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8일
맑은 방비엥의 아침, 오랜만에 푹 잔 탓에 기분이 맑고 가볍다.
잠이란 육신을 다시 살리기도 하지만 뇌를 차거운 냇물에 담궈 씻어 준다는 느낌이다.
계획 했던대로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지금의 숙소는 비싸기도 했지만, 이번 여행에선
최대한 여러 형태의 숙소를 경험하여 자주 다니게 될 라오스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쌓기로 처음부터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긴 백전의 겨울을 날 좋은 장소가 없을까를 늘 물색해 왔는데 여기는 겨울을 지내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로 여겨진다.
짐을 싸서 준비한 다음 쌀국수를 먹기 위해 나가다가 유달리 외국인 여행객이 없고,
현지인들이 많은 식당을 몇일전부터 눈여겨 봐 둔 터라 주저없이 들어갔다.
간판은 없고 메뉴만 영어로 나열해 놓았다.
역시! 짐작대로다. 비엔티엔에서 수차례, 이곳 방비엥에서 먹은 쌀국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면이 매끄럽고 굵은데다 국물맛이 일품이다.
이 가게 역시 예외없이 중년의 어머니와 딸이 운영하고 있었다.
감탄하며 먹고난 후 그들에게 엄지 손가락을 세워 주었다.
이곳은 모든 음식 가격이 종류별로 똑 같은데 아마도 상가 번영회 같은 곳에서 가격
담합을 한 것 같다. 중심가든 변두리든 마찬가지다. 맛사지 가격도 마찬가지.
어찌보면 뭐 합리적인 것 같지만 변두리 상인들의 입장에선 환영할 것 같진 않다.
여행객들이 동네 중심에 들끓는데 가격이라도 싸야 외곽으로 나올텐데 그런 면에서
불리할 것 같기 때문이다. 지극히 자본주의적 경쟁개념인가?......
숙소를 옮기기로 작정하였으므로 눈여겨 보아 둔 'Maylay 게스트 하우스'로 갔다. 묵고
있는 숙소에 비해 1/3 가격인 5만낍. 우리 돈으로 7천3백원 정도. 방을 구경하니 전
숙소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고 더 깨끗한데다 주인장이 정겹다. 다만 창밖의
조망이 가려지고 발코니가 없는 정도일 뿐이다.
짐을 정리하고 공동 발코니로 오니 전망이 좋고 분위기가 그만이다. 오늘은 종일
쉬기로 했으니 책과, 음악을 들을 휴대폰, 그림 그릴 수첩등을 챙겨 발코니에 앉는다.
적당한 기온과 산들바람. 멋진 조합이다.
스케치 한 장을 완성하고 음악을 듣고 앉았으니 낙원이 따로 없다.
'소향'의 노래는 여기서도 잘 어울린다. 예민한 감각탓에 가끔은 센티멘탈에 빠지는
자신이 다소 우스꽝스럽기는 하나 뭐 나쁠것 없지 않은가. 감각이 무디어 왠만한 것엔
감흥을 느끼기 어렵다면 좋을게 없잖은가. 나는 내 예민한 감각과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다소 센티한 면이 싫지 않다. 주책스럽다고 퉁박을 주면 뭐 할 말이 없지만......
이 분위기를 깨는 존재가 등장한다.
아까부터 객실을 들락일때 본 녀석인데, 목소리는 남자, 목구멍 아래는 돌출, 분명
남자인데...... 잘룩한 허리, 가슴은 풍만, 분명코 여자...... 트랜스젠더다. 태국의
공연장에서 본 적이 있는 그런 녀석이다. 이 녀석과 얘기가 시작됐다.
먼저 말을 건 것은 녀석이다. 녀석의 입술에는 분홍 립스틱이 칠해져 있고, 눈에는
눈화장이 진하다.
"어디서 왔어?"
"한국에서, 너는?"
"비엔티엔에서"
"여기 언제 왔어?"
"어제 왔어. 그런데 뭘 그렇게 적는거야?"
"일기를 쓰고 있지"
"'컵 짜이'를 한국말로 뭐라고 해?"
"'감사합니다'라고 하지"
"'싸바이 디'는?"
"'안녕하세요'라고 하지"
"라오스에는 언제 왔어?"
"5일째야"
"방비엥은?"
"3일째야"
"맛사지 받아 봤어?"
"받아 봤지, 왜?"
"괜찮디?"
"그럭저럭"
"나 맛사지 잘 해, 여기 방비엥 맛사지와는 비교도 안돼, 맛사지 받아 볼테야?"
"......"
