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4)달과 별이 그려진 선홍빛 나라 터키

운농 박중기 2014. 6. 17. 21:16

2014. 5. 25(일) -셀축(에페스)-

 

옥상에 있는 숙소 식당에서의 아침 식사는 성의있고, 나름대로 정갈하다.

주인의 친절과 밝은 미소로 숙소의 불편함이 조금은 상쇄 된다.

 

터키의 숙소는 호텔(여기서는 오텔(otel)이라고 표기되는 곳이 많다), 펜시욘('팬숀'의 터키식 발음),

게스트 하우스, 하우스, 호스텔 등으로 표기 되는데 호텔과 펜시욘, 하우스 등은 표기만 다르지

별반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거의 모든 숙소가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경우가 되었건, 직접 방문하여 방을 잡는 경우가 되었건 기본적으로 아침식사

포함 가격인 것이다.

그러므로 숙소의 가격으로 잠자리만 단순히 평가할 수 없다.

터키의 대다수 숙소의 이러한 점은 우리 같은 여행자에겐 상당히 괜찮다.

낯선 여행지에서 아침식사를 위해 아침마다 나서야 하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대략 아침

식사는 간편하게 떼우는 경우가 많으므로, 일과를 나서기 전에 숙소에서 간편하게 한끼를 해결하면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터키의 아침 식사(호텔 등 숙소에서의)는 여느 나라들과 비슷하다.

빵과 치즈, 햄, 달걀, 오이, 토마토, 우유, 요거트, 꿀 등 잼류 몇가지, 올리브 절인것 등 이다.

터키 고유의 음식이 나오는 법은 없다.

 

식사후 우리는 가까운 세인트 존 처치(성 요한 성당)로 향했다.

예수의 12사도 중 한 명인 사도 요한이 생을 마무리한 곳으로 알려진 장소다.

벽과 기둥, 바닥의 모자이크, 성벽 문 등이 남아있다.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는 유적이니 기독교인

들에겐 의미있는 장소다.

교회의 서쪽 테라스 아래로 내려서니 이사베이 자미가 나온다. 초기 오스만 양식과 시리아 풍이 섞여

있다는 자미(이슬람 사원)는 높다란 담장과, 지금도 예배시설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참 매력적인 석조 건물이다.

 

점심 식사후 우리는 마침내 보고 싶었던 에페스 유적지로 향했다.

에페스 행 돌무쉬(가까운 거리를 주로 운행하는 로컬 미니버스를 돌무쉬라 부른다)를 타고 10분 정도

가니 에페스 유적지의 입구가 나온다. 

대단한 유적이다. 기원전 10세기 경 그리스의 이오니아인들이 건립한 식민도시 에페소스는 주변

국가의 흥망성쇄에 따라 스파르타, 페르시아, 페르가몬, 로마 등의 지배를 받았다고 하는데 우리가

보기엔 로마의 냄새가 짙다. 기원전 129년엔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어 로마 제국의 아시아 수도로

정해 질 정도였다 한다. 그 당시 로마 다음으로 손꼽히는 인구 25만의 대도시 였다 하니 그 규모가

당시로서는 상당했던 것이다.

대극장을 비롯, 대리석 대로, 유곽, 목욕탕, 주택지, 하드리아누스 신전, 도미티아누스 신전, 헤라

클레스 문, 니케 여신의 부조 등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시가지가 그대로 남아있다니 정말 굉장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이 거리를 쳐다 보았으면 하고 몇 번이나 생각한다.

대극장 유적에 이르자 그 규모와 분위기에 취한 서양인이 무대의 중앙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과연 노래 소리는 청명하고 분명하게 들렸고, 우리가 치는 박수소리도 명료하게 울린다.

시대를 풍미했던 로마인의 스케일과 상상력, 그리고 그 치밀한 도시 설계는 경외심 마저 느껴진다.

특히 셀수스 도서관 유적은 일부가 복원되어 있지만 비교적 많이 남아있어 참으로 아름답다.

거리 전체에 깔아놓은 대리석은 세월에 마모되어 부드럽게 빛난다.

