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5)중늙은이의 히말라야 일기

운농 박중기 2013. 7. 29. 14:05

 

3월 2일  (이기적 슈바이쳐)

 

 새벽녘에 잠이 깨어 (여기는 늘 그렇다. 초저녁에 잠자리에 드니 그럴 수 밖에) 갖가지 상념에 휩싸인다.

 어제 저녁 롯지 주인 아들 녀석의 발등이 난롯불에 화상을 입어 절룩거리는 것을 보고, 가지고 있던 약으로 치료를 해 준답시고 했지만 화상에 맞는 약을 가지고 온 것도 아니어서 소독 정도만 해 주는데 그쳤다. 제 아버지가 상처부위에 치약을 듬뿍 발라놓은 바람에 그것을 딱아내느라 애를 먹었다. 이 치약이 화상에 효능을 발휘하는지, 아니면 더 악화 시키는지에 대해선 나로선 알 방법이 없다.

 붕대를 얇게 두르고, 반창고로 고정시킨 다음 내일 아침에 다시 한번 하겠다고 하니 이 녀석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내가 해 준 돌팔이 의료행위가 영 맘에 들지 않는가 보다싶어 잠시 당황하다가 아차 싶었다. 이들은 우리와 반대로 고개를 옆으로 가로 저으면 긍정의 뜻이지 않은가.

 아무튼 두 번의 돌팔이 의료행위로 심란해 졌는지, 이곳 사람들의 생활저변을 들여다 본 것 같아 영 맘이 편치 못하다. 마을에는(랑탕마을이 이 근처에서는 가장 큰데) 약국 비슷한 것이 있긴 한데 약품과 과자, 일용품 등을 같이 진열해 둔 것으로 미루어 짐작되다시피 제대로 된 약은 없다. 유통기한이 지난 것, 오히려 부작용을 줄 것 등 뿐이라고 하니, 이들이 화상을 입어도 치약 따위를 바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공부하기에는 이미 나이가 먹어 버렸지만 기초적 의료지식이라도 제대로 배워, 여기에 눌러 앉아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나라는 산속 국민들의 건강까지 챙길 수준은 아니고 관심도 없는 듯하니, 이곳 골짝에 약품배낭 하나 메고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건 어떨까? 이제껏 살아오면서 남을 위한 일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는데, 그런 인생을 산다는 것도 나에게 그나마 좋은 기회가 아닐까? 또 이왕 산골짝에 살고 있으니 같은 값이면 이토록 아름다운 골짝에 살면 뭐 나쁠 것 없고, 현재의 내 삶도 크게 달라지지도 않을 것 아닌가 해서 말이다.

 그렇지만 나 혼자 그렇게 살아갈 자신이 없고, 곁에 있는 사람이 동의 해 줄지도 의문이지만, 문제는 이 사람들의 삶에 녹아들고 동화되어 살아 갈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물음이 일자 움츠려든다.

 까탈스런 성깔에 출입문짝 하나, 창문 하나 잠그려면 아귀 맞지 않는 틈을 누르고 비틀고 하며 닫아야 하고, 밤이면 촛불 더듬어 찾아 불을 밝혀야 하며, 한밤중 용변 볼라치면 옷 챙겨 입고 랜턴들고 떨며 밖을 나서야 하고, 샤워 한번 하려면...... 게다가 이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어떤가!

 아! 이미 우리는 문명 속 편리함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고, 그걸 포기하기엔 나 자신 이미 길든 속물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히말라야의 이 깊은 골짜기에서 새벽녘에 일어나 침낭 속에서 몸을 빼내지도 않고 일어나 앉아  갖가지 상념에 잠겨 주저리주저리 실천에 옮기지도 못할 이기적 슈바이쳐가 되고 있다. 쯧쯧!

 

아직? 하고 창 밖을 보니 뿌연 여명의 빛이 조잡한 커튼을 밝히고 있고, 닭 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자! 오늘도 일과시작이다. 몸을 일으켜 얼음장 같은 물에 세수를 하고 식당에 가니 주인장이 벌써 난롯불을 지펴놓아 따뜻하다. 부엌의 조리용 화톳불도 지펴져 두개의 화구위에 냄비와 주전자의 물이 끓고 있다.

 밖에서 들어온 주인장이 조그만 철제 손잡이가 달린 그릇에 화톳불의 숯불을 꺼내 옮겨 담더니 그 숯불위에 향 가루를 올려 연기를 피워서는 부엌 구석구석, 식당 등에 휘휘 둘러 연기가 고루 퍼지도록 한다. 랑탕 마을에서도 얼핏 본 것 같은데, 아마 부디스트 들의 종교적 관습인 것 같다. 신년을 맞아 집안의 잡귀를 내쫒는 푸닥거리로 보이는데 나중에 치린에게 물어 봐야겠다.

