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31(토) -카파도키아-
새벽 4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우리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부산을 떨어야 했다. 벌룬(열기구)
투어하는 날이다.
'깜깜한 새벽부터 일어나 이게 뭐하는 짓이람!' 했지만 내심 기대가 크다.
더구나 터키에 세번째 방문해 카파도키아에서 벌룬 투어를 신청했지만 바람이 불거나, 눈이나
비가 내리거나 하면 뜰 수가 없어 세번 모두 타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카파도키아에
4일간의 일정으로 왔는데 일기 불순으로 4일 모두 벌룬을 타지 못하고 돌아 갔다는 얘기 등은
우리를 불안하게 했지만 바깥의 날씨는 캄캄 하지만 괜찮아 보인다.
4시가 넘자 숙소 앞에 벌룬회사의 미니 버스가 픽업하러 왔다. 미니 버스는 각 숙소를 순회하며
벌룬 투어 예약자를 태운 후 자기네 회사 앞에 당도한다.
카파도키아에는 꽤 많은 수의 벌룬 투어 회사가 있는 듯 하다.
사무실 안쪽의 대기실에 들어가자 한쪽에 빵과 음료수, 차 등을 마련해 두었다.
아침식사를 하지 못하고 다들 잠이 덜 깬채 쫒기듯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잘도 먹는다.
우리도 빵과 차를 조금씩 먹었다.
독일인들은 새침하고 얌전하게 앉아있고, 프랑스인과 이태리인은 마냥 싱글벙글, 미국인은 저희
끼리 신나게 수다를 떤다.
우리는?...... 일본인과 한국인은 말없이 빵과 차를 홀짝이고 있다.
이윽고 각자 지불한 액수에 따라 붉은색, 녹색, 노란색, 파란색 등의 명패를 지급 받고, 국적과
이름을 확인하고 난 후 명패 색깔별로 미니 버스에 나눠탔다.
미니 버스는 벌룬이 있는 평지로 내달려 우리를 벌룬 근처에 내려 놓는다.
벌룬은 이미 비스듬히 누워 가스 불꽃 세례를 받고 있는데, 한 두개가 아니고 인근엔 백개가 넘는
벌룬이 불에 달궈지고 있다.
뜨거운 불로 달구어진 벌룬 내부가 서서히 부풀어 오르고 벌룬 끝에 매달린 바구니가 수평이 되자
우리는 올라탔다.
우리네 돈으로 환산하면 1인당 16만원 정도를 지불했는데, 바구니 안의 칸 하나에 6명이 탔고,
칸이 4개니 24명이 타는 것이다.
13만원이면 한 칸에 7명씩 타고, 18만원 짜리는 한 칸에 4명씩 탄다. 말하자면 지불한 액수가
많으면 한 칸의 인원도 적어져서 움직이기 수월한 것이다.
우리는 바구니에 담긴 암탉들이 되어 조종사가 주입하는 안전 교육을 받는다. 주로 땅에 착륙할
때의 요령이다. 착륙할때 무릎을 구부려 충격을 완화시키고, 몸이 밖으로 돌출되지 않도록
하라는 얘기다.
이윽고 요란한 불꽃 분사 소리와 함께 벌룬이 둥실 떠올랐다. 벌룬 속으로 이따끔 쏘아대는
불 때문에 정수리가 뜨끈하다.
주변에선 벌룬이 동시에 백개 정도가 떠올랐는데 주변 경관 못지않게 장관이다.
떠오른 하늘 위에서 내려다 보는 카파도키아는 정말 특이한 지형과, 다양한 색상의 계곡들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어 벌룬과의 조화가 참으로 환상적으로 어울린다.
이윽고 여명이 걷히면서 새벽 햇살이 멀리 낮은 능선에서 떠오르는데, 기이한 골짜기의 형상들이
어울려 아름답게 빛난다.
바구니 속에서 서로 감탄을 금치 못하며 카메라 셔터가 쉴새없이 찰칵인다.
특히 벌룬이 낮게 내려앉아 작은 골짜기의 사암 사이를 지날때는 짜릿한 황홀감이 있다.
한시간 가량 굉장한 경험을 하고 지상에 내리자 대기중이던 차량이 벌룬 아래에 정확히 정차
하여 벌룬을 회수했다.
내린 사람들에겐 '무사히 살아서 돌아온 기념'으로 샴페인을 한 잔씩 돌리고, 1시간의 벌룬 탑승
증명서를 쥐어준다.
벌룬 투어를 끝내고 돌아와 신청한 '그린 투어'를 나섰다.
'으흘라라' 계곡과 '셀리메' 수도원, 그리고 '데린쿠유' 지하도시 등을 보여 주는 투어인데 이
코스는 대중교통이 없거나 불편해서 신청했다.
으흘라라 계곡은 지반이 침식되어 깊히 가라앉은 계곡으로, 냇물이 흐르고 솟아오른 절벽들이
볼 만했고, 셀리메 수도원은 규모가 상당한 큰 사암을 뚫고 들어가 수도원을 만들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나다.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지하의 사암을 뚫고 들어가 2-3천명이 생활 또는 전쟁시 피신했던
곳으로 일부만 공개해 두었는데 그 규모가 놀랍다. 평상시엔 땅 위에서 살다가 이민족 침입과
박해를 받으면 지하에 살면서 방어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깊은 우물'이라는 뜻의 이름 답게
55미터 깊이의 이 지하도시는 지하 8층까지 내려갈 수 있다.
지하까지 공기가 통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지하수도 공급되도록 만들어졌다 한다.
우리는 고개를 숙이거나, 비좁은 굴속을 가이드의 안내로 들락거렸는데 과연 이런 곳에서
생활이 가능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당시의 전쟁과 피신이 반복되던 생활이 일상이었던
현장의 처연함이 곳곳에 보였다.
몇몇 힘있는 자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설쳐대고, 그 바람에 힘없는 자들은 땅굴을 파고
숨어든 야만의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가? 야만의 시대는 끝났을까?
그때는 우악스런 '왕'이라는 자가 설쳐댔지만 지금은 지구촌 곳곳에 '국가'라는, 그리고 '종교'
라는 교활한 집단이 설쳐대는 것은 아닌가?......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달과 별이 그려진 선홍빛 나라 터키 (0) | 2014.06.28 |
---|---|
(11)달과 별이 그려진 선홍빛 나라 터키 (0) | 2014.06.27 |
(9)달과 별이 그려진 선홍빛 나라 터키 (0) | 2014.06.25 |
(8)달과 별이 그려진 선홍빛 나라 터키 (0) | 2014.06.24 |
(7)달과 별이 그려진 선홍빛 나라 터키 (0) | 2014.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