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두번째 이탈리아, 그리고 부다페스트(4)

운농 박중기 2018. 5. 30. 22:36

4월 8일 (일) 로마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언덕은 여전히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정교하고 능숙한, 그리고 치밀한 솜씨는 이들이 얼마나 꼼꼼하고 계획적인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짐작케한다.

또한 그와 더불어 굉장한 허세와 오만, 그리고 장대한 스케일을 가진 민족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카라칼라 욕장(Terme di Caracalla)의 웅대하고 잘 짜여진 구조물들은 아마도 그들이 제압한

속국과 주변국 사신들, 황제를 알현하러 온 이들의 기를 죽이기에 딱 알맞았을 것이다.

이들은 이 어마어마한 규모에 '아! 우리는 로마의 상대가 될 수 없어, 이들의 그늘에서 편한

밥 먹는게 나아!' 하고 무릎꿇게 했을 것이다.

로마에 왔을때 이 카라칼라 욕장을 빼놓지 않고 다시 보고 싶었다.

이들이 노린 '기죽임, 그리고 허세'를 느끼고 싶었다. 기분좋게 기죽고, 기분좋게 허세에 눌리고  

싶었다. 카라칼라 욕장은 그토록 멋있다. 1,800년전에 지은 이 근사한 목욕탕은 물론 목욕탕의 

기능만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종합 위락장'의 기능을 한 듯하다.

사교장, 야외 수영장, 운동실, 도서관, 예술 전시장, 정원등이 갖추어져 있었다고 한다.

내 경우, 로마에서 가장 멋진 건축물은 판테온과 카라칼라 욕장이었다.

카라칼라 황제는 그 가득한 허세로 웅대하고 멋진 건축물을 갖길 원했던거다.


그런데 조상들의 이런 면이 이 시대의 이탈리아인들에겐 없는것 같다.

이들은 조상덕에 얼마간 득을 보고 있지만 조상들에게 고마워 하는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조상들을

모욕주고 있는것 같다.

오늘은 일요일, 날을 잘못 잡아 포로 로마노와 콜로세움을 갔다쳐도 이들은 한마디로 '*새끼들!'

이라고 욕 할만하다.

베네치아 광장에서 콜로세움 뒤까지 주 도로 양 옆으로 바리케이트를 쳐 놓았고, 포로 로마노와 콜로세움,

팔라티노 언덕에 당도하는 지하철 역을 아예 패쇄해 놓았다. 그래서 이 구간은 길을 건너지도 못해

거의 4Km 정도를 돌아서 건너게 해 두었다. 도대체 영문을 모른채 수많은 현지인들과 세계 각국 여행객

들이 역을 지나치는 지하철과 바리케이트 때문에 한시간 이상을 걸어서 들어와야 했을테고, 점심식사를

하러 나가야 하는 고생을 해야 했다.

더구나 수십만명이 들끓는 이 일대에는 생수 한 통을 살 수 있는 가게도 없고, 화장실이라고는 콜로세움

안에 한군데 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콜로세움 안에는 딱 한군데 땅에 박아놓은 수도관에서 졸졸거리며 나오는 수도꼭지 하나 뿐이다.

도대체 왜 이런 바리케이트를 쳐 놓았나를 나중에 보니 시민 마라톤 대회를 하고 있는 중이라 한다.

참 황당했다. 로마 시내에서 가장 번잡하고, 온갖 유적이 몰려 있으며,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가장

대규모로 움직이는 이곳에서 시민 마라톤 대회를 해야 할까?

로마 시내는 엄청나게 넓은 곳이다. 성 베드로 성당의 쿠폴라에 올라서 보면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다. 그런데 이곳에 수 킬로미터의 주 도로에 바리케이트를 쳐 놓고 시민들을 의한 대회를 하고 있다는게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완주하는 모든 이에게 메달을 걸어주고 있는 그들을 참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는 우리네 행사를 이 유서 깊은 곳에서 하고 싶어서 할 뿐이야. 너희는 이곳에 온 나그네일 뿐이야,

우리가 어디서 무얼 하든 너희가 상관할 바 아니야.  수없이 몰려오는 너희들에게 신물이 나서 이곳에

바리케이트를 쳐 놓고 심통을 부리는 중이야! 이런게 아니꼬우면 다신 오지마!'

이러면...... 뭐 할 말 없다.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언덕이 한 지대에 몰려 있어서 그런지 이 세 곳을 관람하려는 이들에게

티켓을 하나로 묶어 파는 판매소가 두 군데에 있다.

