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9)중늙은이의 히말라야 일기

운농 박중기 2013. 7. 29. 13:43

 

2월 24일  (랑탕콜라)

 

샤브로벤시의 아침은 쿵! 하는 마음의 울림에서부터 시작됐다.

 롯지 아래로 흐르는 랑탕콜라의 도도한 굉음이 온 마을을 흔들고, 마을은 엄청난 위용의 산속에서 마치 점(點)처럼 박혀 있다.

 그 마을의 집들은 커다란 빈 박 속에 하나씩 붙어있는 모래알갱이 같다, 그 큰 박은 또 하나의 세상처럼 거대하다. 우리는 압도되어 한동안 한숨만 깊이 내쉬고 있었다. 포터 치린이 멍하니 한숨쉬는 우리의 등을 슬쩍 건드린다. '정신 차리쇼. 이제부턴데 벌써 넋을 빼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요' 이러는 것 같다. 그래 정신 차리자!

 

 식사 후 본격적으로 첫날의 트래킹을 시작했다. 마을에는 '랄리그라스'라는 나무에 커다란 붉은 꽃들이 피어있다. 밀키블루의 강물은 주변의 우당탕 쏟아져 내린 산기슭과 잘 어울린다.

 벰부(Bamboo, 1,960m)까지 거의 4시간을 계속 계곡을 곁에 끼고 걸었다.

 도중에 라마호텔(Lama Hotel, 2,340m/마을이름)이 집이고, 카트만두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티베탄계 두 자매를 만나 동행했다. 우리네 생김새와 별로 다를 게 없다. 한국의 읍내에서 보는 고만고만한 얼굴하며, 키며, 손발들이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포터인 치린과 우리 둘, 두 자매, 이렇게 다섯이 두런두런 얘기하고 웃으며 랑탕계곡을 오르는데...... 행복했다.

 두 자매에게 우리는 짖궂게 치린을 치켜세운다.(치린은 스물 네살의 총각이고, 두 자매도 스물 셋, 스물 한 살의 처녀들이었으므로)

 "이 친구 스트롱 맨! 좋은 총각이야, 돈도 잘 벌고." 어쩌고 하면서. 두 자매는 보기 좋게 웃는다. 이 두 자매를 비롯해 네팔리들의 웃음은 참 매력 있다. 순하고, 다소 수줍고, 감추는 듯한 모습은 50년대 한국 새색시의 웃음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케 한다. 우리의 여인네에게서 그 웃음은 이제 사라져 버렸다.

 

 벰부에 도착하기 전 까마득한 벼랑에 벌집이 커다랗게 붙어있다. 지름이 거의 2m는 족히 넘는 것이 10개도 더 된다. 크게 자라는 것은 4-5m까지 큰 것도 있다고 한다. 석청의 채취과정이 상상을 초월한 힘든 작업임을 카트만두의 민박집에서 프랑스인 사진작가의 네팔 석청(Wild Honey)채취 과정을 수록한 작품집을 보면서 알았는데, 과연 실제로 목격하니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없을 듯 보인다. 벌집이 높디높은 벼랑의 수직 암벽 중간쯤에 붙어 있는데다, 허니 헌터(Honey hunter, 벌꿀 채취자, 네팔에서는 '빠랑게'라고 함)들은 자기가 직접 현지에서 만든 대나무 껍질 로프에 막대기를 끼운 사다리에 매달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기다란 막대기와 나무 소쿠리만으로 채취한다고 한다. 벼랑아래에서는 조력자들이 연기를 피워 벌들을 쫒는다지만, 꿀벌 중 세계에서 가장 큰 벌이라는 '아피스 라보리오사(Apis laboriosa)는 허니 헌터를 집요하게 공격하기도 한다고. 민박집 주인장의 말을 빌리면 이 지역의 석청은 그 유명한 네팔 석청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고 했었다.

 이런 연유로 네팔 석청은 상당히 비싸고 진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며, 카트만두 시중에는 환각제를 섞은 가짜 석청이 꽤 유통되는 모양이다. 환각 물질을 넣는 것은, 진품의 경우 일종의 명현현상이 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와 유사한 현상으로 착각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3개의 롯지가 있는 벰부에는 주문한 음식이 한참을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 두 시간여를 음식을 기다리고, 먹느라 시간을 보내고 라마호텔로 올랐다.

 라마호텔은 별천지다. 롯지들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 옆으로는 타잔이라도 나올 것 같은 밀림과 절벽, 또 한쪽 옆은 치솟은 산, 뒤쪽은 랑탕리룽(Langtang Lirung, 7,234m)의 유별나게 하얀 봉우리, 앞쪽은 랑탕콜라의 흐름. 아름다운 곳이다. 정말 아름답다.

 티베탄인 롯지주인(프랜들리 롯지)은 우리가 그들의 롯지를 선택하자 기뻐하고 고마워한다. 저녁엔 달밧과 야크고기 튀긴 것을 먹었는데 달밧은 예의 그 밍밍한 맛이나 다른 롯지 보다는 괜찮았고, 말려 두었던 야크 고기는 질기다. 하지만 그런대로 배불리 먹었다.

 식당을 나오니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처음 네팔에 왔을 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새벽에 잠이 깨어 추운 마당 한가운데 나왔을 때 머리위에서 마치 초롱불 같이 빛나던 별들이 떠오른다. 표고 4천 미터가 넘는 곳이라선지 한편으로는 생경하고 또 경이롭기까지 하던 그 별빛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네팔리들이 옆집 식당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들의 노래는 우리네 노래와 좀 다르다. 특유의 애잔함과 함께 그들의 눈빛 같은 우수가 있으며 단순 반복적인 멜로디다. 그들의 비행기속 조용조용하던 대화와 같다.

 

 양초를 켜 두고 글을 쓰니 불빛의 흔들림에 눈이 시리다.

 

《랑탕콜라 Langtang Khola》랑탕계곡을 흐르는 강(江), 네팔에서는 강을 콜라라고도 한다. 랑탕콜라는 랑탕빙하(Langtang Glacier)에서부터 랑탕계곡을 거쳐 트래킹의 출발지인 샤브로벤시로 흐른다.

 

《랄리그라스 Laliguras》 네팔의 국화(國花)인 붉은색 진달래 과의 상록 고목으로 3-5월에 산을 붉게 물들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