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7일 (그레이 마우스 - 프란츠 요셉 빙하지대)
그레이 마우스의 인상적인 YHA를 떠나려니 많이 아쉬웠지만 우리는 짐을 자동차 트렁크에 옮겨 싣고 2시간 30분을 달려
프란츠 요셉 빙하지대에 도착했다.
남섬의 웨스트 랜드 지방에는 대표적인 빙하지대가 두 곳이 있는데, 프란츠 요셉과 폭스 빙하지대다. 두 지대는 25Km
정도 떨어져 있다. 우리는 두 곳중에 프란츠 요셉을 택했다.
'프란츠 요셉'은 오스트리아 황제의 이름을 어느날 갑자기 붙혀 버린 것이고, 원주민인 마오리족들이 부르는 진짜 이름은
'카 로이마타 오 히네후카테레(Ka Roimata O Hinehukatere)'라고 한다. 뜻은 '하염없이 쏟아진 소녀의 눈물' 이란다.
이런 긴 이름의 지명이나 표식이 뉴질랜드에는 많은데, 운전을 하다보면 정말 헷갈리는 것이 이 지명 때문이다.
뉴질랜드를 백인들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되면서 원주민과의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들을 배려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진 모르지만 도시나 작은 마을의 이름이 마오리 족들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곳이 거의 80%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규모가 큰 오클랜드, 크라이스트 처치, 웰링턴, 해밀턴 같은 대도시에는 영문식 이름이지만 중소도시나 마을 이름은 거의
마오리식 이름이라 이정표를 읽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어설픈 영어라지만 이미 영어식 발음에 익숙해 있어, 생소한 마오리의 비슷 비슷한 발음에는 참 적응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파이히아, 와이탕이, 와이탕기, 타우랑가, 투랑기, 와나카, 오아마루 등등의 이름은 이정표에 표기된 지명을 그대로
머릿속에 넣어두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레이 마우스에서 프란츠 요셉 까지의 길은 별다른 특색이 없다. 간간이 호수가 보였고 밀림이 나왔고 지역 동네 식당이
한 두군데 보였을 뿐이다.
우리는 프란츠 요셉에서도 YHA에 묵고 싶어 마을 끝머리에 있는 곳을 찿아 갔는데 어라! 이곳은 106불이란다.
모텔도 아니고 무슨? 이 양반들은 YHA의 설립용도를 모르는 것 아냐? 하면서 우리는 그 앞의 백패커스(Montrose)에 여장을
풀었다. 이곳은 빙하를 보기 위해 오는 관광객들 때문에 생겨난 그야말로 완벽한 관광촌 마을이었다.
우리는 방의 키를 받아들자 바로 빙하지대로 이동했다. 차를 주차시키고 한시간 가량을 걷자 빙하지대의 코 앞이다.
거대한 아가리 같은 빙하의 끝머리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그 구멍으로 빙하가 녹은 물이 폭포가 되어 쏟아지고 있었다.
하늘에서 부터 쏟아져 내려온 것 같은 빙하는 거대하고 주변의 산세도 역시 웅장하나 우리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다소 실망스럽고 맥빠진 기분이 되었다.
왜?....... 우리는 이 거대한 풍경 속에서 잠시 실망을 하고 있을까? 아내와 나는 똑 같은 기분이었던것이다.
바로 우리가 1년전에 갔었던 네팔의 안나푸르나를 연상했기 때문이었다. 그곳의 한쪽 일부와 닮은 이곳에서 우리의 머릿속은
빠르게 안나푸르나와 프란츠 요셉을 번갈아 떠올렸던 것이다.
분명 이곳을 처음 찿은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풍광으로 다가오겠지만 우리에게는 아니었다.
네팔의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래킹을 1개월 동안 하면서 수없이 보았던 그 풍경의 일부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엄청난 무게감과 주변의 산군(山群), 그리고 7-8천미터의 설산 봉우리들이 평풍처럼 도열한 사이사이에 이런 빙하지대는
얼마든지 있었던 것이다. 작은 에피소드 같은 양념처럼...... 쓸데없이 높아진 우리의 눈을 프란츠 요셉이 도무지 압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진을 찍고, 감격하는 젊은이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거만한(!) 웃음을 띠면서 우리에게는 싱거운 풍경을 뒤로하고 그곳을
빠져 나오면서 새삼스레 안나푸르나를 추억했다.