그렇지만 뜨거운 햇빛 아래서의 유적 탐방은 꽤 힘들다. 5월 말 이지만 에게해가 지척인 터키 남부의 

기온은 한낮엔 여름 날씨다.

우리는 한꺼번에 몰려 들어오는 패키지 관광객을 피해 돌무쉬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오토가르 사무실에 들러 27일 출발 안탈리아 행 버스 티켓을 미리 사 두었다.

 

저녁은 이 호텔 건물 1층에 잇는 '오쿠무 쉬라르' 라는 식당에서 터키식 피자 '피데'와 터키식 떡갈비

구이 '교프테'를 먹었는데 아주 입맛에 맞다. 이 식당은 가이드 북의 '편집자 추천식당'이어서 한번

맛보자고 들렀는데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났다.

관광객을 별로 상대하지 않는 로컬 식당의 분위기로, 인테리어 등 꾸밈이 없는 소박한 식당인데

커다란 화덕에서 구워낸 피데와 교프테, 그리고 역시 화덕 구이 빵은 아주 훌륭하다.

그런데 음식값을 보고 놀랐다. 우리가 이스탄불과 셀축에서 여태껏 먹은 같은 음식값의 절반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여태껏 먹은 음식의 가격은 '관광객용' 인 것이다.

가격대비 어림없는 숙소의 가격도 '관광객용' 이다.

이스탄불과 셀축에서 지불한 한끼 식사의 가격은 대략 우리 돈으로 7-8천원 정도였는데, 이곳은

3-4천원 정도였으니까......

 

저녁 식사후 우리는 산책길에 나섰다.

노을이 지는 곳을 찿아 낮에 갔었던 '이사베이 자미' 근처에 가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고 있다.

무턱대고 사람들을 따라 자미 안으로 들어서니 플루트 소리가 온 자미안에 울려 퍼지고 있다.

플루트 소리는 앰프에 연결되어 높다란 자미의 벽 안에서 근사하게 연주되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가슴이 찡 하도록 멋있다. 아! 이런 곳에서 이런 환상적인 연주를 듣다니......

곡명은 알 수 없지만 아잔의 애조 띤 음색과도 닮아 있다.

10미터 정도 되는, 커다란 돌들을 쌓아 올려 만든 자미의 담장과 넓다란 정원, 솟아있는 미나렛,

히잡을 두른 여인네들, 로마식 기둥의 도열 등과 어울려 플루트 연주는 가슴을 쳤다.

이 멋스런 공간에서 울려 퍼지던 연주가 아쉽게도 끝나더니 연주자는 악기를 케이스에 넣더니

주위 사람들과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더니 떠나버린다. 너무나 아쉽다......

이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도 한동안 이 플루트 소리를 잊지 못할 것 같다.

 

한참을 이 멋진 자미안에 앉아 있다가 나오니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한쪽에서는 빵을 

나눠주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방울 모양의 튀김을 만들어 애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우리가 신기한 튀김기계를 보며 사진을 찍자 행사중인 청년이 튀김을 그릇에 떠 오더니 우리

에게 건넸다. 달고 쫀득한 식감의 튀김이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고, 이 이슬람 교도들의 예배 행사 속에서 우리도 덩달아 행복했다.

참 따뜻한 사람들이다. 종교? 인종? 이념? 그런건 그곳엔 없었다. 행복과 우애와 친밀감만이

그곳에 가득했다.

 

우리가 이사 베이 자미에서 비탈진 길을 내려가자 한무리의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 들었다.

카메라를 장난스럽게 들이대자 제각기 우쭐한 포즈를 취한다.

계집아이 하나는 아내에게 이름을 묻고는 미 - 네! 하고 복창을 하고는 냅다 달려 가서 카메라를 

갖고 와서는 우리를 찍어 대더니 우리말을 어디서 배웠는지 '사랑해요'하며 손을 하트 모양으로

들어 보인다. 아이들이 상당히 밝다. 어른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들이다.

덩달아 행복해진 우리는 저녁 산책을 나오길 잘했다고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