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신해철의 죽음, 그리고 신(神)

운농 박중기 2014. 11. 1. 14:03

몇일 전 가끔씩 나가고 있는 그림 공부방에서 신해철의 죽음에 관한 얘길 들었습니다.

60대 후반과 70대 초반이 주로, 그리고 몇몇 50대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하자면, '대체 그가 뭔데 뉴스에서 난리냐, 그 친구 꼴이 그게 뭐냐, 머리통에 뱀이나 흉측하게 그려놓곤

그러니 죽지!'

'그녀석 좌파에다 마약쟁이 아니냐!'

그들은 그의 죽음에 대해 물론 슬픔을 느끼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의 죽음 자체를 우스꽝스런 광대의

헤프닝으로 까지 얘기 하더군요. 물론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타인에 대한 예의도 없고요.

몇몇은 입을 굳게 닫고 있고요.

 

나는 사실 그의 음악적 재능이나 역량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의 음악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지요. 다만 록 가수로서 그의 명성 정도만 어렴풋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매체에서 나와 한 발언들은 알고 있습니다.

토론 프로에서 그가 토하듯 내뱉던 말이나, 신문에서 그의 발언을 소개하는 것들을 접하고 그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그토록 거침없이 자기의 주장을 쏟아놓는 연예인은 제가 알기로는 없었지요 아마?

물론 그의 말들에 대부분 내가 동감했기에 그를 기억합니다.

 

사람들이 그의 얘기를 하는것을 듣고 있으면서, 전번에 얘기했던 '죽음과 삶의 간극' 만큼이나 전혀 생소한

사고(思考)의 강(江)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같은 시공에 살고 있지만 사실은 그들과 나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우리 사회는 참 깊은 양 극단의 골짜기 속을 헤매고 있는 듯 싶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느끼는 세계와 가벼운 이죽거림이 있는 사회가 무섭도록 존재합니다.  무섭습니다.

'노무현'이라는 순진하면서도 정열적인, 인간 냄새가 나는, 그러나 결국 무능했던 양반이 죽었을때도 그러했지요?

그를 '무능한 사람'으로 만든 우리사회의 무섭고도 야비한 카르텔은 지금도 여전히, 아니 더 맹렬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퇴임해서 밀집 모자를 쓰고 손자를 자전거에 태우고 논둑을 달리는 모습을 도무지 그냥 봐 줄 수 없는 세력이

이 나라에는 너무도 많습니다. 악마들입니다. 

 

신은 없다고 하셨지요?

그렇지만 아직은 그렇게 단정하진 마세요.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무신론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있다고 증명할 수 있어야 유신론자가 될 수 있듯이요.

제가 '종교학'에 관심을 가진것은 20대 부터였습니다.

지금은 가장 친구 둘이, 성직자 출신이거나 현직입니다.

그 둘 중 한 명은 어지간히 나를 전도(인도!) 하려 했지요. 지금은 포기했고요.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독교는 왜 존재할까요? 예수는 왜 지금까지도 수억의 인구에게 팔리고 있을까요?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구해 보려고 종교학에 관심이 많았었습니다. 꽤 많은 종교서적과 꽤 많은 토론을 거쳤지만

아직도 나는 '회의론자'입니다.

신의 존재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신이 우리의 '필요'와 '불필요'에 의해 존재하는건 아니지만요.

신의 존재가(그 신이 어떤 종류의 종교가 주장하는 신이든) 이 지구상에서 문명을 만들고, 이론을 생산하고,

문화를 일궜습니다.

인간이란게 그리 질서정연하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지 않습니다. 신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이만한 세상이라도

꾸려 나갔을까요?

M씨와 꼭 같은 생각을 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을 돌아보며 조금씩 바뀌는 나를 발견하곤 합니다.

네팔의 랑탕계곡과 마차푸츠레를 보면서, 인도의 갠지스 강의 새벽녘에서, 뉴질랜드의 퀸즈타운에서......

우리집 봄철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새벽의 밭 새싹에서...... 그렇게 신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고 하지요? 수많은 해법만이 존재한다고요.

좀 더 부대끼다가 단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신은 죽고 없다, 아니 애초부터 신은 없었다' 는 관념을 제공하기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 불행히도 '회의론자'입니다.

아마 죽을때까지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냉철한 통찰력을 가지려고 애는 써 볼겁니다.

행복해지려고 무던히 애를 쓰세요.

'신이란 건 없다'고 하고나면 이 세상은 허무합니다. 허무하지 않으려고 나는 회의론자로 남을겁니다.

 

행복하세요.

또 편지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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