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 낯설지 않은 타이베이

운농 박중기 2017. 12. 31. 19:24

2017. 12. 14 (함양 - 부산 - 타이베이)


새벽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어 차를 몰고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올 들어 가장 추운 영하 12도. 하필 오늘 이렇게 추운걸까.

다행히 눈이 오지 않아 새벽길이 미끄럽지 않을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2시간여를 달려 공항 인근 사설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국제선 탑승장에 도착했다.

2시간 20여분을 날아 타이베이 타오위안 공항에 내려 앉았다.

딸이 타이베이에 살고 있어 며칠전 타이베이에 먼저 와 있는 함선생에게 카톡으로 타이베이의

날씨를 물어보니 비가 오며, 춥고 습기가 있다고 해서 껴입고 간 옷이 더워 땀이 삐질거리고 나와

화장실에 가서 가벼운 옷으로 갈아 입었다.

MRT(타이베이의 지하철, 공항철도), 버스, 기차 등을 탈 수 있는 이지카드를 사서 충전한 다음

공항 MRT를 타고 타이베이 중앙역(台北車站)으로 향했다.

타이베이 중앙역의 지하는 엄청난 넓이여서 예약한 숙소가 있는 스린(士林)역 쪽으로 가는

레드라인 지하철 까지는 지하도로 약 15분쯤 걸어야 했다.

금년 3월에 개통했다는 공항철도가 기존에 있던 지하철과 연결되면서 지하도가 더 넓어진게 아닐까

생각했다.

레드라인 지하철을 타고 단수이(淡水) 방향으로 가다 스린역에 내렸다.

지하철은 우리네 부산 지하철 시스템과 같아서 뭐 헷갈리거나 낯설지 않고 처음부터 너무 익숙하다.

스린역에 내려 숙소 주소를 꺼내들고 70세쯤 의 노인에게 보여주니 단번에 자기뒤를 따라오라며

앞장선다.

5분쯤 걷는 동안 노인은 근처의 학교며 은행등을 가리키며 신명나게 설명했다.(영어반, 중국어 반)

마침내 예약한 숙소인 페이퍼선(papersun)호텔앞에 이르자 작별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친절한 노인으로 인해 타이베이 첫날이 기분좋게 시작됐다.

타이베이 사람들이 친절하다고 들었지만 이 정도일줄이야.

예약한 페이퍼선 호텔은 맘에 드는 숙소다.

외양은 수수하고 낡은 보통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깔끔하고 심플하면서도 시각적으로 편안했고,

여행객들에게 필요한 사소한 것들이 잘 갖춰진 영리한(!) 숙소였다.

1층 로비에는 책장이 가득한 휴게실을 갖춰 호텔이라기 보다는 사무실 같은 분위기다.

방이 넓거나 호사스런것은 전혀 아니고 단아하고 깔끔한 디자인이어서 무척 마음에 든다.

뉴질랜드의 비싼 모텔에서 경험했던 숙박객을 위한 훌륭한 구성이래 가장 훌륭한 숙소라고 생각

한다.

한국의 숙소에 비해 결코 싸지는 않지만 이런 훌륭한 구성은 누구나 호감을 가질만 하다.

처음 타이베이의 숙소를 호텔 예약 어플을 통해 살펴 봤을때 이상하게도 창문이 없는 방이 많았고,

방 넓이도 너무 작아 이들의 인구 밀도 땜에 그러려니 했었다. 

남한 면적의 1/3 정도에다 인구는 우리네의 반 정도라니 인구밀도가 조밀한 우리보다 더 하다니

당연히 방이 좁겠다고 여겼었다.

그렇지만 이 방은 창문도 있고 발코니도 있는데다 밖은 학교여서 낮엔 시끄럽겠지만 밤엔 당연히

조용할테니 괜찮다.


짐을 풀고 단수이(淡水)로 향했다.

지하철로 꽤 달려야 했는데 베이터우(北投)역에 서더니 종착지라는 방송이 들린다.

아닌데? 왜 단수이까지 가지 않고 종착역이라고 하지? 지하철도(圖)에는 단수이가 종점인데?

일제히 좌석에서 일어나 나갔지만 엉거추춤 그대로 있었더니 밖으로 나갔던 30대 중반의 여성이

다급히 들어 오더니 '여기서 나가야 해, 단수이까지 갈거지?' 하며 팔을 잡아 이끈다.

이 차는 종점이 여기이며, 다음 차를 맞은편에서 타면 단수이로 가는 차라고 한다.

이런 고마울데가......

맞은편으로 가서 막 들어오는 객차를 타면서 벽에 붙은 지하철도를 보니 이 지선이 같은 루트로

2개인 것이 안내도에 표기되어 있다는것을 알았다.

출발전에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지하철도에는 표기가 되어 있지 않았었다.

같은 지선을 타고 달리지만 하나는 단수이까지 끝까지 가고, 하나는 베이터우 까지만 가는 노선인

것이다.

그나저나 젊은 여성이 참 고맙다.

그녀는 초행이라 어리버리하게 뵈는 외국인을 주시하고 있다가 '그럼 그렇지' 하고는 재빨리 와선

깨우쳐 주고 간 것이다.

아까 그 노인과 이 젊은 여성. 벌써 나를 매료시키고 있다.

드물게 보는 친절한 사람들을 우연히 만난건지, 타이베이 사람들이 모두 친절한건지......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인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인것에 놀라고 있다.


단수이에 도착하니 황혼이 끝나가고 있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이곳은 황혼을 보러 왔는데 이미 끝나가고 있다.

수많은 현지인들, 엄청나게 많은 가게들, 길거리 음식점들이 뒤섞여 있다.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반 이상이고 외국인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현지인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강가의 가게들은 우리의 90년대 모습들이었지만 뒷쪽 주 도로의 가게는 현대식 가게들로 꽉 들어

차 있다.

사실 황혼외에는 특별한 감흥을 느끼기엔 부족한 곳이고 골라먹는 음식, 젊은이들만이 수용할수 있는

수준의 놀이 등을 즐길게 아니라면 가지 않아도 무방한 곳이라는 생각이다.

볼거리를 중심으로 한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하지만 거리의 모습과 젊은이들의 물결은 우리네와 너무도 흡사해서 온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전혀 낯설지 않은게 편안했다.


오늘 하루의 전체적인 느낌은 마치 오랫만에 부산 거리를 괜스레 헤매고 온 듯하다. 처음이지만 익숙

하고, 남은 여정이 편안하고 순조로울것 같다는, 아주 익숙한 기분이다.


지하철을 역순으로 타고 스린의 숙소에 마치 매일 드나들었던것 처럼 도착했지만 여정의 피로 같은건 

없었다. 아마 낯설지 않은 느낌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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