"여기 방비엥 가격과 똑 같이 해 줄께, 네 방에서"
아하! 이 녀석 이른바 출장 맛사지사에다 어쩌면 다른 짓까지도...... 계속 담배를 피워
대는 통에 영 괴롭다.
"나 맛사지 생각 전혀 없어!"
"네 방에서 해 준다니까, 가격도 깍아줄께"
"필요없어, 나 그냥 내버려 둬"
녀석은 눈만 껌벅껌벅 하더니 담배 한개피를 더 물고는 가지도 않고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보고 앉아 있다. 아무래도 내가 일어나야 겠다......
분홍 립스틱에 눈화장, 얼굴은 남자, 몸은 완벽한 여자, 그 묘한 언밸런스가 살짝 당황
스럽다.
뭐,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으니 시비 걸 일은 아니지만 인간이란 '평범하지 않음'에
관해서는 별로 관대한 것 같지 않다. 왜 일까? '익숙하지 않음'과 비슷한 '낯선 무엇'에
대한 당혹감과 비슷하리라.
"이봐, 그렇게 살지마, 이 따위 방법 말고도 살아 갈 방법은 있잖아!" 하고 싶지만 저런
모습을 하고서 '살아 갈 방법'이 많기는 할까?
평등주의자임을 은근히 자처하는 나도 살짝 당혹스러운데, 저런 친구를 많은 이들이 별
선입견 없이 받아 들이긴 사실상 힘들 것이다.
그러니 저 친구도 입에 풀칠하려면 선택할 수 있는 몇가지 '방법'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저 친구가 같은 3층에 있으니 자주(그래봐야 오늘 밖에 없지만) 부딪치긴
하겠다.
점심은 몸보신(?) 한다고 라오스식 참쌀밥에 소고기 구운 것 한 접시, 이른바 메뉴에는
'라오 스테이크'다. 고기는 평범한 소고기 맛인데 찹쌀밥이 아주 입맛에 맞다.
쫄깃하고 씹히는 질감이 좋다. 밥을 입안에 넣고 씹으면 우리네 쌀밥을 씹는 시간의
3배 정도는 걸린다.
방비엥의 먹을거리라는 것이 철저히 여행객 상대이다 보니 국적불명, 재료불명, 명칭
불명으로 영어식 메뉴만을 보고 주문 했다가 피식 웃음이 나오거나, 에게, 이게 뭐야!
라든지, '이야, 괜찮은데!' 등으로 도무지 예측 불가하므로 그야말로 복불복일 경우가
90%다.
내일은 이번 여행의 중심으로 삼은 루앙프라방 행.
숙소 입구의 여행사에서 미니 버스를 7만낍(1만원 정도)에 예약해 두었다. 아침 9시 출발,
3시에 도착한다 하니 6시간 정도 걸린다는 얘기다.
지도의 거리를 봐선 얼마되지 않으나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나가는 길이라 그렇다는 설명
이다.
점심을 차 안에서 해결하려면 미리 아침에 준비해 둬야겠다. 중간에 식사 시간을 주겠지만
중간 휴게소의 음식이란게 뻔하니 검증된 '길거리 얼굴 까만 아주머니표 스프링 롤'과
라오 맥주 한 통 사가지고 가야겠다.
분홍 립스틱의 맛사지 녀석은 글을 쓰고 있는 공동 발코니로 또 오더니 날 보고는 씩
웃고는 "심심하지 않아?" 한다. 아니 이 녀석은 날더러 안녕하세요가 뭐냐, 감사합니다가
뭐냐고 묻던 녀석 아냐,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한국인들을 꽤 접촉해 왔던것이 분명한데
나에게 말을 걸려고 알고 있는 말을 물었던 것이 분명하다.
내가 별 대꾸를 하지 않자 돌아서 가버린다. 주인 아주머니에게서 뭔가 주의를 받은게
있는 눈치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이러 이러한 녀석이 있던데 여기 종업원이냐?'고 했더니 주인 아주
머니는 종업원이 아니고 투숙객인데 그 친구가 맛사지 운운 하면 '절대 안한다!'고 하란다.
주인 아주머니의 뉘앙스로는 별 좋지 않은 암시가 분명해서 '알았다'고 했는데, 이 녀석을
아주머니에게 처음에 설명하는 과정에서 진땀을 흘려야 했다.
트랜스젠더를 알아 듣지 못하고, 영어를 못하는(나 보다 더!) 그녀에게 나는 그녀가 내미는
노트에 얼굴은 남자를 그리고, 몸은 여자를 그려 'She say, massage!' 라고 썼더니 그녀는
이 그림을 보더니 단박에 알아 들었다. 나는 천재다! (히히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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