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24)중늙은이의 히말라야 일기

운농 박중기 2013. 7. 29. 14:52

3월 12일  (아! 마차푸츠레야, 정말!)

 

  우리에겐 참으로 이번 여행을 기분 좋게 하는 요소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날씨였다. 우리가 네팔에 도착하여 카트만두 인근을 돌아다닌 4-5일간과, 트래킹을 시작해서 끝낸 15일간 한번도 흐린 날 없이 청명하더니 트래킹을 끝내고 카트만두에 돌아 온 날 부터 해발 800-900미터의 낮은(!) 포카라로 옮기던 이틀 동안 줄곧 비가 내렸다.

 거의 해갈이 된 듯한 이틀간의 비였는데 오늘 아침 요란한 새소리에 깨어 일어나니 깨끗이 개어있는 것이다. 오! 이런 행운이! 역시 새가 많은 포카라는 새소리로 아침을 알린다.

 덕분에 포카라는 깨끗했다. 7시쯤 뛰듯이 옥상에 올라갔더니 그렇게도 그리웠던(!) 마차푸츠레(Machhapuchhare, 6,993m)가 손에 잡힐 듯 솟아있다. 다울라기리(Dhaulagiri, 8,167m), 안나푸르나의 연봉들이 누군가 빗속에서 손질을 한 듯 깨끗하고 신선하게 하얀 봉우리를 뽐내고 있다.

 아! 역시 마차푸츠레야, 정말! 얼마나 저 산이 내 눈에 어른거렸던가!

 사랑콧(Sarangkot, 1,593m)에 올라 두 팔 벌려 저 설산의 연봉들을 거침없이 마주쳐야지! 쿵쾅, 쿵쾅 가슴이 뛴다. 우리 집 이층방에 부착해 놓은, 사랑콧에서 촬영한 설산들의 대형 사진이 생각나는군.

 세티 건더키(Seti Gandaki)강도 내려가 보고, 풀바리 호텔의 경관도 봐야지. 옥상에서 내려오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벌써 풀바리 호텔의 마당에서 보이던 그 고급스런 설산의 풍경이 가슴 속을 서늘하게 훑고 지나간다. 여태껏 보았던 풍경 중 세상에서 가장 멋진, 그리고 고급스럽던 그 풍경이......

 

 카르키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장이 노크를 한다.

 "이층으로 방을 옮겨줄까?"

 "아니, 우리는 내일 방을 비울 거다."

 "...... "

 그는 머쓱하고 섭섭한 얼굴이다. 조금 미안하다.

 '카르키'는 하룻밤 400루삐, 그 호텔(글래이셔 호텔)은 500루삐. 100루삐 더 지불하면 아름다운 정원에 잔디가 파랗고, 잘 정돈되어 있으며 갖가지 꽃이 피어있는 그곳이 아무래도...... 이러면서 우리는 어제 저녁 빵집에서 케이크 몇 조각을 사오면서 글래이셔에 일주일 예약을 했던 것이다. 카르키 주인에겐 좀 미안하지만 그래도 뭐 100루삐 더 주면 분위기가 엄청 좋아지는 걸...... 우리는 트래킹을 끝내고 이 포카라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싶은게 아닌가. (글래이셔가 호텔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정원이 아름다운 우리네 중급 여관 쯤이라고 보면 된다. 하긴 우리네는 여관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곳은 없지만)

 그렇지만 카르키도 꽤 괜찮은 곳이다. 가이드북을 보고 들어왔지만, 가이드북의 소개처럼 주인내외가 친절하고, 화장실과 객실이 깨끗하고, 무엇보다 객실이 넓어서 좋다. 한국과 일본인 등 동양인이 많이 투숙하는 눈치인데, 그런 면에선 말동무도 생기고 좋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국(異國)에서 같은 나라 사람을 지나치게 많이 조우해도 여행기분이 덜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뭐, 국내에서 허구한날 보는 사람들보다도 좀 다른 인물들과 풍물들을 보러 온 것 아닌가.

 어제, 레스토랑 '원스 어폰어 타임'에서 달밧과 스테이크로 식사를 하고 어슬렁거리고 나오다가 우리네 중년부부와 인사 중에, 그들은 여행사를 따라 왔다고 한다. 하긴 여기서는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을 거의 구분할 수 없고, 다만 말을 걸거나 엿듣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그 참 이상하다. 우리 땅에서는 분명 달라, 퍼뜩 구분하기가 어렵지 않던데......

 일본의 아주 젊은 아이들은 좀 알아보기 싶다. 그들은 제 딴엔 세련되고 개성을 살린 복장이라고 하겠지만, 남루한 히피 스타일이 많고, 한국의 젊은이들은 대체로 단정하고 성실한 표정이다. 

 듣기로는, 네팔여행은 일본인들에겐 말하자면 '이제는 한물 간' 여행이라고 한다. 80년대나 90년대의 일본에선 인도나 네팔여행이 유행이었는데, 2천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들은 사치해져서(!) 유럽이나 아프리카, 이집트 등으로의 여행이 새로운 유행이 되어 있다는데, 여행도 유행인지 그 참......

 아무튼 이들이 최근에 많이 줄어든 것은 틀림없는 것 같지만 아직도 그들이 네팔을 바라보는 시각은 '옛 히피들의 장소'로 보는 것 같다. 아무리 봐도 포카라는 '옛 히피들의 장소'로는 보이지 않고(카트만두라면 몰라도) 오히려 조금 나이든 층의 좋은 휴식처가 되는 것 같은데 말이다.

 일본에 비해 한국의 젊은이들은 포카라를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트래킹 하기 위한 전초기지로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포카라의 곳곳을 살펴보고, 그 매력을 안다면 '잠시의 기착지'가 아님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우리는 포카라를 '밝은, 그리고 깨끗한, 남국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쾌적한 기후의 안락한 휴양지'라고 여기고 있다.

 포카라의 레이크 사이드나 댐 사이드에서 바라보는 히말라야 연봉의 모습은 한마디로 '통쾌'하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포카라에 열흘은 머무를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오늘은 두문불출, 밥을 먹으러 나간 것 외에는 객실에 누워 빈둥거렸다. 어제 잘 때 좀 추웠는데 그래선지 영 몸이 개운치 못하고 으스스하니 몸살기운이 있다. 그렇지만 저녁이 되니 좀 나아졌다. 내일은 또 슬슬 움직여보자.

 

《사랑콧 Sarangkot》포카라 시내의 북쪽에 솟아있는 1,592m의 작은 봉우리. 이만한 작은 봉우리는 네팔에서는 이름조차 없으나 사랑콧은 시내에서 정상에 올라 바라보면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츠레, 다울라기리 등 히말라야의 연봉을 바로 눈 앞에서 장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로 유명하다. 네팔에서 찍은 대형 히말라야 연봉의 사진은 거의 이 사랑콧에서 촬영된다. 정상까지 길이 나 있어 자동차나 택시로 오를 수 있으나 10월에서 3월 중순까지는 날씨가 맑아 조망을 쉽게 할 수 있으나 그 외의 기간에는 전체 조망은 상당히 어렵다. 히말라야에 트래킹이 자신 없거나 시간이 허락치 않는 사람은 사랑콧에서 히말라야의 연봉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많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