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28)중늙은이의 히말라야 일기

운농 박중기 2013. 7. 29. 15:06

3월 16일  (네팔의 링컨)

 

새벽 6시에 일어나 하늘부터 살피니 구름이 꽤 있다. 미뤄둔 사랑콧에 가기로 마음먹은 날이다. 그런데 좀 불길하다. 이즘에 계속 저녁나절 비가 오는 바람에 사랑콧 행을 미뤄 왔는데 아침에 구름이라니...... 오후에는 무조건 설산들이 구름에 가려버리니, 가려면 아침 일찍 가야 한다. 밖을 나가 사랑콧 쪽을 살펴보니 역시 구름...... 야, 이거 어째 좀 그런데? 그렇지만 우리가 출발해서 전망대까지 가는 사이에 구름이 걷히지 않을까? 모를 일이야.......

 그렇지만 맘먹은 대로 일단 출발해 보기로 하지 뭐.

 우리는 간단한 세수를 마치고 6시 30분에 출발했다. 올드 바자르의 빈댜바시니 사원(Bindyabasini Mandir)까지 새벽엔 버스가 없어 택시를 탔는데, 기사는 빈댜바시니 사원까지 가자는 우리 주문에 딴청을 부리며 자꾸 사랑콧에 가지 않을 거냐고 묻는다.

 이 새벽에 외국인이 타서는, 사랑콧을 오르는 입구인 빈댜바시니 사원을 가자고 하니, 자기 차로 사랑콧 까지 데리고 올라가서 한 시간쯤 주차장에서 대기하다가 우리를 다시 레이크 사이드까지 데려주고 800루삐 정도의 새벽 수입을 올렸으면 하는 게 강력한 희망사항인 것이다. 우리는 사원 앞에서 2시간 정도 걸어서 오르고 싶은 것이고...... 그 비슷한 낌새라도 주면 이 양반은 끈질기게 우리를 설득하려 들것이고, 우리는 콩글리쉬로 그 제안을 합리적으로(!) 거절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단호하게 '빈댜바시니 사원만 보러 왔다'고 했다.

 요금을 지불하고 내려도 미련이 남은 이 양반은 우리의 뒷덜미를 핥고 있다.

 우리는 단호한 걸음으로 사원의 계단을 올랐다. 그제야 단념하고 그는 택시를 돌린다. 내친김에 사원에 올랐으나 동네 가운데 작은 힌두사원이 뭐가 볼게 있겠는가.

 우리는 기대에 차서 사랑콧을 차도와 지름길을 번갈아 2시간을 올랐다. 그렇지만 웬걸, 구름은 점점 더 모여들고 걷힐 기미가 없다. 전망대 주변은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아마 사랑콧 정상에 설치된 방송용 송신탑 때문으로 보인다.

 전망대에서 보는 포카라 시내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크고 아름답다.

 사랑콧에서 흔히 촬영된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마차푸츠레, 히운출리, 람중히말 등이 늘어선 히말라야 연봉들의 사진이 네팔에서 많이 판매되고 있고 우리집 이층에도 한 장 붙어있지만, 연봉들의 바로 아래 펼쳐진 헨자(Hyangja) 마을의 정경 또한 침하된 지형에 흐르는 세티 건더키 강과 함께 일품이다.

 포카라에서 보면 연봉들은 바로 시(市) 건너편 골짜기에 병풍처럼 서 있지만, 그 건너편 골짜기가 보이는 곳에 가면 연봉들은 다시 멀찌감치 물러서 앉아, 저 멀리 골짜기 뒤편에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어쨋든 우리는 사랑콧에서 와당탕 박력있게 서 있는 연봉들을 보겠다는 희망을 접고 사랑콧의 레이크 사이드에 면한 능선을 타고 하산했다.

 하산 도중, 레이크 사이드가 눈앞에 빤히 보였지만 길은 여러갈래다. 우왕좌왕 하다가 마침 짐을 지고 올라오는 청년에게 길을 물으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는 길을 조금씩 헤치고 내려가면서까지 하산 길을 가르쳐 준다.

 네팔리들은 정말 온순하고, 조용하며, 인사성 밝고 좋은 표정을 지닌 사람들이다. 무엇인가 물으면 친절하고 성의있게 답한다. 남녀노소 구분이 전혀(!) 없다. 한 달여 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고, 장소를 물어보고 했지만, 단 한 사람도 귀찮은 표정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물어 주는 것이 반갑고 즐겁다는 얼굴이다.

