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2)중늙은이의 히말라야 일기

운농 박중기 2013. 7. 29. 09:33

2월 16일 (가덕만도(加德滿都))

 

 홍콩공항에 도착하여 네팔행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환승지역에서 기다렸다.  언제쯤 우리나라에서 네팔까지 직항로(直航路)가 생길까?

 우리들 건너편엔 귀국길에 오르려는 한국의 아줌마, 아저씨 한무리가 대기좌석 두 줄을 차지하고 있다. 사과, 밀감, 자두가 든 봉투를 우리에게 내민다. 아프리카에 다녀오는 길인데 그곳 농장에서 과일을 너무 많이 주는 바람에 먹다먹다 남긴 거라고 한다.

 사과는 우리나라 것과 똑 같이 생겼다. 향이 진한 것이 맛이 괜찮다.

 우리 사람들이 아프리카까지 단체여행을 하다니 참 세월 많이 달라졌다. 우리의 행선지와 체류기간을 묻는다. 40여 일이라고 하니 좀 놀라는 표정이다. '둘이서 그렇게나 길게요?' 한다. 둘이서는 그렇게 긴 여행이면 곤란한건가? 잘 모르겠다.

 

 홍콩공항은 매번 볼 때마다 좀 칙칙하다. 바닥이 회색 계열에 검은색 체크무늬라 그런 것 같은데, 인공목(人工木) 으로 만든 야자수도 때가 많이 앉아 칙칙함을 더한다. 게다가 공항 근무자들의 복장은 적어도 내 눈엔 위압적이다. 짙은 감청색 복장에 요란한 견장과 절제되지 않은 은색 줄을 많이 넣은 것이 마치 검은 차에 요란한 크롬도금 장식을 한 것 같다.

 여기서 4시간가량 기다려야 한다니 끔찍하다. 환승승객을 위한 배려는 없다.

 이상하게도 홍콩에 올때마다(두 번 다 환승을 위한) 날씨가 우중충 해서 공항 인근의 아파트를 비롯한 건물들이 너무 재미없어 보인다. 그래도 쇼핑의 천국, 외식의 천국이라고 들었는데 두 번의 방문으로 내 머릿속에는 이미 '우중충한 중국인의 나라'로 굳어 버렸다.

 

 드디어 발권을 하나보다. 한쪽 구석, 초라하게 마련되어 있는 로얄 네팔 항공에서 탑승권을 받고,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공항내 모노레일을 타고 이동해 게이트 근처에서 국수를 먹었다.

 쇠고기 동그랗게 뭉친 것 3개에 면과 육수, 파 등이 들어갔는데 맛이 괜찮다. 우리 돈으로 4천 원 정도인데 한국에서는 이 돈으로 이런 국수를 못 먹을 것 같다. 이들이 4천 원을 내고 우리네 공항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동을 먹었다, '짜식들! 이게 4천 원짜리라고?' 할게다.

 그나저나 공항 면세점에서 풍겨대는 판촉용 향수냄새는 여전히 끔찍하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향수로 세수를 하나?

 네팔행 비행기 타러 가자.

 

카트만두행 비행기는 '로얄'이 무색하게 한 시간 연발이란다. 데스크에 있는 빨간 유니폼의 노처녀(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에게

 "한 시간 늦는 거야?" 하니

 "그래, 한 시간!" 이유 같은 건 설명해 주지 않는다. '늘 그런것 아냐! 몰랐니?' 하는 표정이다.

 기다리는 승객은 대부분 홍콩을 왕래하는 네팔리들 같은데 연착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도무지 초조한 기색도 없고, 표정도 달라지지 않는다. 워낙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그냥 '일상'으로 여기고 있는 듯 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네팔항공의 연발, 연착율은 60 - 70% 가까이라고 한다. 그러니 저리도 덤덤할 수밖에.

 

 재미있는 건 '카트만두'가 한자로는 '가덕만도(加德滿都)로 표기 돼 있다는 점이다. 그럴 듯 하다.

 

 카트만두를 향해 3시간째 비행중.

 1시간 늦다고 해놓고 2시간을 지연 출발 했으니 그만큼 연착 하겠지. 우리가 묵기로 한 민박집 주인장은 지연 도착사실을 알고 있을까? 마중 나온다고 했는데 우리의 연착으로 그렇지 못한다면 택시를 타야 할 터....... 뭐라고 해야 한다더라? 음 ...... '짜르칼 딜리버잘 띠러 자누스(짜르칼 딜리 바자르로 가 주세요)' 그렇지!

 

 창밖은 칠흑, 기내(機內)는 시골 버스 안. 웬 애들이 이렇게 많이들 탔을까? 여기 저기 소란스럽다. 아이들은 어디 가나 똑같나보다. 네팔리들은 소란을 피우는 애들을 애써 말리지도 않고 통로를 왔다 갔다 하며 수시로 정담을 나눈다. 마치 대가족의 전세기 같다. 승무원도 그것이 일상인 듯 별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장날을 맞은 함양(咸陽) 완행버스 속이다.

 그러나 네팔리들의 소란은 이상하게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우리네보다 저음이어서 그런 것 같기는 하지만, 분명 많은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도 그것이 거슬리지 않는 사실이 희한하다.

 뭐, 이 정도라면 기분을 상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같은 상황의 우리네라면 어떨까? 상상 만으로도 끔찍하다.

 

 멀리 검은 바다 장막 끝에 뇌전(雷電)이 번쩍인다. 한참 아래로 보이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어지간히 높이 있는가 보다. 백운리 골짝에서 여름날 뇌성벽력에 신경이 곤두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뇌전은 저렇게도 하찮은 점(點) 하나로 번쩍일 뿐인데 나는 내 머리 위 온세상이 뇌성벽력으로 가득 찼다고 여겼으니 말이다.

 이제 여름날 뇌성이 머리 위를 쿵쾅거리며 밟고 다닐 때 이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던 뇌전을 기억하자.

 

 카트만두는 이제 한 시간 남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