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9)달과 별이 그려진 선홍빛 나라 터키

운농 박중기 2014. 6. 25. 16:03

2014. 5.30(금) -카파도키아-

 

오늘은 하루를 온전히 쉬기로 했으나 아침에 일어나니 마음이 바뀐다.

버스를 타고 들어오며 마주친 우츠히사르의 기이한 광경이 눈에 어른거려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숙소에서 주는, 대략적인 방향만 표시된 어설픈 지도를 들고 나선것이 화근이 되어 우리는 본의 아니게

피전 밸리 쪽으로 방향을 잡고 들어가 버렸다. 방향으로 보면 맞지만 버스 길을 따라 올라가는 수월한

길이 아닌, 이정표가 전혀 없는 계곡 안쪽 길이라 꽤 애를 먹었다.

피전 밸리에 들어서며 우리는 또 다시 터키 관광 당국의 무성의를 원망하며 투덜거렸다.

터키에 도착해 공항에서부터 애를 먹기 시작한 것은, 안내 표시판이나 이정표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알기로는 터키에는 해마다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 몰려 들고 있고, 그들에게서 생기는 관광

수익이 엄청나다는 얘길 들었지만 이들은 외국인을 위한 안내 표시에 너무도 인색했다.

터키의 문자는 터키식 영어로 되어있어 영어권의 외국인이 읽을 수는 있지만 뜻을 알 수는 없는데,

영어식으로 안내해 둔 표시판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하철, 트램, 버스, 돌무쉬 등 외국인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물론, 레스토랑, 호텔 등의 숙소,

심지어 여행사 까지도 영어식 표기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다만 명확한 곳 한 군데. 화장실이다. 유료 화장실 입구에 크게 'WC'라고 표기한다. 그렇지만 그곳을

돈을 지불하고 들어서면 기호표시는 없이 터키식 영어로 남녀를 구분하는 문자만 있는 경우도 있어

어디로 들어가야 하나 하고 망설인 적도 있었다.

이런 여행객을 위한 배려의 결여는 곳곳에서 여행객을 괴롭히고 난처하게 만들어서 곤혹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피전 밸리도 역시 마찬가지다.

입구에 작은 표시판을 끝으로 표시라곤 없는 계곡 길을 우리는 방향만 어림잡아 우츠히사르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거의 우츠히사르에 다 왔다고 하는 시점에서 위험한 사암 절벽이 나타나는 바람에 우리는 난감한

지경이 되고 말았다. 30여분을 헤매다 겨우 올라서자 우츠히사르 마을 앞에 세워 둔 커다란 선홍빛 터키

국기가 보인다.

전국 곳곳에 엄청 세워 둔 국기 수 만큼 이정표가 있다면 이리 힘들지 않을텐데......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가 헤맨 길은 탐방객들이 일반적으로 다니는 길이 아닌, 현지인들만 다니는

길인 것 같았다.

 

우츠히사르 마을의 꼭짓점에 솟아있는 사암(沙巖) 봉우리는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고대부터 감시탑으로 사용해 온 천연 요새라고 하는데 불쑥 솟아오른 바위산 주위에는 주거용으로 사용

하는 동굴 마을도 있고, 여행객을 위한 숙소도 많이 있다.

우리는 바위산 꼭대기로 올라갔는데 이 봉우리를 올라 가는데도 터키의 '입장료'는 간여한다.

보통 대개의 나라는 인공적인 시설물이나 박물관 등은 입장료를 받지만 자연적이고 일반적인 통행길은

입장료가 없는데, 터키는 거의 대부분의 볼거리나 통행길에 입장료를 징수한다. 그래서 터키 여행을

계획할 때는 예산에 적지 않은 입장료와 통행료를 계산해 두어야 한다.

봉우리에 올라서니 서쪽 평원에 펼쳐지는 바위 언덕의 풍광이 장관이다. 빙 돌아 한바퀴를 조망하면

카파도키아의 전 지역이 보이는데, 엄청난 넓이의 기이한 자연 풍광은 무어라 표현하기 힘들 만큼

광활하고 멋지다.

 

점심으로 우리는 여행객 위주의 식당을 피해 우츠히사르 마을의 로컬 식당을 골라 들어갔다.

커다란 화덕에는 빵이 구워지고 있고, 피데와 고추(터키인들은 구운 고추를 많이 먹는다)가 익고 있다. 

피데를 주문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히다. 터키의 피데는 피자의 원조 격이라는데 얇은 도우를 길죽

하게 늘여서 그 위에 소고기나 양고기에 양념을 섞어 버무린 것을 발라 화덕에 넣어 구운 것으로 갓

구워낸 피데의 맛은 담백하면서도 맛이 기가 막힌다. 이런 로컬 식당은 여러가지 양념의 가미가 적은

경우가 많아서 더욱 고소하고 담백해서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터키 요거트 '아이란'(요거트에 물을 섞은 것으로 터키의 상점에서 흔히 판다)을 곁들이면 더욱 좋다.

 

내려오는 루트는 피전 밸리의 정식 탐방로로 내려 왔는데, 도무지 저런 형태의 바위나 계곡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을 풍광들이 이어진다.

마치 거인이 여러가지 작업도구들을 이용해 깍고, 다듬고, 빗은 것 같다.

화산 폭발로 퇴적한 지층이 오랜 시간 비와 바람에 의해 깍여 나가면서 이런 독특한 지형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땀에 절은 몸을 씻고 우리는 오토가르에 가서 6월 3일치 앙카라행 버스 티켓을 사서 돌아왔다.

이 나라의 행정수도인 앙카라에 머물 생각은 없고, 그곳을 거쳐 샤프란볼루로 가기 위해서다.

이곳 괴레메에서 샤프란볼루로 한번에 가는 버스는 없기 때문이다.

당초에는 3일간만 카파도키아에 머물 계획이었지만 우츠히사르에서 내려다 본 카파도키아의 풍광은

3일로는 만족할 수 없을것 같아 이틀을 늘여 잡았다.

마론 스톤 하우스에 계속 있고 싶지만 우리가 잡은 숙소는 이틀후엔 예약이 다 차 있는 바람에 부득이

옮겨야만 했다. 마론 스톤 하우스에서 소개한 일본인이 운영하는 숙소 '엠네스 하우스'로 가서 미리

계약금을 조금 지불하고 예약해 두었다.

내일은 이곳 숙소에서 예약한 벌룬투어를 하는 날이다. 새벽 4시반에 일어나야 하고, 오후엔 그린

투어를 신청해 두었으므로 새벽부터 하루 종일 움직여야 한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마당에서는 젊은이들이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며 연방 까르르 웃고들 있다. 우리 시절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해외여행...... 요즘의 젊은이들은 우리가 경주에 수학여행 갈 때보다 더 수월하다.

그들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