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 (월) 베네치아
베네치아에 와서 산 마르코 성당과 광장을 한번만 본다는건 말도 안된다. 그래서 종탑은 남겨
두었었다.
오전은 컨디션 조절을 위해 쉬고 점심을 챙겨 먹은뒤 일단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향했다.
방향이 헷갈려 몇번을 헤매고, 바포레토를 두 번이나 무임승차(!) 한 끝에 'Academia' 선착장
에서 내려 구겐하임을 찾았다.
재작년에 들러지 못해 아쉬워 했던터라 이번엔 시간 여유도 있고해서 가 보기로 했다.
바포레토 무임승차를 일부러 한게 아니라 도무지 티켓 판매소를 찾을수 없어서 였다.
선착장마다 티켓 판매소가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어서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처음부터 바포레토를 탈 계획을 세우고 티켓을 횟수에 맞게 구입하면 좋지만, 본 섬안은 도보
이외엔 움직일 방법이 없으므로 길을 한번 헤매면 엉뚱한 곳에 있기 십상이어서 미리 계획하고
어느 정류장에서 티켓을 몇장 구입한다는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바포레토 선착장이 있는 운하를 낀 길도 계속 연결되어 있는게 아니라서 난데없이 골목길을 헤매다
보면 운하가 나와서 되돌아 나가 다시 방향을 잡고 걸어야 하므로 정말 곤혹스럽다.
더구나 이 이탈리아의 불친절은 길이 끊어진 골목에 아무런 표시가 없으므로 걸어서 끝까지 가야만
끊어진 길인지, 이어진 길인지를 알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예 '로마광장', '리알토 다리', '산마르코 광장'이라고 건물에 표시된 길 만을
다닌다.
물론 방향이 표시된 길 주변에만 레스토랑, 선물가게, 카페, 젤라또 가게 등이 있다.
그러므로 호기심 많은 여행객이 사람들이 몰려 다니는 '표시된 길' 외의 길을 탐방하고 싶으면
이탈리아의 불친절을 호되게 당해야 한다.
나 역시 '호기심 지독히 많은 여행자'이므로 그런 혹독한 불친절을 신물나게 당해야 했다.
그렇다고 나만 그런 불친절을 당하는것은 아니다. 동양의 이 '지독하게 호기심 많은 중늙은이'외에
많은 '호기심 많은 여행객들'이 골목에서 헤매다 낭패를 당하고 있는 모습을 숱하게 봐야 한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엄청 비싼 입장료에 비해 작품수는 어이없이 적고, '저택'이었다는 집에 개인
콜렉션 작품을 전시한 거라서 관람여건이 형편없어 관람객이 많으면 작품을 오롯이 감상할 수가
없다.
힘들여 찾아 간 미술관에서 30분도 채 되지 않아 나왔는데 꼭 사기 당한 기분이다.
어떤 장르의 작품이든 찬찬히 작품을 보는 내 취향에, 미술관에 들러 30분의 관람시간을 가진것은
기록적이라 할 수 있겠다.
발리의 우붓에서 그 많은 미술관을 들릴때, 개인 갤러리라 해도 그렇게 짧은 시간에 나오지는 않았다.
더구나 그날의 구겐하임은 유치원생, 또는 중고등학생들을 인솔한 인솔 교사의 낭낭한 목소리와
작품앞의 자리 점유로 관람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다시 찾은 산 마르코 광장은 화사한 날씨탓에 더 화려하게 보였다.
광장의 종탑에 올라 내려다 본 베네치아는 정말 굉장히 아름답다!
특히, 남쪽에서 운하의 끝과 작은 섬 속의 집들, 떠다니는 배들로 그 아름다움은 여태껏 높은 탑 위에서
본 풍광 중에 단연 으뜸이다.
바티칸의 쿠폴라 위에서 내려다 본 성 베드로 광장보다 더 아름답다.
바다가 포함된 광경이라 더 아름답게 보였던 것 같다. 이 최고의 풍광은 아마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할때
까지 찾긴 어려울 것이 틀림없다.
자연과 인공물이 이토록 조화를 이룬곳이 또 있을까?
히말라야 트래킹을 세번 하면서 그 장대한 자연의 풍광에 전율이 일었지만, 바다 만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대역사를 이토록 아름답게 조망해 보긴 처음이다.
아마 앞으로도 이 종탑에서의 멋진 풍광을 능가하는 어떤 인공물도 보긴 어려울 것 같다.
그 위에서 황혼을 보고 싶었지만 바람이 차가워 반시간 가량 머문 종탑에서 내려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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