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2)운농의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7. 27. 13:46

 

2011년 3월 6일  (넬슨 - 머치슨 - 웨스트 포트- 그레이 마우스)

 

예쁘고 아름다운 작은 도시 넬슨을 떠나 오늘은 5시간여의 운전 끝에 그레이 마우스에 도착했다.

도중에 푸나카이키(Punakaiki)에 도착, 팬케이크 록(Pancake Rocks) 이라는 이름의 해안을 구경했는데 이게 굉장한 볼거리였다.

이름대로 팬케이크 같은 바위들과, 거대한 고래 몸통같은 바위속에 파도가 부딪치는 장관이 걸출하고, 그 바위속과 육지에 연결된

구멍으로 파도가 칠때마다 거친 물줄기가 솟아올라 물보라를 뿌리는데, 아마도 파도의 압력으로 바닷물이 구멍에서 솟구쳐 올라

오는것 같았다.

마치 거대한 고래가 수면에서 물줄기를 뿜어 올리며 숨을 쉬는 광경이다.

대단한 장관이라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가이드북에도 나와있지 않은 볼거리에 우리는 마냥 신났다.

이 굉장한 볼거리는 해안가에 길게 뻗어있어서 파도가 세차게 때리는 바위 위를 걸어다니며 봐야 하는데도 안전장치는 최소화

되어있다. 이 사람들은 참으로 자연에 손상을 입히지 않으려는 노력이 지나쳐 보인다. 우리네 같으면 철 구조물로 난간을 만들고

안전 울타리, 계단등으로 중무장을 해 둘텐데 도무지 여기는 몇갑절의 위험요소가 보이는데도 별로 애쓴 흔적이 없다.

하긴 이 정도의 볼거리라면 우리네의 경우, 입구에서 적어도 몇만원의 입장료를 받고, 수많은 인파가 열을 지어 입장하고, 관광객을 위한 위락시설과 장사아치들, 그리고 식당과 숙박업소들이 난립을 할 터.

그렇지만 여긴 달랑 매점 한 곳과 작은 화장실 뿐이다.

이들은 작은 인구인데다 수많은 볼거리와 광대한 풍광들이 넘쳐나 이 정도의 볼거리엔 '뭐 이 정도 쯤이야!' 하는것 같아 슬슬

배가 아프다.

 

장시간 운전중인 도로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모양의 자동차들이 질주한다.

승용차 꼬리에 침실만을 꾸민 트레일러를 끌고 가는 차. 캐러밴, 자동차 지붕위에 카약을 매달고 가는 차. 또 짐 싣는 리어카

같은 것을 끌고 가는 차 등등 온갖 것들이 참으로 자유롭게(!) 달리고 있는데 우리네는 가능할까? 자세히는 모를일이지만

'교통법규', '구조물 안전진단', '도로교통법', '지방자치 조례' 뭐 이런 '안 될것' 만 찿아서는 '어떻게 하면 규제할 수 있을까'만

연구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뉴질랜드 승용차의 90% 이상은 뒷 꽁무니에 트레일러 등을 매달 수 있는 장치가  불쑥 튀어나와 있는데 가끔은

'저게 추돌사고시에는 추돌한 차를 많이 망가뜨리겠는걸'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또, 우리처럼 터널을 뚫고 비탈을 깍는 공사는 거의 없이 산이나 구릉, 비탈길 등을 훼손하지 않고 지형이 생긴대로 만들어 놓은 도로 덕분에 오토바이 족들이 신났다.(여태까지 우리는 단 한 곳의 터널도 만난 적이 없다)                                                    이 나라에 산다면 정말 성능좋은 오토바이는 필수품일 것 같다. 나 같은 중늙은이가 이런 생각이 드는데 피끓는 젊은이라면

말할 나위 없겠다. 100킬로 정도의 속도로 와르릉거리며 우리 차를 추월해 가는 그들이 참 멋있다. 우리네 애들 처럼 휘청휘청

지랄도 없이, 빠라빠라빰(!)도 없이 질주하는 그들을 운전내내 부러워했다.

여기서라면 '과부 제조기'라는 오명의 오토바이는 아닐 것 같다. 

