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7)중늙은이의 히말라야 일기

운농 박중기 2013. 7. 29. 09:53

2월 22일  (카트만두의 음식, 그리고 탐욕자들)

 

고도(古都) 박타푸르를 떠날 날이다.

우리가 묵은 게스트 하우스 '시바'는 아침 7시 30분이 되어도 아래층 레스토랑의 문을 열지 않아 빨리 아침 식사를 하고 출발하려는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광장에는 아침나절에만 잠깐 열리는 간이시장이 장사꾼들로 북적대고 있다.

 청바지, 잠바, 시계, 장신구, 채소 등등 활기가 넘친다. 대낮의 다소 나른했던 기운은 이 아침에는 없다.

 더러바르 광장을 지나 카트만두행 버스를 타러 입구로 나갔다.

 "카트만두행 버스는 어디서 타믄 되냐?"

 " 저기 저곳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여학생에게 다시 확인하니 맞은편에서 타란다. 자기는 카트만두가 아니라 너걸코트에 간단다. 그런데 왜 건너가서 타라고 하지? 아하! 버스가 우리네와 달리 반대차선으로 가는 걸 잊었군. 당연히 출입문이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 아닌가. 모든 차는 좌측통행을 하고......

 하긴 카트만두에서 길을 건널 때 습관으로 자꾸 왼쪽을 먼저 보게 되어 반대로 오는 차를 보지 못해 허둥댈 때가 여러 번 있었다. 중늙은이들은(늙은이는 말 할 것 없을 테고) 이게 문제야, 적응이 늦거든.

 아침 9시 30분인데 학생들이 거리에 넘친다. 하긴 너걸코트에서 아침 9시 30분이면 학생이 많으니 10시 버스를 타라고 하던 장발의 하 선생 말이 생각나긴 한다.

 

 카트만두의 바그바자르 정류장에서 내려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주인장과 내일 부터의 트래킹 코스를 의논했는데, 내일 아침 일찍 미리 부탁해 두었던 포터가 오기로 했단다. 카트만두에서 11시간 정도 시외버스를 타고 트래킹 출발지인 샤브로벤시 마을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출발하여 랑탕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마지막 마을인 컁진곰파 까지 갔다가, 올랐던 루트를 조금 내려와 산정호수인 고사인쿤다를 거쳐 헬럼부 지역과 시브뿌리 국립공원 쪽을 통과하여 카트만두까지 17일간의 트래킹 여정을 잡았다.

 자, 내일부터는 산속 생활이다.

 

 우리는 출발 전 잘 먹어 두자고 카트만두의 레스토랑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여행지에서의 레스토랑 메뉴는 참 사람을 심란하게 만든다. 가끔은 결코 맛깔스럽지 않은 요리를 '좀 익혀 줄까요? 아니면 20% 정도를 익힐까요, 아니면 50%?, 70%?, 이런 것도 있다 실제로......(특히 계란 프라이 따위) 20%가 되건, 70%가 되건 여행지에서의 음식에 대해선 별로 까탈을 부리지 않는 우리 같은 부류의 인간에겐 정말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뭐 일류호텔의 레스토랑도 아니고 기껏 번화가 소규모 레스토랑에서 이런 걸 묻는 경우 심란하고 황당하다.

 묻는 종업원이나 듣는 우리 모두 영어는 젬병인데다가 이 두 젬병이가 묻고 답하는 광경은 가관이지 않은가? 또 무슨 놈의 메뉴에는 그렇게 많은 요리가 있는지! 아침 메뉴에는 비슷한, 두루뭉술한 요리(사실 요리라고 이름 붙이기엔 우습지만)가 수십 가지, 점심과 저녁식사에 또 수십 가지. 게다가 차와 주스 종류, 술, 소스, 디저트 종류...... 휴! 한가지를 선택하면 일사천리로 쫘악 나오는 한국의 식당 메뉴판이 그립다!

 도대체 이 많은 것이 다 있기는 한건가? 메뉴를 볼 때마다 이런 의문이 들곤 하지만 대충 어림짐작으로 음식을 시키면, 안된다는 법은 없고 거의 주문대로 나온다. 그런데 그 복잡하고 그럴싸한 이름의 요리(!)들이 식탁위에 척! 차려지면 뭐 별게 아니다. 우리를 심란하게 몰아가던 기세치곤 허무하다. 몇 가지 채소 볶은 것, 감자튀김, 닭다리 튀긴 것, 이름모를 소스를 끼얹은 물소고기...... 뭐 이런 것들이다.

 원래 네팔리들의 음식은 이렇게 복잡한 게 아니라고 한다. 피부가 하얀 서양인들이 몰려드니 그에 대응해야 하고, 레스토랑 주인장의 자긍심(!)이 상승작용을 하여 이런 복잡다단한 메뉴가 만들어진 걸게다.

