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9)달과 별이 그려진 선홍빛 나라 터키

운농 박중기 2014. 7. 7. 12:54

2014. 6. 9(월) -이스탄불-

 

이스탄불을 떠나는 날.

저녁 늦게 비행기를 타야 하니 사실상 하루가 온전히 주어져 있다.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뭔가를 다 하지 못한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조급해 진다.

아침식사를 하고 체크 아웃 한 뒤 배낭을 호텔에 맡기고 가벼운 차림으로 그랜드 바자르로

(카팔르 차르쉬) 향했다. 터키에 오기 전부터 그랜드 바자르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으므로

조금은 들떠 있기도 했다.

술탄 아흐멧 자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그랜드 바자르의 동쪽문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눈을 휘황하게 하는 보석가게가 즐비하다. 그것도 아주 현대식 상점들이다.

진열품들은 엄청 화려하고 풍성하다.

"이런거야? 그랜드 바자르라는 곳이?" 우리는 일순 실망감을 느꼈다.

오래 전부터 터키를 꿈꿔 오면서, 그 중에서도 가장 기대를 품고 있었던 곳이라 실망감은 더 컸다.

'장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건 아닌데" 하는 ......

뭔가 옛 정취가 물씬나고, 조금은 신비스런 물건들이 숨어있고, 상인들은 구렛나루를 쓰다듬으며

손님들에게 우아한 동작으로 차를 권하는 그런 곳을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이없는 우리의 바램이 무너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장안은 지붕이 덮혀져 있었고, 엄청난 넓이를 자랑하며, 듣기로는 점포수만 5천개가 넘는다고

했지만 우리는 별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주 통로의 좌우에 수많은 골목으로 뻗친 상점들은 그 전체 규모를 가늠하기가 불가능 하도록 방대

했지만 현대식 점포들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 이상은 아니다.

보석과 가방, 카페트와 옷가지, 도자기, 로쿰 과자, 향신료와 그릇, 그 밖의 온갖 잡화를 파는

가게들이 휘황한 불빛과 함께 늘어서 있다.

네팔의 인드라 쵸크와 어썬 바자르의 시장을 상상했던 우리의 기대와는 한참 동떨어진 이곳에

금방 싫증을 느낀 우리는 1시간만에 시장을 벗어 나자고 눈짓했다.

호텔 근처의 도자기 전문점에서 점찍어 봐 둔 도자기와 거의 비슷한 것의 가격을 물으니 세배

정도의 가격을 부른다. 손사래를 쳤더니 계산기 부터 들이대며 흥정을 하잔다.

그랜드 바자르는 이미 '현대화' 되어 있는 것이다.

지붕이 있고(지붕은 본래부터 있었다고 한다), 깨끗한 상점 인테리어의 쾌적한 곳이지만 우리 

에겐 이미 흥미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이 옛 정취를 걷어내고 '현대화'를 시작할 때 이미 그랜드 바자르는 '평범한 큰 장터' 이상은

아니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랜드 바자르를 빠져 나오면서 이들의 '현대화'를 괜시리 나무랐다. 

그들의 쾌적한 시장 환경을 마치 책망하듯이......

 

우리는 그곳을 빠져나와 에미뇌뉴 항 근처의 예니 자미 옆 이집션 바자르(므스르 차르쉬)로 향했다.

그랜드 바자르 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이집션 바자르는 옛날엔 향신료 시장이었다고 하는데,

그랜드 바자르 보다는 옛 향취가 조금은 남아있긴 했지만 별로 다른 건 없다.

다만 스파이시 시장이라는 별칭답게 각종 향신료 파는 가게가 좀 더 많을 뿐이다.

 

두 곳의 물량과 인파에 지쳐 우리는 예니 자미에 들어가 한참을 쉬다가 이스틱랄 거리로 다시

가 보기로 했다.

월요일이고, 뜨거운 한낮이라 인파는 어제의 열기 보다는 많이 식어 있었지만 역시 매력은 있다.

예상치 않게 규모가 상당한 가톨릭 성당이 있다.

입구에는 교황과 예수의 십자가 청동상이 있고, 한 켠에는 성모 마리아의 동상과 기도처도 있다.

성당안은 장중하고 멋있다.

역시 이슬람 사원들 보다는 안이 훨씬 섬세하다.

그렇지만 외양은 역시 이슬람 사원의 종교적 신비감과 장중함을 따라갈 수 없다.

체코에서, 그리고 뮌헨에서 봤던 성당의 섬세함은 이슬람 사원이 따라갈 수 없지만 역시

겉모습은 이슬람 사원이 앞선다.

 

오늘밤이면 터키를 떠난다.

매번 여행을 끝내면서 왠지 모를 이유로 그 나라의 색깔을 떠올렸던게 생각난다.

터키는 마음속에 어떤 색깔로 남을까?

선홍빛이다. 그들의 국기 색깔처럼......

짧은 여행에서 터키의 많은 것을 보는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고, 다만 이 나라를 떠나면서

마음속에 그들의 색깔을 새겨두고 싶은 것이다.

곳곳에 유독 많이 게양되어 있던 터키 국기가 내 마음속에 자국을 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을 떠나 이곳을 그리워 한다면 선명한 선홍빛이 가슴 밑바닥에서 부터 슬며시 물들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