이제 어느 곳을 가더라도 산군(山群)의 풍광만큼은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를 능가할 곳은 없을 것 같은 예감이다.
저녁나절 숙소에 들어서자 숙소안은 젊은이들로 북새통이다. 공동부엌안은 만원이고 무료 인터넷실은 빈 자리가 없다.
내일의 숙박예정지는 퀸즈타운 인데 그곳은 미리 숙소예약을 해 두어야 할텐데 걱정이다.
방 내부는 침대 하나와 의자 1개, 조그만 탁자 1개가 전부다. 침대시트와 담요도 뉴질랜드 숙박업소 답지 않게 불결하다.
통가리로의 숙소에서 보았던 그 세심한 배려는 찿아볼 수 없다.
사실 우리 같은 가난한 여행자에게 숙소에서 필요한 것은 어지럽게 널려있는 옷가지를 걸어 둘 옷걸이와 작으마한 일상품
들을 늘어놓을 선반과 속옷을 널어 둘 빨랫줄 등이 요긴한데 여긴 그런건 없다.
꼭 네팔의 숙소인 롯지와 같다. 그곳에선 옷을 걸어 둘 못 하나 벽에 박아 둔 곳이 없어 망치를 빌려 여기저기 삐죽이 튀어
나와있는 못을 뽑아 벽에 직접 못을 박아 넣어 옷을 걸곤 했던 것이다.
그들은 못질을 하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볼 뿐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내가 뒤돌아서 그들을 보면 겸연쩍게 웃기만 했던 것이다.
그런 네팔과 비슷한 곳이 이 뉴질랜드에도 있는 것이다.
공동거실과 주방, 식탁, 공동샤워실 등도 역시 지저분하다. 사람들은 이런 분위기에 금방 행동거지가 닮는다. 대충 설거지하고,
마시던 일회용 컵은 아무렇게나 내동댕이 치고, 담배꽁초는 문턱에 몇개씩 보인다.
정돈된 곳에서는 그러지 않았으면서...... 인간들의 심리란 그곳이 네팔이건, 한국이건, 이곳 깔끔 떠는 뉴질랜드건 모두
똑 같은 것이다.
백패커스의 작은 마당에 일제 스바루 승용차 한 대가 서있다. 낡고 여기 저기 흠집이 나있는, 아마도 15년은 됨직해 보이는
자동차의 뒷 유리창과 앞 유리창에 '2천 5백불(우리 돈으로 2백10만원 정도)에 팝니다' 라고 붙혀 두었다.
아마도 여행자가 팔려고 내놓은 것 같은데 여기서는 이런 자동차 거래가 종종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등록은 어떤 방식으로
하고 세금은 ? 명의변경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숙소들의 마당에서 흔하게 봤고, 길거리의 상점 앞에도 이런 차를 몇차례
본 적이 있다. 하긴 이런 식이라면(절차가 복잡하지 않다면) 입국해서 이런 차를 한 대 사서 몰고 다니다 용도가 다하면
이런 식으로 팔아 버린다면 렌트하는 값과 별반 다를게 없거나 오히려 싸게 먹힐거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 절차가 영어가
취약한 우리에겐 해당사항이 없을 터.
다만 스바루 라는 일제차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 그냥 눈길이 갔을뿐이다.
저녁식사후 잘 정돈된 동네를 한바퀴 산책하고 돌아오니 공동거실의 TV 앞에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있다.
TV에는 영화 '반지의 제왕'이 방영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의 본고장인 이곳에 이 영화를 추억하며 온 것이다.
영화의 힘은 무섭다.
'뉴질랜드의 관광지를 찿아 다니는 여행'에 대한 회의가 살짝 고개를 든다. 되도록 유명 관광지를 피하는 여행? 그것도
좋지 않을까?
무료 인터넷실은 늦게까지 자리가 비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퀸즈타운의 숙소를 예약하지 못하고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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