 '모모'라는, 우리네 찐만두와 같은 모양의 만두는 채소를 넣은 것, 닭고기 또는 감자를 넣은 것, 물소고기, 양고기를 넣은 것이 있는데 이중 그나마 느끼하지 않는것을 먹겠답시고 채소를 넣은 것을 시키면 이게 웬만한 사람은 아차! 싶다. 왜냐하면 이 나라에는 '코리안도(고소)'라는 채소를 즐겨 넣는데, 이걸 즐기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기겁을 하기 일쑤다. '고소'는 개인적인 풍미에 의하면 '빈대 터진 냄새'를 풍기는데 이게 말 할 수 없이 우리에겐 괴롭다. 자꾸 먹다보면 익숙해지고 나중엔 오히려 즐기게 된다지만 우리는 네팔을 떠나올때까지 적응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아마 감자를 넣은 것이 그중 가장 무난할 것 같다. 우리에겐 네팔에서 먹은 음식 중엔 닭고기 맛이 가장 좋았는데 탄두리 치킨이나 프라이드 치킨 등이 한국에서는 별로 즐기진 않았지만  여기서는 입맛에 맞았다. 

 또, 네팔리들의 음식은 대체로 짠 편인데 특히 만두가 심한 것 같다.

 아무튼 여행지에서의 음식 고르기는, 특히 한국에서도 서양식 레스토랑 출입이 거의 없었던 우리 같은 인간에게는 참으로 심란한 일과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메뉴에 작은 음식사진이라도 컬러로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 있잖은가, 태국 카오산 거리의 레스토랑들이 메뉴에 일일이 사진을 넣은 것이나, 우리나라 대형 마트 식당에 가면 모형음식을 만들어 진열장안에 넣어 놓은 것 말이다. 그게 그 진열장안에서는 징그럽더니만 여기선 아쉽다.

 

 약 일주일간 카트만두와 그 주변지역을 대부분 버스와 도보로 다녔는데, 이곳의 사회 간접자본은 너무도 빈약하다. 이 나라의 왕정은 아예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하다. 마오이스트와 야당연합이 왕정을 종식시키고자 끊임없이 '들이대고'있고, 묵묵히 참고 있던 시민들도 최근에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나서서 곳곳에서 집회를 갖고 '왕정퇴치'를 외치며, 지금의 왕이 예전의 왕족을 살해하고 집권한 것이라고 믿고 있는 국민들이 대다수인 마당에...... 이러니 왕은 국민들의 기초적인 생활여건 보다는 관심사가 다른 곳에 있을 테지.

 이 나라에서는, 왕정이 물러나고 본격적인 민중주도의 체제가 된다 해도 아직은 너무나 뚜렷한 계층간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궁극적으로 지금과 별로 다를 것 없는 형편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지만......

 왕정이 정치를 틀어쥐고, 네와르족들이 경제를 움켜쥐고, 인도의 속국화(屬國化)에 가까운 경제여건 등, 글쎄...... 하긴 나는 이 나라에 어슬렁거리는 나그네에 불과하잖은가.

 그러나 거리를 다녀 보면...... 갑갑하다. 번화가 사거리에는 왕비의 생일을 맞아 왕비의 전신사진이 세로 4-5m 쯤 되는 걸개그림으로 커다랗게 걸려있고, 그 사진 앞의 단상은 갖가지 꽃으로 장식된 것이 시내 곳곳에 즐비하고, 제법 큰 식당이나 호텔에는 왕족일가의 사진이 정면에 걸려있다. 국민들의 왕족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이 별로 없다는 얘기를 들은지라 처음엔 이 사진에 대해 좀 의아해서 왜 걸어 두는지 몇 번인가 물어 보았는데(무례하게도!) 그들은 한결같이 시큰둥하게 쳐다보며 말이 없다. 우리네 군사독재시절 빅 브라더 대통령의 사진이 관공서는 물론, 온갖 벽면을 장식 했을 때 누군가 '저게 왜 저토록 많이 걸려있지?'하고 물으면 뭐, 대답할 말이 딱히 있었겠는가? 내가 물어 볼 때마다 그들은 속으로 '짜식! 뭘 물어 보냐? 니네 나라는 그런 시절 없었냐?' 이러면 뭐, 할 말이 없다.

 탐욕스런 큰 손이 이들에게 미망의 망토를 뒤집어 씌워, 보지 못하게, 생각하지 못하게, 듣지 못하게, 먹는 것 외에 딴 생각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제 이쯤에서 매연과 먼지투성이, 혼란의 카트만두를 떠나 랑탕으로 떠나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