 네팔리들의 생활방식이나 생각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것도 무지 많지만, 그들이 친절하고 밝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적어도 우리와 비교한다면 15배는 그럴 것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외국인에게만 그런 것 같진 않다. 그들끼리의 인사나, 초면의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붙임성은 트래킹 때 치린과 현지 주민들과의 태도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런 면에선 우리는 네팔리들의 1/15 이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이 나라는 묘한 '방심'을 이끌어 낸다. 방심이란 알다시피 '경계심 없이 마음 놓은, 혹은 마음의 릴렉스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아무튼 그런 것이다. 길을 걷던, 택시를 타건, 이 사람들과 가벼운 얘기를 나누면 '방심'한 상태가 된다. 그만큼 마음이 편하다는 얘기다.

 여행 가이드북에 흔히 있는 얘기, '이곳에서는 이러이러한 속임수가 있으니 주의하기 바람' 또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러이러한 꾐이 있을 수 있음' 또는 '버스속이나 어디어디에서는 남의 것을 노리는 치가 있음' 이러한 것은 적어도 이곳에선 별로 해당없는 얘기 같다.

 치안문제? 국왕 별장 주변에 총 들고 서 있는 군인이나 경찰, 길가에 바리케이트 치고 경계근무중인 군인들 외에 우리에게 치안의 불안을 주는 요소는 없었다. 아직까진......

 물론 마오이스트를 경계하는 경찰과 군인들이 총을 꼬나들고 초소나 경찰서, 혹은 거리에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로서는 이들에게서 전혀 위압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없었는데, 왜냐를 생각해 보니, 이들의 표정과, 어찌 보면 군기 빠진 복장이나 태도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의 표정을 보면 마치 산비둘기 사냥하러 대나무 밭에 나온 소년 같은 표정들이다.

 또한 칼날같이 옷의 주름을 세우고 버클이나 군화에 반질반질 윤을 낸 우리네 헌병 복장과는 거리가 먼데다, 지나가는 민간인을 응시하는 눈빛도 우리네 헌병의 눈빛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또한 이들은 자기네 시민들의 가방이나 보따리 등을 수시로 검색하는데, 검색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어떤 긴장감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뭐가 들어 있나 한번 볼까요' 와 '한번 보세요. 재미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니까요.' 정도다. 외국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노터치다.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절대 검색이나 검문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나라의 요즘 정정이 상당히 불안한데도 불구하고 '방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외교통상부가 발효한 '여행 주의(注意) 국가'로 네팔을 지정한 이유를 모를 지경이다. 하지만 몰라...... 지네들 끼리 총질 하다가 유탄이 내 엉덩이에 박힐지는......

 

 아침에 사랑콧에 오르면서 한 소녀가 교과서 같은 책을 크게 읽으며 집 앞에  있는데(여긴 그런 애들이 많다) 미네가 힐끗 보더니 '링컨이네?'한다.

 "링컨? 미국 대통령?" 

 "그래요. 미국 대통령!"

 미국의 링컨은 여기 히말라야의 왕국 네팔의 교과서에도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얘! 링컨이 누군데?"

 "미국 대통령!"

 뻔한 것을 왜 그 애에게 물었지? 혹시 읽긴 읽었는데 누군진 모를거라고 기대하며 물었던 게 아닐까?

 미국을 하나의 합일된 국가로 이끌고, 노예해방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는 링컨, 케티즈버그 연설로 민주주의의 정의를 얘기한 링컨이 세계의 위인으로 추앙되고, 그런 그가 다른 나라의 교과서에 등장하여 후세 어린 싹들에게 교훈을 준다면 뭐, 불만을 가질 것은 없잖아...... 그렇지만 우리의 김구 선생이 네팔의 교과서에 나오진 않을 것이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그러한 나라라고는 도통 여겨지지 않는 나라에서 링컨을 들으니 참 생뚱맞고, 히말라야 산기슭 아이의 입에서 링컨을 들으니 미국이라는 나라의 광활한 영향력이 새삼 무섭고 그렇다......

 하긴 뭐, 좋잖은가? 왕정의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있고, 미국은 링컨을 통해 위대한 나라가 되고 있으니......

 웬 심통이냐구? 아니다. 오늘 아침 먹은 마른 빵이 배를 살살 아프게 할 뿐이다.

 

 오후엔 호텔에서 가까운 레스토랑 '콘체르토' 에서 점심을 먹었다. 포카라의 음식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세계화'가 이루어져 있어서 식도락가에게는 좋은 시식의 기회를 제공하겠지만 한국의 보통사람인 우리에겐 참으로 곤혹스럽고 낭패여서 네팔에 온지 한 달이 넘은 내가 아직도 여유를 부리지 못하는 유일한 일과가 식사시간이다.

