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1)중늙은이의 히말라야 일기

운농 박중기 2013. 7. 29. 13:53

 

2월 26일  (셨다 가세요, 컁진곰파)

 

 한 밤중에 심란한 바람소리에 잠이 깼다.

 일어나 보려고 하지만 침낭이란게 워낙 불편한 물건이어서 지퍼를 내리고, 빠져 나오는 과정이 마치 나방이 허물을 벗고 나오는 형상을 해야 하므로 매번 작은 고역이다. 그렇다고 별다른 방도가 없으니......

 바깥의 바람소리가 일정하다. 우리 집 백운리의 골짜기 바람소리는 조용하다가도 갑자기 화들짝 분다든지, 전선줄을 팽팽하게 튕기는 소리가 나는가 하면 대체로 일정치 못하지만, 이 3,500m 히말라야 골짜기의 바람은 이상하게도 일정하다. 마치 콘센트에 연결된 대형 선풍기 같다.

 대체로 이곳 롯지에서는 오후 7시를 전후해 저녁식사를 하고, 잠시 다음날 일정을 확인한 뒤 8시쯤이나 9시 사이에 잠을 자야하는 분위기이므로(롯지의 손님 중 한 팀이라도 잠을 청할 경우, 방사이의 소음차단이 전혀 안되는 관계로 괜스레 삐걱대며 문을 여닫고 부스럭댈 수도 없으므로) 대개는 새벽 3시나 4시쯤에 잠이 깨기 마련이다. 젊은이들이야 꿀맛 같은 잠을 얼마든지 즐기겠지만 우리 같은 중늙은이들이야 말 할 것도 없다. 그때부턴 침낭 속에서 밖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뭉그적거리거나 두고 온 집 생각, 이웃에 맡기고 온 강아지 생각 등 별의별 생각들이 단편영화처럼 상영되고, 심지어는 엉뚱한 걱정거리를 만들어 내어 괜스레 뒤척이기도 한다.

 2004년 10월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 때와 밤은 다르지 않다. 그곳은 바람은 없었지만...... 다만 그 루트는 워낙 트래커들이 많은 편이라 현지인과 트래커들 간의 친밀감이나, 대자연속에서 자연적으로 우러나는 인간적 유대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장삿속을 공연히 내비치는 네팔리도 많지만, 이곳 랑탕 히말 지역은 아주 드문 트래커들 때문인지 오히려 그런 친밀감과 유대감을 많이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사실 안나푸르나 지역 트래킹 때는 일행이 둘 있었던 탓도 있어 현지인들과의 짧은 대화마저도 거의 없었지만 이번은 다르다. 우선 이곳은 그곳 보다 훨씬 사람들이 순박하고, 특히 90%가 티베탄이어서 우리와 거의 비슷한 그들의 용모에 쉽게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껴서인 것 같다.

 

 이곳 티베탄들의 부엌구조는 정말 재미있고 멋있다. 그렇지만 화력이 일정치 않고, 불구멍수가 적으므로 한꺼번에 들이닥친 많은 손님의 경우 음식조리에 걸리는 시간이 상당하다. 또 이들은 손님이 아무리 많다해도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짓기는 하지만 결코 서두르지도 않기 때문에 우리네 처럼 수십개의 가스불판을 두고 영업하는 것과 비교할순 없다.

 그래서 시설이 비교적 좋아 보이고 트래커들이 많이 몰리는 인기있는 롯지에 여장을 푼다면 저녁식사가 많이 늦어질 수 있고, 아침 출발 또한 뜻대로 되지 않을 듯 싶다. 그래서 일정상 여유가 없을 경우엔, 가능한 손님이 없어 보이는 롯지에 여장을 푸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듯 하다. 왜냐하면 롯지의 '시설의 질'이라는 것이 트래킹 루트의 어느 마을, 어느 롯지나 거의 대동소이하며, 음식의 맛이나 질 또한 거의 같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어려운 여건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숙소에 골고루 묵어 주어 조금이라도 고루 보탬이 되게 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까닭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양인들과는 달리 동양인들은 끼리끼리 뭉치는 것 같다.

 라마호텔의 한 롯지에는 일본인 조리사가 있다고 가이드북에 기재되어 있는데, 왜 일본인 조리사가 이 히말라야의 롯지에 있는지 알 길은 없고 확인해 보지도 않았지만 그곳에 일본인들이 다수 묵고 있었고, 주방의 굴뚝엔 유달리 많은 연기가 부산하게 피어오르고 있는 것을 봤다.

