서도 마음을 사로잡는 색감들이다.

언제 다시 이곳을 들러 차분히 이들의 색감들을 순례하면서 즐기고 싶다.

어떤 문화의 변천이 이러한 색감을 만들어냈는지, 기모노의 화려한 문양이 옛부터 있었던 색상인지, 아니면

현대에 와서 생겨난 것인지, 마음을 사로잡는 디자인과 문양은 어떤 변천사를 겪었는지 알고 싶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집중적으로 순례하면서 그런 궁금증들을 풀어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각자의 가게를 꾸미는 이들의 정성과 노력은 분명 우리가 배워야할 부분이다. 

우리네도 최근들어 이쁜 가게들을 내놓고 있지만 이곳처럼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장소 외에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며칠 되진 않지만 이들이 보여준 친절과 공손함도 참으로 인상적이다.

가게에서, 길거리에서, 숙소 등에서 보여준 이들의 친절함과 공손함은, 우리가 '가식적'이라고 폄하해서는

안되는 진정성과 몸에 베인 배려가 있다.

특히 놀라왔던것은 젊은이들의 공손함이었다. 이들의 표정에서 우리네 젊은이들에게서는 보지 못하는 순박함이

보였다는 사실이다.

동경이 아닌, 시골 교토라서 그렇다고?...... 그렇지만 절대 그렇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우리가 사는 함양의 중고등학교 애들은 거의 다 면도칼을 들이대면 쫙 찢어질것 같은 타이트한 치마를 입고,

입술에는 루즈를 바르고 다닌다. 그렇지 않은 애를 보기가 더 어렵다.

교토는 우리 함양의 몇십배 큰 도시다. 시골 교토가 아닌 것이다.

길거리에서, 가게에서, 관광지에서 만난 많은 일본의 중고등학생들중 입술에 루즈를 바른 애들을 본 적은 

없다. 타이트한 치마를 본 적도 없고.

타이트한 치마가 무슨 흉이냐고?...... 우리네 함양 애들의 타이트한 치마에서 괜한 어설픔과 치기와, 경박함을

봤다면..... 나는 역시 '꼰대'인가?......

하긴 이들 학생들의 수수한 차림새에서 일본의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인 문화의 냄새를 느꼈다면 이상한가?


좀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생각난다. 오사카에서 건널목을 건널때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두 줄로 나란히 서 있는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나도 그들 뒤에 섰지만 '이건 좀 우스운데'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건널목 건널때도 두 줄로 나란히 건넌다? 이건 좀 이상하다.

물론 건널목 마다 다 그랬던건 아니고, 아침 러쉬아워 때 였지만, 하여튼 일본인들의 좀 경직된 질서의식은

아무래도 따라하긴 어색하다.


여행 말미에 늘 그 나라의 색상을 떠올려 보는 버릇이 있다.

일본은 어떤 색상으로 남을까?

연한 분홍색 같다.

화사하면서도 침착하고, 열정이 엿보이면서도 단정하고, 강렬하지도 않으면서 화려한......

어쨋든 다시 이곳을 찾아 차분히 엿보고, 차분히 공부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아름다운 색감으로 매력적인 나라, 이곳에 자주 올 듯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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