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거대한 고래 뱃속, 샤브로벤시)
랑탕 계곡 트래킹이 시작되는 마을 샤브로벤시로 가는 버스는 카트만두의 뉴 버스 파크에서 출발했다. 아침 6시 30분과 7시 30분 두 차례만 출발하고, 트리슬리와 둔체를 거쳐 샤브로벤시가 종점이다. 버스는 1인당 250루삐, 둔체 앞의 국립공원 사무소에 1인당 1,000루삐의 국립공원 입산료를 내야 한다.
우리나라의 어느 곳에서도 운행될 것 같지 않은 낡은 고물버스는 우리를 거의 초죽음(!)으로 몰아넣고서야 샤브로벤시에 도착했다. 세상에 태어나 이런 길을 버스로 달려 본 적도 없고, 이렇게 긴 시간을 버스 속에 갇혀 본 적도 없다. 아마 이번 버스여행이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힘든 버스여행이 될 것 같다.
장장 10시간 40분이 걸렸고 구간의 80%가 비포장 길이었는데(하긴 포장길이라고 별로 다르진 않다) 차안은 시종일관 유입되는 먼지가 시멘트 공장 하치장 수준이어서 우리는 손수건으로 복면을 하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지붕에는 승객들의 짐과 염소, 사람 등이 덤으로 앉아있고, 달리고 있는 와중에도 짐과 사람을 체크하기 위해 수시로 지붕을 들락날락하는 차장과 지붕의 짐 담당자, 또한 쉴 새 없이 몰아쳐 들어와 차안을 휘감는 뽀얀 먼지, 그 먼지 속에서도 끊임없이 정담(!)을 나누는 네팔리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버스는 전 구간의 99%를 까만 절벽을 발치에 두고서 산비탈을 달린다.
사실 '달린다'는 표현은 좀 그렇다. '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대체로 버스의 평균 시속은 5Km에서 20Km 사이인데, 하긴 비포장에다 돌멩이 투성이의 길을 '달릴 수'가 없다. 한 시간 간격으로 하루 2대만이 운행하는 이 구간에서 만일 앞차가 고장으로 멈춰 서 버리면(이런 일은 흔하다고 한다) 그 차를 수리할 때까지 뒷차는 마냥 기다려야 한단다. 비켜 나갈 공간의 여유가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2004년 10월의 네팔 첫 여행때의 카트만두에서 포카라 행은 이 길과는 아예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한다. 카트만두 - 포카라 구간의 8시간 버스 행군에 진저리를 쳤다면, 카트만두 - 샤브로벤시 행은 초죽음을 만든다.
10시간 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천길 낭떠러지 산길을 달리다 마지막 40분을 그 까만 절벽 아래, 강이 흐르는 마을을 향해 지그재그 곤두박질로 내려간다. 그 끝머리에 샤브로벤시가 있었다.
길은 차 한대가 가면 딱 들어맞는 폭이다. 여유는 없다. 굵은 돌과 자갈, 그리고 푸석푸석 먼지 투성이의 길바닥 감각은 아예 탄력 스프링이 없는 듯한 차 바닥을 그대로 두들겨대 엉덩이에 가감없이 전달된다.
끊임없이 차는 요동치고 덩달아 우리 몸은 가여운 오뚝이가 된다. 한쪽 차창 밖은 아예 풍경이 없다. '풍경이 없다'는 것은 천길 낭떠러지를 곁에 두고 달려 아예 한쪽이 보이질 않으니 그쪽을 보면 허공에 그냥 떠서 덜컹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있는 느낌이다. 쿵쾅거리며 돌은 바퀴에 부딪히고, 이리 기웃 저리 기우뚱. 그러나 언뜻 안개가 걷히며 보이는 맞은편 계곡은 선경(仙景)이다. 너무도 아름답다. 거대하고 거침없는 아름다움이다. 그걸 보려고 고개를 내밀다가 창틀에 부딪힌다. '쿵!'
이 길의 끔찍함을 알고 나면 다시는 이곳에 올 엄두가 나지 않을게다. 모르고 오는 자만이 이곳에 올 수 있을 것이다.(물론 네팔리는 제외하고)
그러나 버스 승객 누구도 불안해하지 않았고, 초조해 하지도 않았으며, 일곱 번에 걸친 무장군인들의 검문에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카트만두를 벗어나자 시작된 군인들의 검문은 예상보다 철저했다. 일단, 버스의 통로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소지품을 소지하고 내리게 하고는, 그들을 밖에서 일렬로 줄을 세워 소지품을 일일이 검사한 다음 100m쯤 버스 앞쪽에 기다리게 두고는, 차안의 사람들과 짐을 조사했는데 외국인(우리가 유일했다)은 일절 관여치 않았지만 차 속의 짐들은 예외없이 만져 보거나, 일부는 열어서 확인하곤 했는데 이런 짓거리를 무려 일곱 번이나 하는 것이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버스여행이다.
샤브로벤시에는 저녁 6시 30분쯤 도착했는데 곧 어두워졌다. 샤워 후 롯지(Lodge)의 3층에서 내려다보니 계곡을 핥고 내려가는 물소리가 예사롭지 않고, 마치 거대한 고래 뱃속에 들어 온 것 같은 기분이다.(이 롯지는 마을 중심에 있고, 이 마을이 랑탕 트래킹의 출발점이 되는 곳이라 규모가 컸다) 지금은 밖을 분간할 수 없으나 내일 아침에는 아마 엄청난 풍광을 접할 것 같다. 왜냐하면 어렴풋한 윤곽이 드러나는 산 능선의 거대한 품을 엿봤기 때문이다. 이 엄청난 장관 속에 빠지기 위해 우리는 그 끔찍한 버스 여행을 했나 보다.
《롯지 Lodge》 트래킹족을 위해 트래킹 루트의 마을이나 특정한 장소에 있는 트래커용 숙소 겸 식당. 방안에는 2인용 또는 그 이상의 나무 침상이 있고, 매트리스에 베게 정도가 시설의 전부다. 여행객은 침낭을 지참해서 자야하며, 난방시설은 없다. 태양전지 샤워시설이 있으나 먼저 도착한 트래커 4-5명 정도가 샤워하면 그 뒤로는 온수가 나오지 않으므로 롯지에서 샤워하는 날이 많지 않다고 보면 된다. 타올로 물을 적셔 딱거나, 아침에는 수통의 물로 세수를 하는 정도다.
집은 거의 자연석 돌로 되어 있거나 약간의 목재가 가미된 집이다. 묵은 롯지에서 반드시 식사를 해야 한다. 동절기에는 침상에 들기 전 부엌이나 난로가 있는 공동실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트래커들과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다가 각자 방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든다. 롯지는 산 중턱에 많이 분포되어 있고, 대략 2시간 정도의 도보거리 마다 있다. 롯지에서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은 달밧(밥과 녹두국물, 약간의 채소 볶은 것)과 계란, 감자, 네팔 라면, 밀가루 떡 등이다. 화장실은 수세식이 대부분이며 대체로 깨끗하다. 통에 있는 물로 뒤를 딱도록 되어 있지만 대개의 트래커들은 휴지를 사용한다. 트래킹 루트에는 이런 롯지 이외에는 어떠한 숙박시설도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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