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4)중늙은이의 히말라야 일기

운농 박중기 2013. 7. 29. 14:02

 

3월 1일  (너무도 아까운 풍경, 고라 터벨라)

 

 랑탕 마을은 밤새 바람속이다. 일정한 바람이 그칠 줄 모르고 분다. 부디스트 들이 신년을 맞아 바꿔 달아놓은 새 룽다와 타루초가 집집마다 화려하게 바람에 나부낀다.

 어젯밤엔 끓는 수통의 물을 품고 잤더니 침낭속이 따뜻한 게 괜찮다. 아침에는 완전히 식지 않은 그 물로 세수도 하고 양치질도 해야 할 것 같다. 롯지들은 거의 태양열 온수를 이용해 샤워 실을 만들었는데 이게 신통치 않아 고장 난 곳이 태반이고, 그래서 샤워를 할 수 없는 곳이 더 많다.

 하지만 트래커들 또한 빼먹지 않고 샤워나 세수하는 호사를 챙기려는 사람도 거의 없어, 아침에 물 티슈로 겨우 얼굴 딱고 코 풀고, 식사 후 껌 하나 씹고 말거나 양치질 정도만 하게 된다.

 해가 지면 기온이 뚝 떨어지고 일교차가 심해 건조하니 자연스레 그런 패턴이 산 속에선 유지된다. 하지만 특별히 호들갑인 사람은 예외겠지.

 

 아침 9시 20분 랑탕 마을을 떠나 라마호텔 마을로 하산을 시작했다. 바람은 여전했고, 우리는 손수건으로 복면을 하고 내려갔다. 날씨는 쾌청, 햇빛이 지나치게 눈을 파고들어 선글라스를 착용치 않고는 괴롭다.

 며칠 전 지나왔던 우드랜드 롯지와 리버사이드 롯지는 치린의 예언대로 명절 쇤다고 문을 걸어 잠근 채 이웃마을로 가 버려 임시 휴업상태다. 치린의 만류를 듣지 않고 이 두 군데의 아름다운 롯지에 홀려 기어코 점심을 이곳에서 들기로 했다면 허기진 데에 약한 나로선 큰 고생할 뻔 했다. 고라 터벨라에서 치린의 충고를 존중해 조금 이른 점심을 먹어 둔 게 다행이었다.

 랑탕 마을에서 이곳 라마호텔 까지 잠깐 동안의 식사시간을 포함해 하산시간은 5시간 40분 소요. 고라 터벨라는 하산 길에 봐도 역시 아름답다.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는 외국인 트래커들의 체크 포스트에, 올라 올 때 기재했던 란에 사인만 했는데 이 치들이 차지하고 있는 주둔지가 천하명당이다. 주둔지 뒤쪽으로는 깍아지른 단애의 절벽, 그 절벽 두 군데에서는 까마득히 높은 폭포가 떨어지고 있고, 앞으로는 넓은 초지, 또 그 앞으로는 랑탕콜라, 그 건너편엔 솟아오른 침엽수와 초지위의 야크 떼. 동쪽으로는 장대하게 솟아있는 설산의 위용......

 얼룩무늬 군복의 군인들이 초소며 막사 따위를 지어 놓고 소총을 들고 있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풍경이다. 

 

 저녁에 우리는 라마호텔 마을(Lama hotel, 2,340m)의 티베트 롯지에 투숙하여 오랜만에 먼지투성이 몸을 샤워로 씻어냈다. 롯지는 만원이었다.

 샤브로벤시에서 우리와 동행했던, 카트만두에서 대학에 다닌다던 두 자매의 집인데 그들은 그들의 신년을 맞아 가족과 함께 하려고 오던 길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두 자매의 귀향길은 멀었던 것인데, 카트만두에서 11시간의 지옥의 버스여행과, 샤브로벤시에서 1박을 한 후 라마호텔까지 5시간 반을 걸었어야 했던 귀향길이었으니 말이다.

 식당에는 독일인 한명, 장기 투숙자인 듯 보이는 미국인, 프랑스인 한명, 그리고 포터와 가이드들로 북적거렸다.

 독일인은 감자튀김 한 접시를 음미하듯 천천히 먹고 있는데, 우리는 밥 두 접시, 스프 두 그릇, 버팔로 고기 한 접시, 이렇게 먹는다. 이 롯지로 봐선 우리는 큰 고객일 듯 하다.

 독일인들은 정말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많음을 느낀다. 어딜가도 독일인은 빠지지 않는다.

 대체로 산속에선 서구인들은 간편하게 먹는 편이고 우리는 여러 가지를 시켜 먹는데, 끼니때 마다 반찬 6-7가지가 오르는 우리네 식탁문화 때문인지 어쨋든 우리는 많이 먹는 편이다. 하긴 카트만두 타멜의 피자집에서 솥뚜껑만한 피자를 혼자 차고앉아 먹고 있는 백인을 본적이 있긴 하지만......

 이곳 롯지의 주방에서는 손님들의 식사가 끝나야 가이드나 포터의 식사를 내 오는데 그게 어째 짠하다.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식사를 늦게 해야 하다니...... 뭐 그렇지만 며칠 지나니 그것도 그런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체로 랑탕 지역엔 티베탄들이 롯지 운영을 하는데, 다른 지역 롯지에서는 키우는 닭을 잡아 달래서 요리를 하곤 하는 것 같은데 티베탄이 운영하는 롯지에서는 그게 안 된단다.

 

 내일은 툴로샤브루(Thulo Syabru, 2,210m) 행이다. 랑탕 지역을 떠나 헬럼부(Helambu) 방면으로의 산행 시작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