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두번째 이탈리아, 그리고 부다페스트(8)

운농 박중기 2018. 5. 31. 21:10

4월 12일 (목) 로마, 바티칸


2년만에 다시 찾은 성 베드로 광장(Piazza San Pietro)은 예전과 다름 없었다.

다만 2년전에는 행사를 위해 무대장치와 수많은 의자들이 광장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말끔하게 치워져 있어서 '광장'답다.

성 베드로 광장을 볼때마다 느끼는건 이 광장을 설계한 베르니니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광장은 베드로가 예수에게서 받았다는 천국의 열쇠 형상을 했다지만, 그것은 성당의 꼭대기

쿠폴라(Cupola)에 올라서 볼때의 얘기다.

그런 해석 보다는 '팔을 벌려 사람들을 감싸 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더 그럴듯하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원형 주랑에 284개의 기둥이 도열해 있는 광경은 이 광장에 특별한 감흥을 준다.

그것은 '장엄함'과 '경건함' 그리고 '포용'의 느낌이기도 하다.

정말 멋진 광장이다.


이상하게도 로마에 올때마다 날씨가 좋질 않다.

비가 올거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잔뜩 흐리기만 할뿐, 광장을 둘러 선 성당 입성 대기줄은 아칩부터

장사진이다.

8시가 못되어 줄을 섰지만 이미 줄의 길이는 500미터가 넘는다.

쿠폴라에 올라 다시 한번 성 베드로 광장과 로마 시내를 굽어 보고 싶어서 줄을 선지 30여분만에 입장해

바로 쿠폴라행 티켓을 구입해서 계단을 올랐다.

가파르고 끝없이 이어진 계단에서 숨을 몰아쉬며 멈췄을때 돔의 가장자리를 개방한 문이 눈에 띄였다.

돔의 가장자리를 빙 둘러선 좁은 통로에는 촘촘한 그물형태의 방호망이 있었지만 그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성 베드로 성당의 광경은 정말 압권이다.

어떻게 이런 어마어마한 건축물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이 어마어마한 건축물을 설계 했을까?

어떻게 이 어마어마한 건축물을 지었을까?

2년전에 했던 말이 입 속에서 다시 맴돈다.

계단을 오르는 벽면에는 역대 교황들의 이름들이 대리석 판에 새겨져 있다.

교황의 이름보다는 이 건물의 설계자와 감독자, 예술품의 장인들, 석공들과 목수, 금속 공예자, 건축자재

운반자, 인부들의 이름이 있었다면 좋았겠다.

이들의 이름은 이곳의 벽면을 장식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쿠폴라를 향한 계단은 더 가팔라지고 좁아졌다.

숨이 턱에 찰때 쯤 쿠폴라가 나타나고 로마 시가지가 영화화면 처럼 펼쳐졌다.

쿠폴라의 동선을 따라 몇걸음 옮기니 성 베드로 광장이 나타나며 그 장엄한 풍광이 다시금 압도한다.

산 탄젤로 성(Castel Sant'Angelo) 가까이 이어진 일직선의 도로와 열쇠 모양의 열주들이 근사하게 펼쳐진

광경은 세상 어느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멋진 풍광이다. 오직 이 쿠폴라에서만 볼 수 있는......

이 성당의 건축을 주도한 니콜라우스5세와 브라만테, 베르니니,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비뇰라, 폰타나,

마데르노에게 경탄을!

하지만 그 당시 성당 건축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면죄부를 발급했다 하니 치명적 결함이다.

그래서 결국엔 종교개혁을 부르는 신호탄이 되었고......

하지만 예술품으로서의 이 건축물은 참 어마어마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성당의 쿠폴라에서 한동안 넋을 잃고 눈 아래 펼쳐진 교황청 정원들과 로마 시내를

살폈다. 로마 시내는 지평선이 보이도록 넓다.

지저분한 로마의 지하철과 뒷골목은 묻혀 버리고 너무나 아름다운 로마 시내가 꿈결처럼 펼쳐진 광경을

30여분 살피다가 계단을 걸어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들어서다 오른쪽에 예의 그 피에타 상(Pieta)이 눈에 들어왔다. 미켈란젤로가 24살때 조각한 것이라 하니

믿기지 않는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듯한 이 조각상은 펜으로 한번 그려본 적도 있지만 실물을 보고 있으면 눈을 떼기가

어렵다.

죽은 예수를 내려다 보는 성모 마리아의 시선이 슬픔과 비탄 보다는 관조에 가깝다.

'너는 반석이며 이 반석위에 나의 성당을 세우고 너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노라'는 라틴어가 돔의 벽면에

새겨져 있다.


두번째 본 성 베드로 성당과 광장은 처음 볼때와 똑 같이 굉장한 감동을 주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광장에는 대기줄이 광장 전체를 한바퀴 돌고도 긴 꼬리가 광장 중앙으로 뻗어있었다.

저 사람들은 언제 들어가지?

하지만 저렇게 몇 시간씩 기다리다 들어가서 그들은 충분히 보상 받을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적, 건축학적 개념에서 벗어 난다면, 아니 비판적 시각으로 성 베드로 성당과 광장을 본다면

부정적 시각이 숱하게 존재할 수도 있다.

면죄부를 팔아 공사비를 충당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이런 대규모 건축공사를 하려면 오랜 기간 엄청난

자금이 소요 되었을테고, 그기에 동원된 인원도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었을텐데 그런 과정에서 힘없는

백성들에 대한 수탈은 없었을까?

또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종교라는 문화(!)에 저런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는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하는 것이다.

당시의 권력자인 교황(지금의 교황과는 비교도 안되는)이 그들의 성을 쌓기 위해 종교라는 허울을 쓰고

약자들을 수탈한 것을 아닐까?

화려하고 정교하기 이를데 없는 이 장엄한 건축물이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아니, 당시의 관점일 수도

있겠다) 말 할수없을 지경으로 부르조아적 행위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논란을 뒤로 할만큼 성 베드로 성당과 광장은 너무나 훌륭하고 아름답다. 미적 관점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