 

 며칠 동안의 경험이지만, 서양인들은 취침 전에 거의 씻지를 않는 것 같았다. 샤워는 물론, 가벼운 손수건 한 장 세탁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세수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본격적인 산행에서는 뭐 그렇게 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고, 불필요한 법석을 떨지 않겠다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름철 산행이라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아무튼 헐리우드 영화에서 샤워하는 장면을 수없이 보여 주던 그들이지만 2004년의 안나푸르나에서나 지금의 랑탕 히말에서 노랑머리의 외국인들이 샤워장을 들락거리거나 쭈그리고 앉아 타올 한 장 세탁하는 것을 보긴 힘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서양인의 목욕 패턴까지 논하고 있다니 어지간히 이 새벽이 지겨운가 보다. 어서 동이 터 이 아름다운 골짜기를 봐야 할 텐데......

 

 랑탕마을(Langtang, 3,330m)을 오전 8시 50분에 출발, 컁진곰파에 오후 3시 50분에 도착했다. 컁진곰파는 3,730m, 랑탕마을의 3,330m에서 400m 정도 고도를 올렸는데 고소증세로 약간의 두통이 있었지만 심하진 않다.

 타루초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마을이 가까워짐을 알았다.

 랑탕 마을에서 컁진곰파 까지는 계곡 옆의 개활지를 주로 걷는 코스였는데 정면에는 캉첸포(Ganchenpo, 6,387m)의 널찍하고 새하얀 봉우리가 얼굴을 내밀었다가 감추고 하면서 새파란 하늘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곤 한다.

 이곳의 풍경을 표현할 땐 참 단어의 선택이 난감한데, 거대, 장대, 광활, 화려, 수려, 신비감 등등의 수식어가 모두 동원되어도 모자랄만큼 아름답다.

 랑탕Ⅱ(Langtang Ⅱ, 6,561m)는 하얀 봉우리 끝에 흰 구름을 흩날리고 있고, 랑탕리룽(Langtang Lirung, 7,225m)은 흰머리 독수리 같은 봉우리가 서쪽을 노려보고 있으며, 리룽 빙하(Lirung Glacier)는 거대한 산자락을 훑고 내려 쏟은 채 굳어있다.

 동쪽으로는 캉첸포가 두 팔을 펼쳐 굽어보고 있고, 북동쪽에는 컁진리(Kyangjin Ri, 4,550)가 작은(!) 봉우리로 솟아있다. 아무튼 컁진곰파는 눈 덮인 고봉(高峰)들 사이 꽤 넓은 부지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도중엔 말을 타고 다니는 티베탄들이 꽤 있었는데, 그들의 표정엔 자긍심이 어려 있다.

 '옴마니반메흠'을 새긴 돌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고 우리는 그 왼쪽을, 내려오는 이는 오른쪽을 걸었다. 스투파를 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이 상식이란 걸 의식해서다.

 우리는 고소적응 겸 오후를 쉬기로 했다.

 

 포터 치린이 안내한 롯지는 무척 깨끗하다. 이층의 방은 나무로 만들어졌고, 시트와 베게도 깨끗하다. 문에는 누군가 작은 태극마크를 그려 두었고, 벽과 천정의 들보에 한국 여자의 이름이 씌어 있다.

 이 롯지의 주인은 '뺀질이'라고 불렸는데, 카트만두의 민박집 주인장이 이 집을 추천한 것으로 보아 한국인들이 많이들 다녀 간 모양이고, 아마 이 집 주인이 그렇게 불렸던 것 같은데 어째 좀 별명이 볼썽사납다.

 아무튼 '뺀질이'는 이 집을 책임지고 있는 그의 부인 '양진'에게 이 롯지를 맡기고 2년 전 한국으로 들어가 옷 만드는 공장에 취직해서 돈을 벌고 있다고 하며, '양진'은 남편이 보내온 사진첩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 친구는 산골짜기에 사는 나도 아직 타 보지 못한 KTX를 타고 이곳저곳 여행한 모양으로 사진이 한 가득이다.

