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로마)
오늘은 바티칸 행.
늦게가면 바티칸 박물관 입장권을 사기 위해 지루한 줄을 오래 서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어 일찍 서두러려
했지만 결국 8시 30분을 넘겨 숙소를 나섰다. 테르미니 역 지하에 있는 지하철을 타고 바티칸 박물관 근처에
내려서 박물관 입구까지는 꽤 걸어야 했다.
엄청나게 높은 담이 나타난걸로 봐서 박물관 입구가 가까웠다는걸 알았지만, 참 담벼락이 높긴 엄청 높다.
성벽이 아닌 담벼락이 이렇게 높은것은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성벽이 아니고 담벼락이 맞다면
이렇게 높은 담벼락을 보는건 처음인 것 같다.
담 아래에는 벌써 관람객이 티켓을 사려고 길게 줄을 서 있다. 미리 와서 티켓을 사 둔 암표상이 두배의 값으로
티켓을 사라고 권했지만 그걸 사야 할 정도로 줄이 길진 않았다. 역시 비수기니까......
성수기엔 3백미터 아래 광장까지 줄이 이어진다고 한다.
교황청의 주수입원이 박물관 입장료와, 성당 꼭대기인 꾸뽈라 입장료, 우표판매와 기념품 판매라고 하니
수입으로 치자면 상당할 듯 하다.
박물관은 전체적으로 보면 작년에 본 러시아 상트 뻬쩨르부르크의 에르미타쥐 박물관에 비하면 물량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지만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정화나 벽면화는 실로 대단하다.
미켈란젤로의 그림들,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대가들의 그림과 조각들이 천정과 벽면을 채우고
그 그림들은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갖고 꿈틀대고 있다.
이런 그림들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어떻게 보존되고 관리되었는지, 또는 복원되었는지 실로 화려하면서도
장엄하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정에는 '벤허' 영화에서 타이틀로 보았던 '천지창조'가 그려져 있었고, 옆에는
천국을 쫒겨나는 아담과 이브의 그림 등등 생생한 그림들이 마치 살아 있는듯 하다.
박물관 관람을 네 시간 정도하고서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 꼭대기인 꾸뽈라에 올랐다.
그곳에서 내려다 본 성 베드로 광장과 화해의 길의 모습은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사방으로 보이는 황갈색의 로마 시내 전경은 '아! 여기가 로마로군!'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정말 멋지다! 멀리 엄청 넓은 로마시내의 전경은 한마디로 '완벽하게' 아름답다.
꾸뽈라에는 바람이 불어 코가 시리고 한기가 온 몸을 파고 들지만 별로 내려가고 싶지가 않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계단을 힘들게 올라 온 값을 한다. 바티칸에 와서 이 꾸뽈라에 오르지 않는다면 그는
바보다!.
로마가 이렇게 넓었던가? 이렇게 방대하고 아름다웠는가? 이런 고대 도시가 이렇게 엄청난 위용으로 아직
자리하고 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과연 '로마는 로마다!'
꾸뽈라에서 내려와 성 베드로(싼 삐에뜨로) 광장에 내려서자 그 위압적이지만 아름다운 자태는 두고 두고 기억
될 듯하다. 날씨가 잔뜩 흐려 너무나 아쉽다. 화창한 광장을 보고 싶었는데......
광장에서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서니 여긴 어느곳에서도 보지 못한 장엄하고 화려하면서도 근엄한 분위기다.
예전에 인상 깊게 봤던 체코 프라하의 비투스 성당이 여태껏 보아 온 성당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늘 생각
했었는데, 성 베드로 대성당은 정교한 아름다움은 비투스에 비해 덜했으나 장엄하고 웅대한 면은 훨씬 더하다.
규모는 터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보통 유적지가 많은 다른 도시들은 옛것을 보존한 '구(舊)도시 또는 구시가지'를 두고, 신(新)시가지는
그 인근에 위치하며 근대 도시와 별 다를것 없는 모습이지만 로마는 거의 모두가 옛 그대로 있는 것 같아
구 시가지의 규모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들은 이런 유산을 잘 보존하고 가꾸고, 관리하므로서 지속 가능한 형태를 유지하는것 같다.
옛 로마인의 지혜와 심미안, 그리고 도시 계획의 치밀함과 미적 감각 등이 이 처럼 대단 했다니......
좀 엉뚱하지만 머릿속엔 아까부터 자꾸 떠오르는 생각, '이들이 이런걸 만들때 그 시대의 우린 뭘 했지?'......
꾸뽈라에서 내려다 본 로마의 전경은 옛 로마인들이 얼마나 근사한 사람들이었는지를 웅변하고 있었다.
로마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다를순 있지만 이들이 당시에 얼마나 큰 스케일과 대단한 심미안을 지녔는지 알 수
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거리엔 걸인이 한둘이 아니다. 상처를 드러내놓고 엎드려 동냥하는 이, 작은 쟁반을 내 코 앞에 들이
대는 이, 꽤 젊은 여자가 한없이 불쌍한 눈으로 올려 보며 구걸하는 등...... 처음 한 두번은 동전을 꺼내 그들
에게 주다가 이젠 그만 둬 버렸다. 이들에게 계속 동정을 베풀다간 여행을 관둬야 할 지경이다.
같이 간 같은 방 젊은 친구는 티켓을 산 직후 사라져 버려 '화장실 갔나?'하곤 20분 정도 기다렸으나 나타나지
않아 혼자 다녔는데, 나중에 숙소에 늦게 나타나서는 '제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죠!' 한다.
'취향이 서로 다르니 각자 다니다가 나중에 숙소에서 보자'고 그러잖아도 얘기하려 했는데 아무 말도 없이 사라
졌다가 나타나 하는 말이 의도적으로 사라졌음을 실토하는듯 하니 기분이 좀 그렇다.
가능한 여행지에서는 '젊은 한국 친구'에게는 말을 걸지 않는 내 성향을 접고, 모처럼 그 친구 보조를 맞춰
다니려고 애썼는데 이 친구는 좀 아니다. 조화로운 가족들과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 성장한 젊은이는 아닌 것
같아 '그래, 내일은 자네 혼자 다녀' 하고 말았다.
내딴엔 불편한 관계로 느낄까 염려되어 저녁식사때엔 맥주를 몇 병 사와서 같이 마셨는데, 이 친구 내가 따라주면
마시고, 내 잔엔 눈길도 주지 않아 '좀 이상한 애군!' 했는데......
민박집 주인장도 그 애가 왠지 엄청 불편했다고 나중에 얘기하는걸로 봐서 평범한 심리의 애는 아닌것 같다.
남의 나라 여행지에서 흔히 느낀 경험을 말하자면 그곳에서 만난, 혹은 잠깐 스친 한국의 젊은이들은 대체로
나 처럼 중늙은이거나 중년의 '어른(!)'을 기피한다는 느낌을 많이 가졌다. 따지고 보면 내 젊은 시절에도 50대
중년이나 60대 늙은이(!)에게 별다른 호의적 감정을 가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외국에서 한국인 어른을 만나면 대체로 슬슬 자리를 피하고 모르는척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건 우리네 사회 기성 세대에 일련의 책임이 있는 것 같다. 근엄한척 하고, 가르치려 드니(이게 심하다!) 좋아할
녀석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우리 사회의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등을 보면 기성세대 라는 자체가 부끄러울
지경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긴 그외에도 '젊은이들이란 늙은 꼰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라는것은 우리네 뿐만 아니고 어느 나라건 똑 같은
현상인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와 흘러간 기성세대는 나라를 불문하고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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