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2)달과 별이 그려진 선홍빛 나라 터키

운농 박중기 2014. 6. 15. 17:13

2014. 5.23(금) -이스탄불-

 

낯선 곳에서의 첫 밤이라 그런지 일찍 잠이 깨고 말았다.

11시간 가까운 비행과 시차로 인해 리듬이 엉망이 되고 말았는데 잠이라도 푹 잤으면 좋으련만......

숙소에서 가까운 술탄 아흐멧 박물관(하기야 소피아).......

1400년을 버텨 온 고대 건축 기술의 걸작이라고 불리우는 건물이다.

기원후 537년에 성당으로 지어졌다가 1453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 되었다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한다.

처음 건물이 완공될 때 당시의 황제가 '완공을 허락해 주신 신께 영광을!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노라!'고 큰 소리를 쳤다고 하는데 그럴법 하다.

소문대로 대단한 공간이었는데, 특히 바닥이나 벽에 깔고 붙힌 대리석의 크기가 우리네 돗자리 두개

정도를 깐 넓이라 그 스케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수많은 세월 동안 사람들의 어지러운

발걸음에 너무도 보기 좋게 닳아서 아름답게 빛난다.

건축의 넓이와 재료들의 과감한 스케일은 직접 보지 않고는 가늠키 어려울 것 같다.

기독교인들이 만든 모자이크 벽화를 뒤늦게 점령한 이슬람 교도들이 덧칠을 해 버려 아예 보이지

않던것을 현대에 와서 일부 복원한 것을 보니 애초에 기독교인들이 만든 당시의 벽화를 정말 보고

싶다. 대단히 화려했을 벽과 천정들을 이슬람 교도들이 망쳐 놓은듯 하다.

 

박물관의 한켠에서 잠시 쉬다가 선글라스를 잃어 버렸다. 남은 여행기간 피로한 눈을 생각하니 난감

하다. 쉬던 곳을 다시 가 보고,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어지러운 인파속에서 찾는다는것 자체가 무리다.

거의 포기를 할 즈음 한무리의 박물관 경비원들이 보였다. 그 중 한명이 뒷짐을 짚고 동료들과 대화

중인데 그의 손에 선글라스가 들려있다. 내 것인지 알 순 없지만 다가가 그에게 내 선글라스를 잃어

버렸는데, 습득물 보관소가 어디 있냐고 물으니 그가 제 손에 들려있던 선글라스를 들어 보인다.

자세히 살피니 내 것이 맞다.

이 선글라스는 2년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라운딩 여행때에 5천미터가 넘는 쏘롱라 패스를 지나

묵티나트로 내려 오다 잃어 버렸던 것을 400미터나 거슬러 올라가서 기어코 찾았던 그 물건이다.

그 여정중에 가장 많이 걸었던(그날 우리는 12시간을 걸었었다) 날이라 체력 소모가 많았는데, 그 

선글래스를 찾으려고 2시간 넘게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 찾았던 것이라 꽤 애착이 가는 물건이다.

그 물건을 이번에 또 되찾았다는게 참 신기하다.

 

술탄 아흐멧 박물관을 나와 예레바탄 지하 저수조, 톱카프 궁전, 귤하네 공원, 시르케지 역, 갈라타

다리를 거쳐 숙소로 돌아왔다. 첫날부터 너무 강행군을 했다.

내일은 이스탄불을 일단 벗어나 셀축으로 향하기로 했다.

11시간의 버스 여행을 해야하니 각오 단단히 해야 한다. 일단 숙소에서 배낭을 꾸리고 트램을 타고

오토가르(터키에서는 시외버스 정류장을 오토가르라 부른다)까지 가야 한다.

숙소에 붙어있는 여행사에서 시외버스 티켓을 예매했다.

터키는 국토가 남한의 8배 정도되는 큰 땅인데, 특이하게도 기차가 발달해 있지 않아 거의 대부분

여정을 버스로 움직여야 한다.

 

저녁으로 먹은 교프테 맛이 상당히 좋다. 이 교프테 맛 때문에 이제 부터 20일 동안 먹어야 하는 

터키 음식에 기대를 가질 정도다. 1920년에 문을 열었다는 교프테 식당은 블루 모스크 맞은 편에 

있었는데, 여행사 직원이 추천해 찾았는데 과연 추천할만 했다.

터키하면 떠오르는 케밥의 일종인데 소고기나 양고기, 닭고기등을 잘게 다져 뭉쳐서 숯불에

구워내어 절인 고추와 매콤한 양념과 같이 먹는, 우리네 떡갈비 같은 음식이다. 터키의 어딜 가나

교프테 집이 즐비하다고 한다.

흔히 보듯 고기를 겹겹이 쌓아 꼬챙이에 꽂아서 불에 익혀 커다란 칼로 편육으로 잘라내는 케밥도 

있고, 꼬치에 꿰어 구워내는 케밥, 떡갈비 처럼 뭉쳐서 구워내는 케밥 등 터키 음식점 어디서나 

파는 일반적인 메뉴라고 한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세쌍의 걸인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이곳의 걸인은 혼자서 구걸하는 경우가

없다. 부녀 처럼 보이는 쌍과, 남매 같이 보이는 쌍이 거리에 누더기를 두르고 앉아 있는 것이다.

특히, 아버지와 딸 같은 쌍이 둘이나 있었는데 그들의 누추함 보다도 기묘한 처연함이 눈길을 잡았다.

아버지가 딸을 데리고 구걸에 나섰다는 것이 웬지 처연함을 더한다.

어디서든 걸인은 있게 마련이지만, 체코에서 보던 몇몇 걸인은 모두 다 남자 혼자였었고, 태국에서도 

남자아이 몇 이었고, 인도에서는 집단으로 있었었다.

그렇지만 여기 처럼 부녀로 보이는 걸인을 본 적은 없었다.

사람과 물자가 넘쳐나는 이스탄불의 구 시가지 중심 술탄 아흐멧 지구의 걸인은 혼자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