 언제쯤 귀국할 거냐고 물으니 '아마 5년 후 쯤'이란다. 내가 '양진'에게 '헉! 5년이나 독수공방!' 하니 치린에게 '독수공방'이 뭐냐고 묻는다. 치린이 알리가 없지. 아무리 자기 주인장이 한국인이라 해도 그에게 이 오묘한 낱말의 뜻을 가르쳐 주었을리는 없지. 나 역시 이 오묘한 말의 뜻을 그들에게 설명하기란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이다.

 "5년 더 문제 없겠어?" 하니 양진은,

 "노 프러블럼." 이란다.

 이 롯지는 '뺀질이'의 어린 남동생이 형수와 둘이서 꾸려 나가고 있다고 한다.

 나중에 치린에게 물어서 들은 얘기로 '뺀질이'라는 양진 남편의 별명은 한국어의 그 거시기한 뜻이 아니고, 어감이 비슷한 이름이 약간 코믹하게 변형되어 그렇게 불리고 있다고 했다.

 

 치린과 어설픈 영어로 대화를 했는데(그는 불교도이다)

 "이 나라에는 종교가 문제인 것 같다. 그리고 당신네 왕(王)도." 나는 주제넘게도 그들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고 만다. 그렇지만 치린은 별 대수롭지 않게 즉시 대꾸했다.

 "그렇다. 우리 왕은 '인 마이 포켓'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난하다. 그리고 종교도 문제가 많다."

 "너희 나라의 어떤 종교 말이냐? 다른 나라에도 너희들 종교인 힌두와 불교가 있지만 말이다."

 "힌두가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사실 내게도 그렇게 보인다. 마오이스트는 어떤가?"

 "그 놈이 그 놈이다. 쎄임 쎔."

 이런 얘기였다. 이들은 이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대강의 줄기를 알고 있다.그렇지만 저 앞의 캉첸포처럼 왕정(王政)은 아직까지는 끄떡없다. 나그네인 우리 눈에도 최근엔 불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쁜 자식들!"

 옆에서 아내가 치린의 찢어진 바지를 기워주며 누구를 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툭 내뱉는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치린, 아내, 이집 주인, 이집 주인 시동생, 이렇게 앉아 손짓, 몸짓으로 어설픈 환담을 나눈다.

 치린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했다.

 손, 발, 배낭, 손가락,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등등......

 제일 어려워하는 건 화요일의 '화', 이게 발음이 영 어렵고 그들의 언어로 표기하기도 어려운가 보다.

 그는 몇몇 짓궂은 한국인에게 요상한 몇 마디 말을 배워 우리를 웃겼는데, 예를 들어 '셨다 가세요'(쉬었다 가세요)이다. 그런 말 쓰지 말라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한다. 설명하기가 난감해서, 그건 정숙치 못한 여인네들이 남자를 유혹할 때 쓰는 말이라고 하자 '쉬었다 가라는데' 그게 왜 그런 뜻이냐고 반문한다. 틀림없이 이 친구는 이 말의 뜻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친구는 내가 설명하도록 유도하면서 즐기고 있는 게다.

 다시 진땀을 흘리며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하고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누가 그런 요상한 말을 가르쳐 줬지? 아무튼 짓궂은 사람들이야.

 치린은 인도에서 12년 동안 전기기술 교육 등을 받았다고 하는데 대학을 다니다가 집안의 형편이 유학비를 계속 대 줄 수 없어 학업을 그만두고 네팔로 돌아와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네팔리 답지 않은 얼굴인데, 한국의 어느 대학 교정에서 마주친다면 평범한 한국의 대학생으로 볼 만한 얼굴이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는 일이 없고 언제나 명랑하고, 가끔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장난을 걸어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항상 우리에게 예의를 갖춰 대한다. 우리는 운 좋게도 아주 괜찮은 포터와 함께 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 것이다.

 해외에서 우리와 이번까지 세번째 인연을 가진 민박집 주인장의 배려라는 걸 모르진 않는다. 

 저녁 늦게 까지 아내와 둘이서 그의 한국어 선생 노릇을 하고 9시쯤 잠자리에 들었으나 집 뒤의 랑탕리룽 쪽에서 폭포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와 그 소리에 한참 귀를 기울이다가 잠이 들었다.

 

《타루초 Tarchog》티베트 원주민이 사는 마을이나 집, 사원등에 있는 화려한 색의 깃발. 경문이 씌여 있고 티베트인들은 여기에 소원을 빈다. 신년에 색 바랜 타루초를 교체한다. 우리네 만국기 처럼 걸어 두어 바람에 날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