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월) 부다페스트 - 북경 - 귀국
4주간의 제법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 가는 날이다.
'긴 여정'이라고 했지만 그리 길었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돌아가는 여정이 지루하고 복잡하긴 하지만 어차피 치뤄야 한다.
저녁 9시즘 에어 차이나에 올라 북경까지 10시간 날아가 환승구역에서 5시간 넘게 보내야 하고
다시 김포로 2시간 넘게 날아가서, 공항철도로 동서울 터미널의 12시쯤 출발하는 함양행 심야
버스를 타고 3시간을 달려 함양에 새벽 3시쯤 도착, 미리 얘기해 둔 택시를 타고 집으로......
거의 24시간이 걸리는 그야말로 대장정(!)을 해야 한다는걸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고 심란하다.
이탈리아와 헝가리에서 보낸 여정보다 훨씬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당초에 걱정했던 고관절도 별 탈없이 견뎌 주었다.
여정의 시작부터 괴롭히던 심한 기침을 동반한 감기도 떨어져 나가 다행스럽다.
하지만 이제 늙은이로 가고 있는 몸, 이런 긴 여정이 무리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없진 않았지만 뭐,
아직까진 견딜만하다.
인간의 몸상태를 좌우하는 것은 체력만이 아니고 근육량 만도 아니다. 어떤 기분을 유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몸상태가 따라 가는 것 같다. 어쩌면, 끝없는 호기심, 탐구, 애정을 가지고 사물을 관찰하는 마음,
비판 본능을 잠재우는 긍정심 등이 고된 여정을 감당케 하는 힘이 됨을 느낀다.
여행이 주는 이질적 요소들에 대한 적응력과 호기심 또한 힘을 보태고, '세상을 사는 인간의 형태와
시스템은 대부분이 거기에서 거기' 라는 생각이 익숙치 못한 것을 접하는 긴장감을 누그러뜨려 긴장을
풀게 하고 안도감을 가지게 했다.
타국에서 힘들고 피로의 누적이 되는것은 '이질적인 것에 대한 긴장과 안도감의 결여' 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탈리아는 엄청난 역사의 유물과 자산이 넘쳐나서 내내 경외심과 감탄을 자아냈지만 현세의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이 커서 힘들었다.
극도로 이기적이고, 예민하며 신경질적인 사람들을 너무 많이 접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속해있는 사회에 대한 불만, 경제적인 결핍, 일 하기 싫은 사회 풍조, 그들을 서포트
해야 할 국가의 무능력 등으로 그렇게 되고 있다고 보여졌다.
모든것에 게으르고 느슨하지만 지극히 신경질적인 사회라는 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길거리의 젊은 여자애들의 80%는 손가락에 담배가 끼워져 있었다. 길거리를 걸으면(로마에서) 담배
냄새를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탈리아인들의 흡연을 '사회의 불건전성'에 대입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있지만 숱한 흡연자가 그렇게
보이게끔 만드는것은 사실이다.
이제 이탈리아를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은 없을듯 한데, 이곳을 부정적인 인식으로 남겨 두는 것이 좀
찝찝하다.
부다페스트는 로마와 대비되는 곳이다.
로마에서 지친 이들이 많이 찾을만한 곳이다. 여행의 막바지에 이곳을 선택한 것은 정말 잘 한일이었다.
로마는 내게 어떤 색깔로 남을까?
여행 말미에는 항상 이 물음을 스스로 했는데, 역시 올리브 색이 섞인 갈색, 좀 퇴색한 색깔이다.
따지고 보면, 로마에 대한 로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였다.
책을 읽으면서 머리속에 마치 상형문자 새기듯 박힌 상념은 포로 로마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일곱 언덕이
자리하고 있는 로마에 대한 경외감이었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그리고 아피아 가도, 백인대장, 수도교(水道橋), 욕장(浴場), 장군과 노예, 1,2차 포에니
전쟁, 콜로세움과 대전차 경기장...... 그리고 원로원과 공화정.
그것들로 이뤄진 거대 국가는 왕정이나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반감이 충만한 나에게도 로망이었다.
그들을, 그것들의 흔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로마는 그것을 눈으로 확인 하고자 하는 내 욕구를 충족 시켜 주었다.
부다페스트는 어떤 색깔일까?
밝은 황금색, 두나(다뉴브, 도나우) 강위에 걸쳐진 세체니 다리와 왕궁, 국회의사당을 밝히고 있던 진한
황금색이다.
글루미 선데이에서 시작된 부다페스트의 이미지는 전혀 다른, 결코 '우울한' 것이 아닌, 지극히 밝고 명쾌한
것이었고, 글루미 선데이의 신비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 점에서 당초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부다페스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좋았다.
이 여정은 여기서 끝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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