하나는 콜로세움 안, 하나는 콜로세움 입장장 입구 건너편에 있는 야외 판매소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티켓을 사려고 장사진을 치고 있어, 별 생각없이 야외 판매소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한시간 넘게 기다리다 차례가 되어 창구 앞에 가서 돈을 내미니 아무 말없이 돈을 밀어내 버린다.

왜냐고 물으니 현금은 안되고 신용카드만 된단다. 왜 현금이 안되냐고 물으니 창구 유리창에 A4용지

크기에 '현금은 안되며 신용카드만 사용 가능' 이라고 써있다.

화가 치밀어 판매원에게 항의했지만 무표정이다.

할수없이 그곳에서 밀려나와 신용카드만 된다는 안내를 혹 내가 보지 못했나 해서 줄을 선 전체를 찬찬히 

끝까지 살폈으나 어디에도 그런 안내는 없다.

신용카드를 숙소 개인금고에 넣어두고 온 내 잘못을 탓할 수밖에.

할 수없이 콜로세움안의 판매소에 줄을 섰다. 역시 한시간 가량 기다려 창구 앞에 가니 현금과 신용카드

모두 가능하단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늘막 하나 없는 곳에 몇시간을 기다리다 창구 앞에서 허탈해 했을까.

콜로세움 입구 앞에는 단체 관광객들과 개별 여행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지만 매표소에서 표를 파는 

직원만 있을뿐 안내하는 직원도 없고 변변한 표시판 하나 없다.

한마디로 '너희들이 잘 알아보고 알아서 해라!'는 식이다. 

도대체 이 도시의 시장(市長)이라는 작자도 있을테고, 이런 유적지를 관리하는 관리도 있을텐데......

어디에도 입장객들을 위한 안내자는 없고 이정표도 없다.

어이가 없다못해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이탈리아의 정치인들이 부패가 심하고 무능해 국민들의 지탄을 많이 받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고,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등의 도시는 관광객들의 범람으로 일반 국민들이 관광객 피로감이 많다고 하지만

그들로 인해 생계를 유지하는 국민들도 엄청 많을테고, 관광수입으로 인한 재정도 적지 않을텐데 이런

식의 푸대접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행정력 부재는 관광객 피로감과는 무관한 얘기일뿐더러, 관광 수입으로 인한 재정을 관광을 위한

인프라에 전혀 투입하지 않는 현상과는 별도의 얘기인 것이다.

콜로세움 근처의 넓은 공터에 벤치라곤 하나 없어 여행객들이 담벼락에 기대앉아 쉬고 있는 광경을

보며 괜한 부화가 치밀어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유적을 가진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한심한 서비스를 하는 나라, 이탈리아다.

2016년에도 느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전보다 더 엉망이 되고 있는것 같다.

이 나라의 정서와 관습 등이 우리네와 다르다는것을 감안 하더라도 이건 너무 지나치다.


이 모든 불친절과 한심한 행정력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대단하다.

포로 로마노는 경탄을 금할 수없고, 콜로세움은 역시 장엄하다. 카라칼라 욕장은 웅장하고 나보나 

광장은 아름답다.

그러나 이런 훌륭함은 이들의 조상들이고, 지금의 이탈리아인은 아니다.

지금의 로마 시청의 시장과 공무원들은 *자식들이다!


한인 민박 주인에게 이런 너절한 얘기를 했더니 그 역시 백번 공감한다.

많은 여행객들이 그런 불평을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탈리아인들은 남녀 할것 없이 바람둥이인데다 일하기를 싫어해서 조상들이 남긴

건물등을 임차해서 배짱이 같은 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이 부지기수고, 굳은 일이나 어려운 일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신 한다'고 했다.

공무원들의 나태와 부패, 자기본위의 행동들은 관광, 여행분야 뿐만 아니라 각종 민원 해결 창구나

대민분야에도 마찬가지여서 불만이 팽배한 상태라 한인 민박 주인의 표현대로 하자면 '폭발이

한번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세계 각 국을 전부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여태껏 경험한 나라들 중에서 가장 최악의 나라중 하나

라는 것은 분명하다.

대단한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 중에서 이런 한심한 행정력을 가진 나라는 경험중에서는 네팔이

좀 심했던것 같고 더 한심한 곳은 이곳 로마다.

가장 좋았던 나라? 역시 뉴질랜드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