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4)라오스 홀로 여행

운농 박중기 2013. 11. 17. 12:28

 

2013년 10월 26일

 

아침에 일어나니 6시, 다행스럽게도 잠은 그럭저럭 잘 잤다.

마당에 나서니 주인댁 할머니가 아침을 짓고 있다.

숯불 화로위에 물이 담긴 쇠그릇을 올리고 그 위의 대바구니에 찹쌀을 씻어 얹어

김으로 쪄서 밥을 하는 방식이다. 참 정겹고 소담스런 방식이라 한동안 화로 곁을 

떠날 수 없다. 하지만 정작 할머니는 카메라를 든 나의 존재가 썩 달가운 것은

아닌것 같다.

종업원에게 저 밥으로 아침을 줄 수 있느냐니까 부끄럽게 웃으며 그러라고 한다.

이 집은 손님에게 식사를 제공하지는 않는 집이지만 화로 곁을 떠나지 않는 식객의

청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테이블 위에 차린 조반은 조그만 대나무 그릇(뚜껑이 달린)에 담긴 소담스런 찰밥과

말린 소고기 육포를 대나무에 엮은 것 몇점, 우리네 젓갈과 비슷한 양념장 한 종지가

전부다.

우리네 기준으로 봤을땐 어이없는 상차림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그 앙증맞은 조반을

대하고 보니 자꾸만 배실배실 웃음이 나오면서 자그마한 행복감이 피어 오른다.

(나중에 보니 이런 형태의 상차림이 라오스인들의 평소 식사 형태라고 한다. 여기에

약간의 채소가 땅콩잼과 곁들여진다)

찹쌀밥은 쫀득거리면서도 고소하고, 말린 육포는 잘근거리며 오래도록 씹힌다.

양념장은 아주 매워 큰 동전만한 종지에 담겼지만 그 10퍼센트도 먹을 수 없다. 

그렇지만 너무 행복한 아침상이다.

 

9시가 넘어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숙소앞에 미니 버스가 도착, 몇 군데 숙소를

거쳐 여행객들을 태운후에 방비엥(현지 발음으로는 '왕위앙')으로 향한다.

젊은 기사가 운전하는 차는 포장된 이 나라 유일의 하이웨이를 사납게 질주한다.

풍경은 평이하고 다시 이 길을 달린다면 지루할 것 같다.

3시간을 달린 끝에 마침내 '작은 계림'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특이한 지형의 산세가

나타난다. 방비엥이다.

무척 배가 고파 '루앙프라방 베이커리'에 들어가 와구와구 집어 삼킨다. 평소에

커피를 마시면 속이 쓰렸으나 왠지 여기선 괜찮다.

 

숙소는 강변에 위치한 '그랜드 뷰 게스트하우스, 2박에 3십만 낍. 우리 돈으로 4만

5천원 정도. 여기 기준으로는 비싼편인 숙소다. 에어컨이 있으면 비싸고, 천정에

팬만 있으면 조금 싸다. 요즘은 에어컨이 필요없는 계절인데 조용한 방을 달랬더니

에어컨이 있는 트리플 룸을 준 탓이다. 혼자 온 나그네에게 필요없는 에어컨에,

더블침대 1개, 싱글침대1개가 있는 방을 주다니......역시 온 동네가 외국인 여행객

으로 채워져 있는 동네답게 장삿속이 보인다.

나중에 같은 숙소에 묵고있는 여행객에게 물어보니 더블침대가 있는 방을 2박에

15만낍을 지불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방을 배정받고 올라가 방문을 여는 순간 절묘한 정경이 창밖에 펼쳐진 것을 

보고는 그런 푸념이 단번에 상쇄되었다. 게스트하우스 이름 그대로다. '그랜드 뷰!'

여태껏의 여행들에서 보기드문 방을 차지 했다.

3십만 낍이 전혀 아깝지 않다. 창밖에는 특이한 방비엥의 산이 떡하니 펼쳐졌고 강이

바로 아래를 흐르고, 운무가 산자락을 휘어감고 있어 그야말로 선경이다.

 

자전거를 빌려 동네 구경에 나섰다. 방비엥은 그야말로 함양읍의 1/3 정도되는 작은

시골 동네인데 토착인구보다는 유동인구인 여행객들이 더 많은 동네다. 토착민들은

여행객을 상대로한 숙박업, 요식업, 임대업, 각종 투어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그야

말로 완벽한 여행객의 동네였다.

'한국 김치'라는 상호에 지나가다 발길을 멈췄더니 낯설지 않은 한국인이다. 나와 

비슷한 연배인 서글서글하고, 우락부락한 인상과는 딴판으로 시원한 성품의, 이주 

3년차로 한국식품 도매업을 한다고 했다.그와 잠시 대화를 나누고, 그의 안내로

비엔티엔의 절에서 만났던 대구 아가씨가 정보를 주었던 '칸 아저씨네 오토바이 가게'

를 찿았다.'아저씨'라는 지칭과는 달리 젊은 청년이다. 이제 이주한지 1년여 밖에 되지

않았단다. 그도 역시 친절하다. 홰외에서 만난 한인들에게서 대부분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라오스에서는 다르다.

자전거에 달린 프라스틱 짐칸이 부숴져 달랑거리고 있는것을 종업원을 시켜 고쳐 

주고는 이런 저런 방비엥의 정보를 알려준다.