하긴, 땅덩이는 우리네 남한의 2.7배 정도나 되지만 인구는 우리의 10분의 1 정도(400만명) 도 되지 않는 이곳을 자꾸 잊고

우리와 비교를 하다니......  

 

오늘의 숙박지로 정한 그레이 마우스는 아마 여태껏 거쳐 간 도시중에 가장 낙후된, 다소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분위기다.

여긴 볼 만한 관광지가 없고, 도시도 뉴질랜드 답지 않게 아름답지도 않으며 도시에서 바라보는 바다 역시 우울한 색조를 띄고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처음 보는 철로와 기차역이 있었고 대체로 사람들의 표정마저 활기가 없어 보였다.

우리는 YHA(Kainga-ra YHA)에 여장을 풀었다.

그런데 이 그레이 마우스의 YHA는 여느 도시의 YHA 보다, 여느 숙박업소 보다 아주 특별했다.

가이드 북에 의하면 1930년대에 가톨릭 사제가 살던 집을 개조 했다고 하는데 언듯 보기에도 외관이나 내장을 그대로 둔 곳이

90%는 될 듯하여 수도사들의 신앙생활이나 그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특히 문짝이나 식당, 휴게실등에 있는 집기, 창문 등이 적어도 100년은 된 듯한 냄새가 베어있어 참으로 인상적이다.

트윈룸에 70불을 지불했는데 아마 100불을 하더라도 일부러 자 보고 싶은 그런 곳이다.

우리는 관리자가 건네준 무거운 구식 열쇄로 역시 무거운 목재  문을 열고 방문을 들어서서 여장을 풀었다.

 

공동샤워실에 들어 갔더니 세면기 옆에 깨끗한 타올이 한 장 걸려있다. 머리 위에는 머리카락을 말리는 열풍 건조기가 있고

샤워장 입구에는 발을 딱을 수 있는 타월이 역시 단정하게 깔려있다. 부엌에는 그릴과 전자렌지, 그릇과 각종 부엌집기들이

반짝이는 윤을내며 걸려있고, 냉장고에는 투숙객들이 반찬통에 각자의 이름을 써 붙혀 놓도록 스티커와 필기구를 준비해

두었다.

그런데 압권은 공동거실이다. 피아노와 기타가 언제든 쓸 수 있도록 돼 있고, 아마 수도원 시절부터 있었던것으로 보이는

책장이 듬직하게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그 속에는 문고본 책들과 투숙객을 위한 읽을거리가 가득하다.

또 한쪽 벽면은 구식 벽난로가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어 마치 이 공동거실은 어느 중세시대의 작은 응접실 같은 분위기다.

도미토리 1인당 22불, 트윈룸 70불의 뉴질랜드에서는 저가(低價)인 숙소가 이런 세심한 배려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물론 뉴질랜드의 숙소가 모두 이런 식이진 않겠지만 여태껏 80% 정도의 숙소에서 이런 세련됨과 세심한 고객 배려는 감탄을 

자아낸다. 이런것을 볼때마다 자꾸만 우리네 숙박문화가 떠오는것은.......

 

안내대의 관리인은 오후 8시 30분이면 자기가 퇴근하니 숙박객들이 그 이후에 바깥 출입을 할때에  사용하라며 '시크릿 코드',

말하자면 출입문 비밀번호를 적은 손가락 만한 종이를 건네준다.  

우리는 그녀가 일러준 '시크릿 코드'를 사용할 일은 전혀 없이, 정갈하고 나름 기품있는 깨끗한 부엌에서 다른 곳보다 좀 더

정성껏 저녁상을 차려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층인 우리의 방은 마치 수십년전 수도사가 신앙의 번뇌를 기도로 해소하던 기도실 같이 우리를 경건하게 한다.

 

여행을 하면서 법정스님이 쓴 한구절이 언제나 마음 속에 있다.

"삶은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의 비참함은 죽는다는 사실

보다도 살아있는 동안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 죽어간다는 사실에 있다. 가령 꽃이나 달을 보고도 반길 줄 모르는 무뎌진 감성,

저녁 노을 앞에서 지나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줄 모르는 무감각, 넋을 잃고 텔레비젼 앞에서 허물어져 가는 일상 등, 이런 

현상이 곧 죽음에 한걸음씩 다가섬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