 신년을 맞은 그들의 집안 구석구석 돌출된 들보나 출입구 위쪽에는 'Happy Losar 2133' 또는 'Save Tibet', 'Enjoy the day' 등의 글귀를 흰 석회로 써놓았다. 'Losar'는 신년(new year)이라는 뜻이고, 'Save Tibet'는 중국에 강점된 조국을 구하자는 염원을 신년의 구호로 담은 것 같다.

 티베트계인 치린 역시 중국에 대한 혐오를 표시했다.

 

 라마호텔에서 툴루샤브루로 가는 길은 꽤 험난하다. 특히 랜드 슬라이드(1,610m) 롯지에서 툴루샤브루(2,210m)로 가는 길은 짧지만 고도를 600m나 올리는 관계로 계속 오르막길이어서 우리는 '비스따리, 비스따리' (천천히) 하면서 침묵 속에 호흡을 조절하며 천천히 오른다. 툴루샤브루 마을의 타루초는 빤히 눈앞에서 흔들린다. 하지만 우리는 골짜기 양쪽을 연결한 출렁다리를 건너 급경사 길을 거의 4시간을 올라야했다.

 힘들게 언덕을 오르며 우리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당신이 그렇게 맨 뒤에 걸으면 마오이스트나 산적이 뒤에서 입을 틀어막고 우리 몰래 끌고 가지 않을까?"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군요."

 "그렇게 끌고가선 그네들 소굴에 데리고 가겠지. 그래서 아지트에서 밥하고 빨래시키고 하인으로 부려먹겠지?"

 "마누라가 그렇게 되도 당신은 나를 구하러 오지 않겠죠?" 
"설마! 십 년 후 수색대를 이끌고 겨우 당신을 찾아내서 구출 했을 땐 당신이 날더러 '누구세요?' 하겠지."

 "십 년 후에 수색대를 이끌고 온다구요? 다 늙은 마누라 필요 해서?"

 "애기 둘쯤 낳고, 앞뒤치마(티베탄 여인들이 앞뒤에 치마처럼 별도로 천을 늘어뜨려 입는 것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입고 허리에는 칼과 스푼을 차고 있겠지? 콧잔등은 빤질빤질 윤이나고, 맨발에 말이지."

 우리는 숨이 턱까지 찬데도 웃어 제켰다.

 멀리 마을의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이는 곳에서 쉬면서 치린과 앉아 또 농을 한다.

 "왜 여긴 애들이 이렇게 많지?"

 "많은 이유가 있지."

 "왜요?"

 "여긴 동쪽을 보고 있는 해발 2,200미터가 넘는 곳 아냐? 그러니 근처 어느 곳 보다 해가 먼저 뜰 테고, 남편과 부인이 새벽에 잠이 깰 테고, 그러면 어쩌겠어? 철로 변에 아이가 많은 것과 같은 이치 아니겠어?"

 "그걸 치린에게 설명 해 봐요."

 자, 이걸 치린에게 어떻게 설명한다? 이 엄청난 콩글리쉬로.

 "치린, 들어 보라구. 디스 빌리지 칠드런...... 어쩌고......"

 치린이 마구 웃는다. 오! 위대한 콩글리쉬여!

 

 마을이 가까워지자 곳곳은 주민들의 땔감채취로 나무들은 베어지고, 방목한 야크와 소들의 무차별 먹성으로 비탈 전체가 볼썽사납게 훼손되어 있다. 이들이 나무를 연료로 하는 한 갈수록 황폐는 더 할 것 같다. 그러나 현재로선 뾰족한 방법이나 대책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라마호텔에서 툴루샤브루 까지는 점심식사 시간을 포함해서 7시간이 걸렸다. 유난히 돌출된 능선위에 모여 있는 제법 큰 마을인데 여태껏 스쳐지나왔던 마을들에 비해 가장 가난한 마을이다. 가난이 누르고 있는 마을은 아무리 외양이 그럴 듯해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법이다. 그런 마을들은 대체로 아이들이 유별나게 많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트래커들에게 '스윗'하며 사탕을 달라고 하지 않고 '뗀 루삐' 하면서 돈을 요구한다. 또, 마을과 집들을 치장하지 않는다. 집 단장을 위한 페인트칠, 담장의 보수 등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꽃을 가꾸지 않고 사람들의 얼굴에 활기와 미소가 없다. 하긴 이런 것들이 이 나라 뿐만 아니라 만국공통이리라.

 우리는 언덕배기에 있는 많은 롯지 중 한 곳에 투숙했다.

 

 내일은 신곰파(Shin Gompa, 3,350m) 행이다. 이곳 툴루샤브루에서 신곰파는 고도를 무려 1,100미터 넘게 올리는 구간이다. 충분히 자 두어야겠다. 그렇지만 트래킹이 일주일째 넘어가니 걷는 것과 자는 것이 슬슬 몸에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