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 로마를 찾아서

운농 박중기 2016. 3. 23. 11:26

2016년 3월 1일 (함양 - 인천 - 헬싱키 - 로마)


기나긴 여정이다.

어제 함양을 출발, 인천공항 인근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묵고 오늘 핀 에어로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헬싱키를

경유, 로마에 저녁 늦게 도착했다.

인천에서 헬싱키까지 10시간의 비행에는 옆자리에 우리나라 40대 여성이 동석했다.

차분하고 지적인 인상의 여성인데, 빈 자리가 많아 굳이 좁은 좌석이 서로 불편할 것 같아 내가 빈 자리로 옮겼다.

지루한 비행 끝에 헬싱키에 환승을 위해 내렸는데 입국장이 무지 까다롭다.

로마에는 얼마나 머물거냐, 이탈리아의 어디 어디를 갈것이냐, 이티켓을 보자, 로마에서 묵을 호텔 바우처를 보자,

여행 목적은?, 돈은 얼마나 가지고 가느냐 등등, 핀란드의 입국관리가 왜 남의 나라 방문객에게 꼬치 꼬치 캐묻는지

알순 없지만 좌우지간 한사람 입국 심사가 보통 3-5분 정도 소요된다. 이러니 긴 줄은 줄어들지 않고 사람들은 왠일

인가 싶어 앞쪽으로 자꾸만 고개를 내민다.

환승을 위한 입국심사가 이렇게 까다로운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옆자리의 40대 여성에게서 일어났다. 입국관리는 그녀에게 집요하게 뭔가를 묻더니 문제가 있다며

그녀의 여권을 들고는 그녀를 별실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녀는 관리를 따라가면서 내게 영어를 잘 하느냐, 통역을

도와 줄 수 있느냐는데, 입국장에서 관리와 문답을 주고 받는 그녀의 영어를 들은바로는 나보다 훨씬 나은듯 했다.

그렇지만 엉거추춤 그녀 옆에 있는 나를 관리는 훑어보고는 나를 제지하고 그녀를 데리고 별실로 들어가 버린다.

그녀와 잠시 나눈 대화중에, 그녀는 베를린에서 독문학을 늦깍기로 공부하고 있고, 이 공부는 생계(!)가 달린거라는

얘기를 들었었고, 자주 베를린과 서울을 왕복했노라고 했으며, 베를린에서 산 왕복표로 서울에 갔다가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었다.

짐작컨데 독일에서 왕복표를 샀으므로 '한국으로 돌아갈 티켓'이 없는것이 문제가 된 것인지, 아니면 쉥겐 조약에

의한 유럽 출입국의 제한횟수를 넘긴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도와주지 못해 조금은 찝찝한 마음이 되어 별실 문 앞에서 30분 가량 기다려 봤지만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환승 대기 시간이 내 경우 2시간 15분이고, 그녀 역시 베를린 행으로 환승하는데 2시간 가량 대기해야 한다고

들었지만 입국장을 통과하는데 거의 한시간을 소비했으므로 시간이 별로 없었다.

별수없이 환승구역으로 올라가 게이트를 찾아가니 20분 정도 남았다. 혹시 그 사이 그녀 역시 베를린 행 게이트에

당도 했나해서 옆 베를린 행 게이트에 가봤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선량하게 보이던 그녀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를 도와주지 못한 찝찝함이 계속 남았다.

하지만 내 영어실력으로는 능력 밖의 일이라며 자위하는 수밖에......

그렇지만 내 경우 저런 일을 당한다면 쥐꼬리만한 영어실력으로 혼쭐이 나겠다는 두려움도 없지않다.

'한국어나 독일어를 하는 사람을 불러 달라고 하세요!' 한 것이 내가 그녀를 도운것의 전부다.


로마 행으로 환승하여 3시간 넘게 날아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하니 어둑한 어둠이 내려앉아 있다.

가이드 북에 적힌대로 공항과 연결된 로마 도심행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 기차를 타고 30분만에 로마 테르미니

기차역에 당도했다.

예약한 한인 민박집은 테르미니 역과 가까워서 약도를 보고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으므로 걸어가려고

했으나 역에서 무료 개방인 와이파이로 주인에게 도착을 알리는 카톡을 보내니 데리러 오겠단다.

그러고 보니 로마공항에서는 입국장에서 입국심사도 없이 바로 공항밖으로 나와버렸던게 기억났다.

아니, 내가 잘못 나왔나? 왜 입국심사가 없었지? 마중나온 민박집 주인에게 물으니 그런일은 흔한 일이란다.

남의 나라인 핀란드에서는 그리 꼬치 꼬치 굴더니 정작 목적지인 나라에서는 입국심사도 없다니......

테르미니 역 근처는 우중충하다. '로마'라는 이미지를 내 머릿속에 어떻게 가지고 있었는진 모르겠으나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다.

골목은 복잡하고 어수선, 마치 서울의 원효로 골목처럼 생겼다. 흑인들이 많고 백인들은 별로 없다. 오히려

아시안들이 훨씬 많아 보인다. 마치 복잡하고 어수선한 다인종 사회에 뚝 떨어진듯한 당혹감이 엄습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일대가 차이나 타운 비슷한 지역이란다.

어쨋던 로마에 당도한 첫 인상은 그리 산뜻하진 않다. 마치 태국의 카오산 로드 한 골목에 당도한듯한 그런......


마중 나온 아주머니는 분명 한국 사람의 얼굴인데 말씨가 다르다. 가만있자, 이 말씨는 완전히 북한 말씨가 아닌가,

북한 사람이 운영하는 민박집에 내가 예약을 한건가? 그럴리가 없는데......

'혹시 북조선 분이세요?' 강렬한 호기심이 일어 물었더니 아주머니는 씩 웃는다. '아뇨, 나 연변 사람이야요' 한다.

연변 사람? 연변 사람이 로마에서 한인 민박집을 한다고? 영 헷갈린다.

어쨋던 아주머니를 따라 5분 정도 걸어 민박집에 당도했다.

유럽 특유의 큰 건물 1층에 자리한 민박집은 그런대로 깨끗하다. 도미토리 6인실, 예상한대로 나 밖에 없다.

이 큰 집에 주인 아주머니와 둘이서만 있어야 할 판, 그렇지만 조금후에 아주머니가 밖으로 나가더니 청년 한 명을

데리고 왔다. 미리 예약하지는 않았고, 전화를 받고 나가서 데리고 온거라고 한다.

스물다섯의 청년은 한국의 보통 젊은이다. 한국은 희망이 없어 보여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저 나이에

저런 생각을 하다니 한편으론 부럽고 한편으론 짠하다.

그와 내일 로마 시내를 같이 돌아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