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화요일 (함양 - 대전 - 인천공항 - 상트 뻬제르부르그)
새벽부터 시작해 참 먼 거리를 달려왔다.
상트 뻬쩨르부르그의 풀코보 공항은 밤중이라 그런지 칙칙하다. 인천공항의 깔끔함과 비교되어 그럴까?
공항의 입국장은 별로 붐비지 않았지만 관리들의 일처리가 굼떠(우리네와 비교해) 30분 정도 걸려서야
입국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뭐든 '빨리 빨리!'를 해치우는 한국적 시스템이 이럴땐 그립다.
예약해 둔 숙소를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아가는 시간이 빠듯할 듯하여 조급해 진다.
입국장의 관리는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상상하는 KGB 요원같은 딱딱하기 이를데 없는 얼굴이다.
질문은 없었지만 쏘아보는 눈초리가 무례할 정도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공항을 벗어나자 가이드 북에서 읽었던 39번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것을 보니 다소
불안한 마음이 수그러든다.
버스를 타고 어두운 밖을 보고 있으니 뚱보 검표원 아줌마가 무뚝뚝하게 검표를 하는데 1인당 28루블(우리
돈으로 500원 쯤이니 상당히 싸다)이란다.
창밖의 건물들은 우리네의 스케일과는 비교 불가다. 작은 건물은 아예없고, 정말 무지막지하게 큰 건물들
로만 이뤄져있다.
어두운 거리를 20분쯤 달려 이 버스의 종점인 '마스꼽스카야' 지하철 역 근처에 도착했다.
이 버스는 공항과 지하철 역간을 운행하는 단거리 버스였다.
주차장 근처의 젊은 여성에게 '미뜨로(메트로의 러시아식 발음) 어디야?' 하니 진행방향으로 곧장 가란다.
7-8분쯤 걸으니 M2라는 지하철 2호선 역 입구가 보인다. 내려가서 안내표지를 따라 걸으니 개찰구가 나온다.
그런데 개찰구가 잠겨있다. 이런?...... 개찰구 안에는 지하철 역무원 복장을 한 두명이 서서 잡담을 나누다
두 팔로 X자를 만들며 고개를 절래절래 한다. 안내 표시판 등 아무런 표식도 없다.
이거 뭐지?...... 처음부터 뭔가 아귀가 맞지않는 듯하여 묘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버스에서 내렸던 길을 다시 거슬러 찾아오니 이번엔 바로 옆에 M2 표시가 또 있다.
아까 그 젊은이는 왜 바로 옆에 있는 입구를 두고 멀리 있는 입구를 가르쳐 준 걸까? 그 덕에 30분 정도를
소모하고 말았다.
지하철 2호선은 땟국이 흐른다. 객차는 낡았고, 소리는 요란하다. 마치 지하 갱도를 요란하게 통과하는 석탄
수레 같다. 객차의 출입 자동문은 요란하게 열리고 닫혀서 까딱 어물대다간 어깨죽지에 큰 상흔이 날 듯하다.
다섯 정거장을 굉음과 함께 달려 환승역에서 내려 바로 곁에 있는 1호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세 정거장을
통과해 마침내 모스크바역(러시아는 상트 뻬쩨르부르그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역을 '모스크바' 역으로
호칭하고, 모스크바에서 상트 뻬쩨르부르그로 가는 역을 옛 지명인 '레닌그라드' 역으로 호칭하는등, 말하
자면, 도착하는 지역의 이름을 출발지역 역명으로 한다)에 내렸다.
역에서 나와 넵스키 대로(大路) 쪽으로 나오자 그만 기가 질리고 말았다.
우리와는 완전히 스케일이 다른 넓은 도로와 건물들(높은 건물들이 아니라 무지하게 넓고 큰 건물들)......
마치 소인국에서 갑자기 대인국으로 뚝 떨어진 느낌이다.
블럭마다 엄청 큰 건물들이 도열해 있고, 역사(驛舍) 앞의 사통팔달 도로는 나그네를 기죽게 하기에
충분하다.
숙소의 위치를 상트 뻬쩨르부르그 지도에서 충분히 검색해서 익혔는데도 도무지 방향을 어림할 수 없다.
한동안 멍하니 대로를 쳐다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침 근처에 인근 도로를 크게 그린 안내판이 있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대충의 방향을 가늠했다. 젊은이들은 대개 간단한 영어를 구사해 어려움은 없었다.
예약한 한국인 민박집 '여름궁전'에 도착한건 11시를 넘겨서였다.
나중에 휴대폰을 보니 왜 아직 도착하지 않는지를 걱정하는 주인장의 메세지가 와있었다.
짐을 풀고 샤워를 끝내니 12시가 훨씬 넘었다.
큰 어려움 없이 숙소까지 찾아 왔다는건 대단한 일이라고 자위했다.
얼핏 본 넵스키 대로의 스케일에 기가 죽지만 내일부터 이 일대를 누비고 다녀야 할 터, 겁먹지 말자.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무지 빠르다, 대략 100미터쯤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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