 대개 외국인이 네팔에서 음식을 접할 기회라는 것이 카트만두의 외국인 거리 타멜에서가 아니면, 이곳 포카라인데, 이 두 곳의 음식점들은 거의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어서, 토속 네팔리 음식을 시식하고자 하는 개성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 두 곳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짧은 일정이나, 트래킹 전후 며칠 머무는 정도라면 크게 상관할 것 없으나, 우리처럼 제법 장기체류자라면 문제가 된다. 우선 한국의 보통사람의 경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단한 토속적 음식 애호가들로서, 밥을 비롯해 면류, 국, 밑반찬, 육류, 된장국, 자장면 등 뭐, 다 알다시피 그런 음식들 아닌가. 더구나 이런 한국적 음식외의 다른 음식을 3일간만 먹고 나면 '니글거린다'거나 '김치, 고추장 생각난다'거나 '시원한 된장국......' 등등 우리 음식타령을 해 대는 민족인데, 어지간히 이런 것을 극복한 외국출장이 잦은 비지니스맨이던지, 샐러리맨도 외국에 장기체류 시는 같은 타령을 한다고 들었다.

 어쨋든, 이런 비지니스맨이나 샐러리맨도 아니지만 음식에 관해서는 별로 특이한 토속 한국음식 선호도가 없는 나에게도 애로사항이 있긴 마찬가지다.

 이곳에는 네팔리 토속음식을 비롯해 이탈리언, 인디언, 티베탄, 재패니즈, 차이니즈, 또 무슨 콘티넨털 어쩌고 하는 것 등으로 대별되고, 음식의 이름 또한 엄청나게 많아서 한국의 양식당에서 1년에 한두 번도 식사하지 않는 보통사람인 내가 이 음식의 이름을 어떻게 아느냐, 이게 문제인 것이다.

 어찌어찌 해서 주워들은 모모(만두)나 라자냐(흐물흐물 하지만 맛있고, 내가 보기엔 이빨이 성치 않는 노인들이 먹기에 좋은) 같은 것은 또 그렇다 쳐도 온갖 음식들과 그것들의 주재료, 부재료, 소스 같은 것을 알 방법이 없다.

 그래서 요즘은 레스토랑에 가면 메뉴를 10초쯤 들여다보다가, 도무지 처음 보는 이름(거의 70%가 그렇지만)의 음식을 가격도 고려해서 척! 지적한다. 그러면 종업원이 옆에 찰싹 붙어 서서 '바짝 구울까요, 어중간하게 구울까요, 아주 살짝만 구울까요?' 라든지 '마늘 소스로 할까요, 생강 소스로 할까요.' 라든지 하는, 좀 묻지 말고 니들 알아서 했으면 하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묻는다. 우리네는 거의 알아서(!) 하는데 말이다. 나 참!......

 어쨋든 나의 실험적, 즉흥적 지적에 의해 음식이 나오는데, 음식이 나오기까지 궁금해 하며, 또 약간은 불안해 하며, 또 기대를 하면서 기다리게 되는데 이것이 또 묘미라고 생각한다. 뭐, 생각하기에 따라선 '대체 뭔지도 모르고 시킨단 말야? 한심한 녀석!' 할 수도 있고, '대체 통 입에 댈 수도 없는 게 나오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바보 같은 녀석!'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경험상 몇 가지 우리 한국인에게 치명적(!)인 향신료 말고는 그렇게 '통 입에 댈 수도 없는' 음식은 나오지 않는다.

 '어? 이런 맛도 있군!'

 '야! 보기보단 맛이 괜찮군. 약간 싱겁지만 말이야.' 대개 이런 정도다. 그래서 요즘은 별로 망설이지 않고, 메뉴를 척 펴 들고는 영 뜻도 모를 요리를 가리킨다.

 "이것 줘!"

 명쾌하다. 미네는 이러는 내가 영 마음에 들지 않던지, 아니면 미처 고르지 못한 자기를 닦달하는 듯 하는 내가 미운지, 아니면 내가 가여운지 그때마다 미간이 좁혀진다. 뭐가 가여워? 그러는 자기는?......

 그러나 값에 대해선 걱정을 마시라. '라자냐'가 한국에서는 그 정도의 맛과 품질이라면 2만원 정도라지만 여기선 맛있는 3천 5백원에 불과하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