그의 조언대로 자전거를 타고 하이웨이 쪽으로 나가 옛 공항 활주로 쪽으로 가니 

계림을 닮은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넓은 활주로 공터를 자전거로 돌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은 인근 식당에서 쌀국수를 먹었으나 비엔티엔과는 달리 내용물이 부실하여 거리 

음식인 스프링롤을 샀는데 훨씬 맛있고 내용물도 충실하다. 작은 체구에 검은 얼굴로

환하게 웃던 스프링롤 아줌마의 단골이 될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후 벼르던 전신 맛사지 가게에 갔다. 1시간에 우리 돈으로 7천 3백원,

바지를 벗으라고 하더니 티셔츠와 팬티바람인 중늙은이의 맛사지 소녀는 아주 작은

체구에 동글동글하게 생긴, 역시 작은 목소리의 아가씨다. 아가씨라기 보다는 우리네 

기준으로 본다면 중학생 정도로 보인다.

다리부터 시작해 전신을 1시간 동안 받고 팁을 조금 주고 나왔다. 개운하다.

 

이들의 삶을 엿보면서 이 나라의 '사회주의'를 생각했다. 몇몇 큰 건물 앞 마당에 라오스

국기와 낫과 망치가 그려진 붉은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봤지만 그 외는 (하긴 그 외를 

볼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익숙한 자본주의의 사회 모습밖에 볼 수 없다.

카트만두에서 처럼 이 나라 사람들의 편안한 모습에서 내 나라 꼴통보수들이 말하는

'좌익'의 사나운 기운은 물론 없다. 

이들은 적어도 내가 보기엔 경쟁에 내몰리지 않고 불확실한 미래에 전전긍긍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적어도 그런 기운을 조금이라도 읽을수 없었다. 내 나라 사람들의 얼굴들에서는 그것이

바로 읽혀지지만......

 

게스트하우스 운영하는 부모를 둔 자식은 부모를 돕다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거리의

작은 이발소를 하는 부모와 쌀국수 가게를 하는 부모를 둔 자식은 역시 부모를 돕다가

이발소와 쌀국수 가게를 하면 된다는 식으로 보인다. 대개의 가게에서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할머니와 손녀들이 같이 일하는 식이다.

우리네 처럼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의 자식이 대학의 경영학을 공부하고, 목수의 아들이 

대학의 법학을 공부해서 신분상승을 꾀하는 것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예외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런 분위기는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면 소위 말하는 '행복의 질'은? 당연히 라오스가 우리보다 우위다. 

'피터지는 경쟁사회'인 우리가 그들보다 절대 우위가 될 수 없다.

경쟁에서 승리한 자는 짜릿한 행복을 맛보겠지만, 우리네 사회의 '승리의 자리'는 바늘

구멍 보다 작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나머지 낙오자, 또는 탈락자, 소위 말하는 '루저'는?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감으로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극소수의 이긴자와 다수의 탈락자가 양산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 '상대적'이라는 개념이 문제다.

라오스는 '상대적'이라는 개념이 많은 부분 약화된 사회로 보인다.

국민소득은 우리네에 비해 형편없고 가난하지만 우리네 처럼 사나운 얼굴도, 긴장되어 

경직된 얼굴도 보기 힘들다.

이방인이 말을 걸면 일순 긴장하다가도 빙긋 웃으면 금방 그 예의 순진한 표정으로 활짝 

웃어주는 사람들......

아직 이르지만 거리에서, 식당에서, 숙소에서, 그리고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그들이 

갖고 있는 느긋함과 만족감이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인......

이 나라를 떠날때까지 이런 느낌을 지속적으로 갖기를......

 

내일은 뱃놀이를 할까, 아니면 느긋하게 동네와 강변을 산책하며 쉴까. 중늙은이의 체력이 

이런 변화무쌍한, 그리고 타관에서의 긴장된 일상을 버텨낼까를 염려하는 탓도 있어 하루

푹 쉴까도 생각해 본다. 내일 아침 일어나서 결정하기로 하자.

뭐, 이 나라 사람들의 느긋함을 흉내 내 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것이다.

떠날때 시원찮았던 몸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한가지 게름칙한 것이 있다면 '평등주의'를 주창하는 나 자신이 돈을 지불하고 딸 보다

어린 아가씨의 전신 맛사지를 느긋하게 즐겼다는 사실이다. 별 수 없는 부르조아의

속성을 아무런 여과없이, 가책없이 내 보였다는 사실이 자꾸만 게름칙하다.

팁까지 쥐어주면서 어깨를 토닥거렸다는게 마치 배나온 농장주가 노예에게 은전이라도

베푸는 흉내를 낸 것이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이 이는것이, 나 라는 인간은 천상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빠리 과학 아카데미 원장이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에게 보낸 탄원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똑 같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평등개념'이 창안되어야 했던 것이며, 인간이

모두 같은 이데올로기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인권개념'이 창안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 말을 긍정한다.

 

밖에선 이웃 레스토랑의 음악소리가 시끄러운 정도는 아니나 들린다. 잠자리에 들기전에

그쳐 주었으면......

적막강산에서, 완벽한 고요에서 잠들기를 12년, 이제 작은 소음에도 잠들기 어려운 탓이다.

잠자리에서 엘리위셀의 말을 중얼거린다.

"단 한 사람이라도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 있는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다"

 

(계속)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6)라오스 홀로 여행  (0) 2013.11.19
(5)라오스 홀로 여행  (0) 2013.11.18
(3)라오스 홀로 여행  (0) 2013.11.14
(2)라오스 홀로 여행  (0) 2013.11.13
(1)라오스 홀로 여행  (0) 2013.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